2장. 휴학을 컨셉하라.
휴학계획 관련 특강에서 '망하는 휴학의 패턴'을 설명하면 어떤 그룹은 본인의 모습을 보는 듯이 웃음을 떠뜨리기도 하고, 어떤 참자가들은 강연이 끝나고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면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런데 휴학을 고민할 때는 7가지 유형을 나누고도 2~3가지 유형이 복합적으로 해당할 정도로 생각이 복잡하지만, 재밌게도 휴학패턴은 마치 서로 짠듯이 비슷하다.
휴학을 막상 결정하고나면 뭐할지를 정한다. 모든 휴학생이 마음 속로든 문서로든 이 고민을 한번쯤은 한다.
그리고 계획의 고민보다도 '휴학의 설렘'이 먼저 찾아온다. 휴학이 승인되면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자유의 시간에 가슴이 두근두근 달음박질한다. 의미없이 달리던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무언가 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솔솔 샘솟는다. 드디어 학교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든다. 이제 시작이라며 거울 속에 나에게 파이팅도 외쳐본다.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날 것만 같은 '휴학'이 시작되어버렸다!
기대감에 한 껏 들뜬 휴학친구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버킷리스트 작성'이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휴학하는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번호를 매겨가며 버킷리스트를 쓴다. 버킷리스트란 '죽기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로 인생을 소중하게 살기 위한 리스트로 유명해졌다. 재밌게도 휴학을 할 때 죽으러가는 것도 아닌데 휴학을 위한 버킷리스트를 쓴다.
휴학 버킷 리스트(2007년 이미준 작성)
1) 장래희망 직종 체험&도전하기(인턴)
2) 영어 학원 다니기(스피킹!!)
3) 책 많이 읽기
4) 게을렀던 전공 공부 하기
5) 음악 & 악기 배우기
6) 피부관리 & 11자 복근 다이어트
7) 토익 점수 900점 만들기, 자격증 따기
8) 졸업 필수 컴터 자격증 따기
9) 공모전 참여해서 경력쌓기
10) 알바해서 돈 모으기
11) 복수 전공 할 과목찾기
12) 해외여행이나 교환학생 등 알아보기
이 리스트는 내가 대학생 때 실제로 작성했던 버킷리스트다.
혹시 자기가 작성했던 버킷리스트라는게 있다면 한번 꺼내서 비교해보자.
이 리스트에서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대부분 저기에서 여전히 큰 차이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캘리그라피나 제빵, 플로워아트같은 새로운 취미생활 배우는 것이 추가된 거 외에는 아마 비슷할 거라고 예상한다.
이 리스트는 굉장히 이중적이다.
취업을 걱정하며 전공과 스펙을 신경쓰고 있으면서도 음악이나 악기, 11자 복근 같은 허영심 가득한 부분도 많은 항목을 차지한다. 항상 목표는 높게 잡으라고 훈련받은 우리는 일단 큰 목표를 이것저것 아낌없이 적어넣었다.
이런 계획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이제 보여주겠다.
망하는 휴학 패턴 1 : 배운짓이 도둑질, 시험공부밖에 몰라
배운 짓이 도둑질이라, 20여년 평생 가장 많이 해온 것은 역시 '시험공부' 뿐이다.
휴학버킷리스트에서 '시험공부'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외국어시험과 자격증 시험이다. 외국어에는 기본적인 영어 토익이나 토익스피킹부터 요즘에는 중국어 HSK 정도가 각광받고 자격증은 학과에 따라서 너무나도 익숙한 자격증들 몇몇 가지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것도 아니면 학교마다 다양한 졸업 자격 조건에 해당하는 자격증들도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는 방법은 정말 너무나 잘 안다. 지금까지 16년넘게 갈고 닦은 것이 바로 공부해서 시험을 치는 거였다. 지금까지 실패하지 않았던 방식대로 행동한다. 일단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유명한 학원이나 인강사이트를 찾아서 등록하고, 문제집을 산다. 그리고 우리가 초등학교때부터 갉고 닦은 공부의 방식을 마음껏 활용하려고 한다.
학원을 생각하는 친구라면 휴학 시간을 더 알차게 활용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아침 클래스를 선택한다. 늦잠에 익숙하니까 억지로라도 학원 수업을 잡아놓으면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서 다른 버킷리스트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착각이었다. 파X다, 해X스 학원에 수업에 빠진다고 때리는 선생님도 학점이 까이는 일도 없다. 고등학교 때처럼 집에 전화가 오지도 않는다. 강제력이 없으니 자제력도 약해진다. 기껏 학원에 다녀와서도 집에서 늘어지는 날이 많아지고, 하루가 지나는게 아까워서 자는 시간은 점점 새벽으로 넘어간다. 지각을 안하려고 몇번은 안간힘을 써보지만 학원인데 뭐 어떠나 싶어지고, 가게되도 졸린 날이 더 많아져서 어느새 자체폐강의 길로 가는 경우도 많아진다. 기적적으로 1달을 다녀보고 다닌 날보다 못간 날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 수업 시간을 옮기거나 인강을 찾아보게 된다.
금전과 시간을 고려해서 인강과 문제집을 선택한 친구들도 시험공부 스킬을 마음껏 구사한다. 오늘은 chapter1~2, 내일은 chapter3,4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 공부하면 기대했던 일자쯤에는 토익책 2번 돌리고 완벽하게 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강은 눈꼽도 떼지않고 볼 수 있지만 그래서 꼭 똑같은 시간에 하지 않아도 된다. 이따 해야지 조금 있다 해야지 오늘은 약속있으니 내일 몰아서 해야지.. 어느새 밀리고 밀리다보면 책은 언제나처럼 작심3일, 챕터 2까지만 빼곡한 필기고, 3강 4강부터는 깨끗한 문제짐과 함께 인강 수강 가능일자는 하염없이 흘러가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 카드로 신청해놓은 자격증 시험은 날짜는 코앞이고, 아침에 눈을 떠서 생각한다. 이번 시험은 준비를 너무 못해서 봐봤자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복학하려면 시간이 많으니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다시 해보자고 생각한다.
물론 착실하게 공부를 잘 해오던 휴학친구들도 있다. 이번에는 너무 열심히해서 문제다. 덮어놓고 한가지 공부만 한다. 예전에 하루 12시간씩 영어공부만 하는데도 원하는 점수가 안나온다고 하소연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 성향의 친구들을 '공부의존증'이라고 한다. 어학같은 공부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로계획이나 사회경험도 모두 자격증시험이나 학원같은 것에서 쉽게 배우려고만 한다. 그리고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믿고 그걸 설명해주는 강사의 말을 신처럼 받아들인다. 음악이나 악기같은 것도 즐기기보다는 공부가 되어버리고. 학원에서는 맨 앞줄에 앉아 강사의 모든 말을 다 받아적고, 틈만나면 특강들을 들으러 다니며 뭔가 익히는데 열중한다. 마치 쪽집개 선생님의 말에서 수능 문제가 출제되듯이 말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의 저자인 최성락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지금까지 공부하는 것외에는 해본 적이 없었던 학생마인드가 바뀌지 않아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휴학을 하고 만나는 세상은 더이상 학교가 아니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많은 시간 공부하는 사람이 최고고, 성적이 높고 자격증이 많으면 우수한 학생이지만, 사회에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휴학의 시간은 죽죽 지나가고, 어느날 문득 휴학 버킷리스트를 보았을 때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항목들에 심장이 저려온다.
"시험공부조차 제대로 못했는데,, 내가 정말 휴학을 제대로 보낸걸까?"
망하는 휴학 패턴 2 : 도전, 도전, 도전!!
휴학의 설렘에서 불타는 열정이 샘솟았다. 시간이 없어서 못해봤다고 생각한 것들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대외활동, 인턴 등을 하게된다면 스펙도 쌓고 다양한 사람들고 만나고 어쩌면 대학생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팅계열이 하고 싶다고 생각한 한 친구는 닥치는대로 지원서를 써넣었다. 행운처럼 다가와준 3개월짜리 대외활동은 월1회 모임과 과제 제출이 있었고, 평소에도 미션을 받아서 블로그 컨텐츠를 열심히 만들어 올렸다. 뱃지와 명함을 받고 가보지 못해던 기업에도 가보니 새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 인스타그램에 대외활동 모습을 업로드하면 친구들은 하트와 댓글로 부러워했다. '내가 뭘 좀 하고 있구나'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혀 생각도 못해본 활동들도 해볼 수 있었다. 한번 해본 마케터 활동에서 얻은 게 너무 많았기에 또 신청하고 또 신청했다. 이 사람 저 사람도 만나고 교육도 듣고 나는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휴학의 시간은 죽죽 지나갔고 서너개의 활동으로 내 스펙은 튼튼히 쌓인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과연 내가 꿈꾸던 진로에 정말 관련이 있었던 건지 불안해졌다. 이 활동들이 내 진로에 의미있는 활동이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상황도 운이 좋은 경우다. 대외활동을 너무 하고 싶었지만 운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 휴학친구는 휴학을 하기 전부터 마음속에 꼭 집어놨던 대외활동이 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S기업에서 운영하는 리포터 대외활동. 학보사 기자인 나에게 내 운명의 휴학파트너일라고 생각했다. 마치 기간부터 모집요강까지 모두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보였다. 나를 잘 드러날 수 있게 자기소개서도 썼고, 활동을 위해 서울로 유학도 왔다. 이제 마음껏 대외활동을 하며 스펙도 쌓고 이걸 계기로 휴학을 알차게 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지만 결과는 불합격. 생각했던 휴학계획이 첫단추부터 엉켜버렸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비슷한 다른 것들을 해보려고 생각은 했지만 S기업만큼 눈에 차는 것도 없다. 이제 나는 뭘해도 안되는 것 같다. 버킷 리스트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휴학은 이미 끝나간다.
망하는 휴학 패턴 3 : 솔직하게, 좀 쉬고 싶었다.
휴학은 했으니, 버킷리스트는 작성했다. 뭐라도 해야지 제대로 된 휴학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머리아프게 버킷리스트는 잘 작성했으니, 뭘해야하는 지도 다 정했다.
그러니까 단 몇일이라도 조금 여유를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유치원부터 시작된 정해진 스케줄표를 따라가며 엄마가 보내주는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고 이 대학을 오기위해 뭐든 주어진 것을 성실해했다. 내가 우겨서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대학에 와서는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대학에 오니 똑똑한 애들이 너무나 많았다. 기가 죽었다. 조발표 과제는 정말 최악이었다. 나만 할 줄 아는게 없는 사람 같았다. 과제며 시험이며 겨우겨우 해치우다가 이제사 휴학을 했다.
지금까지 힘들었으니 조금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못보던 드라마, 못하고 미뤄오던 게임을 좀 맘 편히 해봐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났다.
엄마는 휴학하고 뭐 하는게 없다고 난리고, 놀고있는 내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휴학을 잘 보내겠다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는 했는데 어쩐지 쳐다도 보기가 싫다. 이제라도 뭔가 하려면 너무 늦은 것 같다. 공모전은 해본적도 없고, 알바도 길게해야 된다고 하고 인턴이나 대외활동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신청기간도 아닌 것 같다.
이제와서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으니 다 늦기전에 여행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여행을 준비하자니 조금 겁나고 단체로 가는 여행을 찾아서 방학을 맞은 친구와 다녀올까 생각했다.
엄마의 도움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이제 복학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운동이라도 해볼까 싶은데 이것도 돈이 들고, 엄마는 그럴거면 왜 휴학했냐고 그럴거면 공무원시험 준비라도 하라며 뭐라고한다. 듣기가 싫다. 나도 답답하다.
망하는 휴학의 패턴은 휴학의 고민유형과는 관계가 없이 흘러간다.
지금 몹시 공감하고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는 지금 저 상황은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휴학을 망한거냐고 되물을 것이다. 휴학기간에 한 일이 없어서 실망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똑같은 상황에서도 해놓은 일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한 만족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기준이다.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여전히 불안하다면 그 휴학은 망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본다고 해도 위의 휴학들은 망했다. 계획은 총 12개였다. 가장 성공적인 계획이라면 마지막에최소 10개는 목표를 이루었어야 성공률이 84%이상이 된다. 계획 전체에서 1~2개 이루고서 '나는 목표를 이루었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라는 사람이 계획과 실천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 시간관리 초보자라는 완벽한 증거이기도 하다.
아무리 포장하려고 해도, 사실 누구보다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망한 휴학의 가장 큰 특징은 '휴학이 목표한대로 잘 됐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자신있게 '네'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조금 변화가 되었어도 기대했던 바가 너무나 커서 쉽사리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바꿔 말하면 그 어떤 휴학이라도 내가 자신있게 가치를 설명한다면 망한 휴학이 아닐 수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