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실행-평가의 측면에서
망한 휴학의 일반적인 패턴을 읽으면서
벌써 저 흐름 어디쯤에 자신의 모습이 보여 가슴이 푹 찔린다면, 지금이 바로 휴학계획을 다시 시작해볼 때다. 그러려면 저 휴학들이 망한 이유는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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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휴학의 원인을 계획과 실천, 평가의 3단계로 나눠서 분석해보도록 하자.
계획의 문제 : '의식의 흐름'이 만든 버킷 리스트
우리가 선택한 휴학계획의 방식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잭니콜슨과 모건프리먼은 죽음을 앞두고 써내려간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내용을 다루었던 영화 <버킷리스트>가 소개되면서 버킷리스트는 국내에서도 매우 유명해졌다. 죽음의 순간에는 '하지않은 일'때문에 후회한기에 지금 살아있을 때 힘껏 후회하지 말자는 의도를 담고있다.
휴학을 준비하는 우리의 태도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휴가'라면 이 리스트는 굉장히 적합할 수 있다. 휴학 고민의 노랑 유형의 친구들은 이 대학생활이 끝나면 지옥같은 회사 생활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버킷리스트 정도라도 적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성된 리스트의 내용은 죽으러 가는게 아니라 '매우 잘 살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항목은 지금까지 살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혹은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 즉, 나의 기준의 목표라기 보다는 사회적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타인의 기준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
계획표의 내용을 하나하나 다시 뜯어보면 그 부분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그룹 A
2) 영어 학원 다니기(스피킹!!)
3) 책 많이 읽기
4) 게을렀던 전공 공부 하기
11) 복수 전공 할 과목찾기
12) 해외연수 및 교환학생 알아보기
8) 졸업 필수 컴터 자격증 따기
* 그룹 B
1) 장래희망 직종 체험&도전하기(인턴)
7) 토익 800점 만들기, 자격증 따기
9) 공모전 참여해서 경력쌓기
* 그룹 C
5) 음악 & 악기 배우기
6) 피부관리 & 11자 복근 다이어트
10) 알바해서 돈 모으기
원래의 리스트는 3개의 그룹으로 나눠보면, 그룹A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학생의 모습이고, 그룹B는 훌륭한 취업준비생의 모습이고, 그룹C는 익히 들어왔던 제일 멋진 청춘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개개인의 개성과 목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대목에서는 대뜸 이런 질문이 나오고는 한다. "그런데 저는 나다운게 뭔지 모르겠어요"
나는 모르더라도 분명 이 계획을 작성하기 직전까지 적어도 7가지 유형의 다른 종류의 고민을 했었다는 것은, 나의 상황과 내 목표라는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획을 작성하는 순간만 되면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10명 중 9명은 유사한 리스트를 적게 된다. 나를 모르는게 아니라 계획을 짜는 순간 나를 잊어버리고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계획만 하면 동일해지는 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심리학자 엘렌 랭어가 주장한 '마음놓침'이라는 개념이 큰 힌트가 되었다. '마음놓침'이란 자기도 모르는 중에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들을 의미한다. 집에서 가스밸브를 잠그고 나왔지만 너무나 습관적이라 전혀 기억이 안난다거나, 년도가 바뀌었지만 날짜를 쓸 때 나도 모르게 작년을 쓴다거나 하는 식의 의식이 있지만 생각하지 않고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엘렌 랭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안에 불이 켜져 있으나 사람은 없는 상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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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놓침의 상태는 습관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앨렌 랭어가 대학원에서 했던 실험의 내용이다. 연구자 한명이 사람이 많은 인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무릎을 삐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길 건너 보이는 약국에서 압박붕대를 좀 사다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한 연구자는 약국에 미리 들어가서 압박붕대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기로 미리 약사에게 부탁을 해두었다. 실험관찰자는 25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빈손으로 돌아가서 압박붕대가 떨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상한 지점이 뭐였는지 눈치 챘는가? 25중에 단 한명도 약사에게 무릎이 삐었을 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물어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만약에 약사에게 현재 상황을 잘 설명했다면 압박붕대가 아닌 파스나 멘X레담 등 다른 대안을 충분히 제시해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휴학을 계획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머리 속에서 '휴학을 위한 버킷리스트'라고 생각을 해버리는 순간, 지금까지 접해왔던 휴학의 이야기들이 떠오르면서 휴학이 취업준비를 위한 것이라는 편견에 맞춰버린다. 그 순간 진짜 나라는 사람이 고민하던 주제들은 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휴학을 선택했던 문제에 대한 고민과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일치하지 않으니 올바른 계획이 될 수가 없다.
실행의 문제 : 과대평가되었던 우리의 실천력
만약에 나의 목표가 '남들이 원하는 만큼의 휴학'이라서 계획 자체의 문제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지금 휴학을 하는 당신은 이 계획을 모두 실천하기 어려울 수 있다.
휴학을 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블루와 보라 그룹을 제외한 레드, 그린 그룹의 경우 입을 모아서 말한다. '학교 다니면서는 시간이 없어요'
혼다 코리아 정우영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채용 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혼다 코리아에서는 휴학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신입으로 선발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4년이라는 시간동안 휴학을 하지 않고도 동일한 스펙을 쌓은 지원자에 비해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적은 뼈아픈 진실이다. 방학때 인턴을 하고, 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학기 중에는 대외활동도 같이 하고 영어시험도 본 누군가 분명히 있다. 오로지 스펙만을 비교 기준으로 본다고 하면 휴학을 한번도 하지 않은 그 친구의 시간활용능력은 지금 휴학이 절실하다고 말하는 우리 휴학친구들보다 월등한 것만은 분명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휴학을 선택하는 우리는 시간관리 능력에 있어서만큼 확실히 초심자에 가까울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런데 짜놓은 버킷리스트라는 포맷 자체가 평소 시간관리를 잘 하는 사람도 다 지키기 어려울만큼 굉장히 난이도가 높다.
시간관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목표가 생기면 목표를 쪼개서 나눠서 할 줄 안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를 떠올려보면 된다. 시간관리를 잘 하는 친구들은 방학숙제의 양을 파악해서 조금씩 얼마나 나눠서 하면 될 지 알고 있다. 욕심내지 않고 정확하게 나눠서 천천히 해나가면 충분히 무리하지 않고 해낸다.
시간관리 능력이 낮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소요시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대부분 방학숙제를 밀려서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초반에는 신나서 몇일치를 한번에 해버리기도 하고 나중에는 질려서 몇일씩 빼먹다가 마지막에 밀려서 정신없이 썼을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교 때 그렸던 동그라미 계획표는 더 가관이었다. 첫날 신나게 그렸지만 이상적이다못해 정상적이지 못해서 지켜본 적이 없다. 밤새 케이블TV나 컴퓨터만 해도 계획표따위는 바로 포기였다. 그리고 계획표를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계획을 하는 지점에서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과도한 계획을 불러온다. 그리고 시간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일수록 세부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계획을 진행하려는 특징이 있다. 이럴수록 '동기부여'가 안된다며 외부에서 실천능력이 뿅하고 생기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시간관리 초심자는 초심자용 시간계획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을 정확히 파악해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천가능한 형태로 계획을 잡아야 한다.
평가의 문제 : 휴학으로 인생역전 되었는지를 평가한다
휴학이 계획도 잘못 됐고, 실천도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자신의 휴학에 대한 평가다.
평가라는 것은 실천에 대한 평가이기때문에 일단 계획을 봐야한다. 계획은 하나하나가 굉장히 굵직하다.
진로도 찾아야하고, 취미도 생겨야 하고, 취업준비도 끝냈어야 한다.
여기 한 친구의 휴학 기록이 있다.
마케팅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SNS 마케팅을 해볼 수 있는 대외활동에 참여해서 3개월간 수십개의 블로그 포스팅을 했고, 대외활동을 하면서 동기들과 크고작은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그러면서 다른 건 몰라도 프레젠테이션에서 표로 만들어서 표현하는 건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익공부도 꾸준히 해서 900점은 못넘었어도 나름 꾸준하게 인강을 2개나 완강했고 기존보다 200점이나 점수를 올린 성적이었다. 국개 내일로 여행을 가면서 가기위한 일정계획을 세우느라 친구들과 최소한의 경비로 다양한 체험을 하자며 돌아다녔다. 여행을 다니면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었고 전주 한옥마을을 소개해주며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 휴학하고 뭘 했는지 평가해보라고 했더니, 이런 방식으로 적어냈다.
"대외활동 1개, 토익 830점, 국내 내일로 여행, 생각보다 한게 너무 없는 것 같네요. 아직 진로도 모르겠고요"
대부분의 휴학 친구들이 하는 가장 큰 문제는 수치화된 평가를 하려는 습관에 있다. 이것도 오랜 학교 공부의 습관인데 학점이나 점수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상에서는 숫자로 된 결과치만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려고 한다. 실제 과정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이나 이야기들을 철저하게 배제된다. 휴학을 해서 큰 상을 타거나 엄청난 성과를 올릴 수 없었다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망한 휴학의 가장 큰 특징이 아무리 바쁘게 노력해서 보낸 휴학도 스스로 실망하고 불안해 한다는 점이다. 사실 휴학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해도 인생을 바꿀 정도의 시간은 안된다. 이 짧은 휴학기간동안 영어를 잠시 공부한다고 해서 시험점수는 조금 올릴 수 있어도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어민이 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휴학을 망한 휴학, 실패한 휴학이라고 평가해버린다.
평가 과정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자신의 삶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계획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았다고 해도 나는분명 무언가를 했다. 수치화 시킬 수 없는 것들이 갖는 의미는 무한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하게 되는 것들, 예를 들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게임을 엄청나게 하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이돌 음반과 판도, 소속사 근황등을 꿰뚫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게임과 취미는 휴학을 통해 이뤄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말하기도 부끄러운 '실컷 놀기만 했다'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리고 나서 말한다. "전 휴학하고 놀기만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무언가를 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가지 몇개를 봤어도 어쨌든 무언가를 한거다.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갈 사람이 아이돌에 대해 정말 열심히 꿰고 있다면 그건 노는게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으로 진로가 되는 이상적인 상황일수도 있다. 게임을 미친듯이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게임해서 프로게이머만 되는 건 아니다. 게임을 설명해주는 개인방송을 운영할 수도 있고, 게임회사에서는 특정 종류의 게임을 아주 전문적으로 하면서 게임 시나리오를 검토해주는 직무도 있다.
휴학을 평가할 때 오로지 수치화되고 누군가가 주어준 수료장으로만 평가하고 그 안의 디테일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인생이 바뀌지 않으면 무조건 망한 휴학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경험을 무시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휴학 한방으로 인생을 뒤바꾸는 건 쉽지 않다.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 관점을 바꾸면 결코 망한 휴학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나중에 인생을 뒤바꿀 힌트도 얻을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이 휴학의 활동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평가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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