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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Oct 17. 2016

'학생'이 '회사'에 갈 때 생기는 일

사회의 '쓰레기'와 '어린이'가 만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과장님은 절 왜 제대로 못쓰세요?
전 여기에 더는 못있겠어요!


2008년 6월의 어느날이었다.

휴학생이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학생이던 나는 드라마의 한장면처럼 거지같은 상사에게 쏘아부치고 난 뒤 상자에 내 물건을 쓸어담았다.


'그럴거면 그만둬'라는 그의 말에 나도 성격이 뭔지 보여주겠다는 듯 나도 하루도 못있겠노라 알았다고 소리쳤다. 절차고 뭐고 필요없다며 박차고 나왔다.

평소 존경은 커녕 쓰레기처럼 보였던 과장을 들이받고 나온게 어찌나 속이 후련한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생각마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돌아갈 학교가 있는 휴학생일 뿐이었고 나는 이 회사에 어떠한 애정도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정이나 정을 붙일 이유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처 : 이말년 시리즈


이런 경험이 흔한 경험은 아니다.

다들 꿈꾸지만 정작 실행하진 못하는 대표적인 시츄에이션일거다. 그걸 난 저질러 버린 거였다.

그래서 그때를 대단하게 평가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좀 민망하다.


오히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속 시원하긴 한데 나도 참 학생마인드로 회사에 갔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라 얼굴이 화끈해진다.


환상을 품고 회사에 갔다

 2007년 나는 휴학을 했다. 여러가지 목적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꼭 해야하는 것과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고정수입도 필요했기에 회사를 선택했고 기왕이면 외국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외국계는 Cool할 것 같고 한국회사는 다니기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기왕이면 해외 관련된 일이었으면 했다. 그것도 이유는 없었다. 여기서 잘 풀려서 기회가 되면 정규직도 되고 해외본사도 가고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교환학생이나 워홀도 못해봤으니 이런거 멋지지 않나 싶었다.

 나의 생각 수준은 딱 이 정도였다.


 나는 계획대로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독일계 무역포워딩회사의 한국 브랜치에 들어갔다. 보직은 항공 운송장을 작성하는 오퍼레이터.


회사로 외국에서 전화가 오는 일도 있었고 옷도 자유로웠다. 청바지나 학교다닐때 입던 치마를 입고 가도 괜찮았다. 사원증도 받았고 여기까지 모두 쿨했다.

보직은 파견직이었지만 괜찮았다. 나는 졸업생이 아니니까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Cool하지 않네?

초반에 무역용어를 알려주는 오리엔테이션을 몇일간 했다. 노트에 빼곡히 받아쓰고 눈빛도 초롱초롱 빛내며 들었다. 질문하면 답변도 열심히 했다. 이 정도면 내 똑똑함을 눈치챌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외활동도 많이 해봤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당연히 이런 나를 금방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견직인 나의 업무는 딱 알바지원서에 쓰여있던 그 수준이었다.


하루에 송장 몇백장을 기계처럼 똑같이 쓰고 복사 몇번이 다 였다. 비행기가 뜨는 시간에 맞춰 아침에 한번 오후에 한번 하루 일과는 똑같이 지나갔다.


나는 좀 회사에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려고 아침에 드립 커피도 내렸다. 이 정도면 눈에 보이고 칭찬도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이었던 과장은 내 눈에는 완전 쓰레기였다.

입사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도 그렇겠지만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일단 나이는 젊어 고속승진했지만 영어도 잘 못했고 뭐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위사람에게 아부나 떨면서 업무 따오는건 좋아했지만 밑에 직원에게 모두 떠넘겼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야근 수당을 챙겨갔다.

 

같이 일하던 언니들과 떠들면서 내 모든 분노는 그에게 향했다.

중간 시간에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인터넷과 책을 보거나 했고 몰래 몰래 블로그도 했다.

내가 딴짓하는 건 모두 나에게 제대로된 업무를 주거나 내 능력을 알아봐주지 않는 그 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참고 참다가 터진게 그 날이었다.

내가 뛰쳐나가서 그가 고용보험문제로 곤란해지기를 손모아 기도했다.


그는 쓰레기였지만
나는 어린이였다


이 글을 읽는 대학생 독자들은 '와 사이다!'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회사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거 되바라졌네?' 라고 생각할 것이다.


요즘 헬조선 타령에 이 사회전체를 부정하는 집단들도 '그거봐 우리 사회는 썩었어'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근데 내가 겪어보고 사회인이 되어보니 알았다.

그 과장은 분명 쓰레기였지만 나는 완전 어린이였다. 학생의 마인드로 몸만 회사로 온 상태였다는 걸.

지금의 2016년의 나는 2008년의 나에게 여러가지를 말해주고 싶다.


인턴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필요가 있을까?

회사는 수익을 창출하는 이익집단이다. 단순히 문서를 만드는 것 같아도 수십 수천명의 월급이 왔다갔다하는 돈이 좌우된다.

고작 파견직으로 들어온 인턴수준의 알바에게 중요한 결정에 관련된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신입사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가지 일이라고 해도 여러개의 부서가 엮여있는데 그런 모든 관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일을 맡길 수가 있는 거다. 하루아침에 능력만으로 베테랑이 되긴 힘들다.


학구열에 불타는 모습은 학교에서나 먹힌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교육도 들었고 대답도 잘 했는데 왜 나의 똑똑함을 인정하지 않냐고 볼이 부어있던 나에게-

그 회사에서 나의 그런 종류의 똑똑함은 필요없었던게 아닐까? 내가 똑똑한건 시험이고 학점이었지만 실무에서 필요한건 경험이니까.

다른 파견직보다 훨씬 똑똑하다고해도 나는 실무적으로 경험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상사는 자신의 지식을 넘겨줄 의무가 없다

회사는 그렇다. 장기적으로 데리고 쓸 직원에게 교육을 통해 성장시킬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 때 내가 분노한건 과장이었다. 그런데 사실 똑같이 월급받고 다니는 직원이  자신의 지식적 노하우를 후배라고 해서 다 알려줄 필요가 없다.

 내가 선배된 입장에서 나조차도 처음 후배를 보면 나는 뻔하게 아는걸 너무 모른다 싶어서 답답한 올챙이적 생각안나는 개구리가 되어버린다.

 하물며 신입도 아닌 파견직에 무관심한 그 과장이 시간버려가며 무엇하러 그런 교육을 해줄거라고 생각하나.

 굳이 배우고 싶었다면 자료라도 까보면서 배웠어야했다. 미생에서처럼 무역용어라도 적어가며 의미를 공부했어야 했다.


쓰레기에 어린이가 덤비니까 결과가  최악이었다

그래 바로 이게 젤 문제였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쓰레기였다. 하지만 난 너무 어린이였다. 청소년기 반항아처럼 지각하고 딴짓하고 불손한 태도보이는 것을 그가 쓰레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내가 어린이였다.

나한테 관심이 없기에 화났던거다. 나도 잘 떠올려보면 나의 관심사도 회사보다는 나의 미래와 연예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너 역시 정규직을 꿈꿨지만 행동은 그럴만하게 하지 않았다. 



결국 나에게  Cool한 회사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간에 내 위주로 돌아가는 성공스토리를 써주는 회사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안다. 그런 회사는 없다. 헬조선이라서 없는게 아니라 회사는 생명체가 아니기에 날 위해 움직여줄 수 없고 오로지 내 미래와 성공스토리는 내가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할만하다 싶었다면
너에게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 거야"

인턴으로 들어가든, 파견직으로 들어가든 학생의 신분으로 회사에 갔다는 건 원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직업에 대한 경험도 하고, 자기의 혹시 모를 성공스토리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누가 먼저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의 기여도는 자기 스스로가 더 드러나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얼마전에 읽은 독일회사에 대한 브런치글도 인턴이 직접 자신의 기여도를 말한다고 하지 않았나.


얼마전 네이버 취업카페 스펙업에서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턴으로 잡일하느라 새벽 3시까지 죽을 뻔 했는데 위의 상사가 와서 인턴이냐며 일 많이 안하는데 돈 많이 받아가서 부럽다고 했다고 한다. 댓글도 당사자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하며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사의 말도 사실인지 모른다. 인턴이 받는 100만원과 자신의 300만원이 시급으로 따지면 더 말도 안되게 적거나 육체적인게 아닌 스트레스에 의한 업무강도가 말도 안되게 높을 수 있다.

오죽하면 직장인들은 매일 퇴사를 꿈꾸고 대학생 때를 그리워할까.. 


2007년의 나처럼 로망만 품고 학생 마인드로 회사로 향하는 친구들에게 이것만 꼭 알려주고 싶다.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이 회사 별 거 아니고 별로 하는 일도 없다 싶다면 너에게는 아직 아무 것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위의 사람들이 집에 못가면서 나만 퇴근시키는건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에게 시킬만한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거고, 나를 왜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지 화내고 있다면 지금 위의 사람도 널 어떻게 다뤄야할지 몰라서 끙끙대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날 좀 이런 식으로 써보라고 넌지시 아주 예의바르게 힌트를 줘라. 물론 윗사람이 쓰레기라면 그거에 화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적인 시도라도 해보고 화를 내자는 거다. 


쉽지 않겠지만 헬조선이라고 해도 이 사회에서 얄밉게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철저하게 지배논리대로 움직여서도 아니고 대단하게 뛰어난 사람이라서도 아니다. 

아웃라이어의 마인드까지 가지도 못한다면 회사에 갈 때는 회사원의 마인드로 가야한다. 

그래야 얄밉게 살아남는 첫발짝이라도 짚을 수 있다.


혹시 휴학생일지라도 회사를 향할 때는 학생의 마인드는 집에다 두고 가자. 

회사가 별로라면 이직을 고려하는 회사원의 마음이 되어야지, 알바를 도망치는 학생이 되면 이런 일이 생긴다. 나중에 분명 나처럼 후회한다. 

뭐,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학생마인드가 무엇인지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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