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그냥 Oct 29. 2016

이런거하려고 여기 입사한게 아니에요!

네 거친 생각과 불안한 팀원과 그걸 지켜보는 나

제가 이런거하려고
여기 입사한게 아닙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어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멘트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악당 상사에게 고통당해서 마지막에나 내지를 법한 멘트였다. 이런 멘트를 신입사원이 팀장에게 했다고 하면 어디 회사괴담에나 등장한 민간 설화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말을 뱉은 친구도 이 말을 들은 사람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저 평범한 회사원들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신입사원의 의욕

전해들은 이야기의 전말은 이랬다.

다른 지원부서에서 각 팀에 행사참여 여부를 모으기위해 그 팀에 연락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누구에게 연락할까 고민하다가  조직도에서 가장 꼬랑지에 있는 사원이 있길래 전화를 해서 요청을 했단다.


요청하는 다른팀의 과장님이 어떤 어투로 신입에게 일을 시켰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건 신입은 화가 나버렸던 것이다.

 

 나름 대기업에 좋은 스펙으로 어렵게 들어온 그 친구는 멀끔한 외모에 당연히 기대주라고 불렸다. 대외활동 경험도 많았고 활동적인 성격인 그는 회사에 와서도 자신의 능력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입사 직후부터 팀내에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선해보고 싶은게 참 많았고 급기야 사내 아이디어 공모에 도전해서 계속해서 수상도 했다고 한다.대표님의 칭찬도 들으며 신나게 해외포상을 다녀온 것도 2차례나 되었다.

나라도 어깨가 으쓱해질 상황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 될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 같다.


 다시 처음의 그 멘트가 있던 날로 돌아가보자. 신입사원은 어렸지만 그 말을 들은 그 팀장님은 정말 훌륭하게 대처를 하셨다고 한다.

 팀장님은 먼저 요청을 했던 그 팀에 바로 전화를 해서 무엇을 지시했는지 파악하고 그 친구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설명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업무를 일단은 다른 직원에게 넘겨주시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그 작은 사무실에서 별안간 드라마 멘트가 발생했으니 그 팀의 수많은 선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후배아닌 손님같이 어려운 너

 6시가 되면 그 신입은 딱 일어서야만 했다.

일도 없이 사무실에서 한참을 버티니 좀이 쑤셨을 게다. 하지만 자존심은 있어서 갈 때면 야근하는 선배들에게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회사에서 가라고 만든 퇴근시간을 너무 습관적으로 안지키는 것 같아요"


 신입이라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같이 입사한 팀내 동기는 저녁야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복차원에서 일을 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신입이 단독으로 업무를 할 수는 없어서 선배들이 업무를 나눠주어야하는데 혹시라도 일을 줬을 때 '이런 거'에 포함되서 화를 낼까봐 선배들이 겁이 난다고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참여했던 공모전도 문제로 바뀌어 돌아왔다. 이 신입이 주로 제출했던 개선안은 그가 속해있던 팀의 업무에 대한 개선안이었는데 사실 갓입사한 이 사원이 진짜 속속들이 알고 개선안을 내는것은 불가능했다.

 트렌드에 맞춰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를 낸 것도 사실이었고 실무를 정확히 모르는 대표님이 보기에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당장 개선하라는 명령으로 팀에 지시가 하달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아이디어를 본인이 냈어도 실제 실행할 깜냥은 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정작 일을 대신 맡게 된 선배팀원들은 중요한 업무 다 미루게하고 없던 일 만들어내고 정작 업무에 도움도 안되는 이 친구가 답답했다.

 그렇게 반복되다보니 선배들은 이 사원에게 작은 업무를 준다거나 기회를 주는데 더 인색해졌다. 재능을 펼쳤는데 정작 배움의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악순환

 학생의 환경에서는 우수한 성적과 학내 수상은 명성과 지위를 바꿔준다. 교수에게 인정 받는다면 동기들에게 칭송받기도 쉽다

 아마도 이 신입사원은 회사에서도 동일한 전략을 구사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뛰어남을 자랑해서 주류를 차지하려고 했었다고 보여진다. 그게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 같은 거였다.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는데도 회사에서 짬 취급 당한다는 생각에, 잔업무는 싫다고 선언해도 될 당위성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면 상도 타지 못한 동기에 비해 작은 업무저차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였을 수도 있고.


 업무의 범위설정이나 퇴근할 때 말을 생각해보면 이 친구는 분명 기싸움을 시작했던것 같다.


 회사의 낭설 중에 이런 것들을 맹신했던게 아닐까

일을 바로 처리해주면 일이 더 많이 온다.

친절이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신입때부터 칼퇴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야근을 못시킨다.

어감은 다르지만 '초장에 기싸움을 이겨야한다' 말과 일맥상통 한다. 한명도 아닌 20여명의 선배들과의 기싸움이라니 정말 쉽지 않은 게임을 시작한건 확실해 보인다.


불행히도 같은 방식의 아이디어 제안 전략과 기싸움을 하면 할수록 관계와 지식에서 계속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의 바둑은 두지 말았으면 해요

드라마로도 방영된 웹툰 '미생'에서 보면 주인공 장그래는 그날 그날 회사 선배들과 있었던 일들도 대국처럼 생각해서 기록을 해두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김대리는 말했다. 나와 대화할 때는 대국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학교라는 개인전에 익숙한 대학생들이 회사에 오면 일부는 전쟁을 시작한다. 팀이 익숙치 않고 요점정리 해주지 않는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도  익숙치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 팀과제에서 성실하지 않으면 이름을 빼버리는 경험은 있어도 어쨌든 다들 학교생활은 십여년된 베테랑이었으니까 다들 개인전을 위한 동맹을 잘 유지했다. 이렇게 같이 해도 나는 A받고 쟤는 B받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회사는 팀이 운명공동체처럼 움직이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물론 평가도 있고 경쟁도 있지만 사원레벨에서 전쟁까지 할 이유는 거의 없다.


https://brunch.co.kr/@penguinism/93

사실 오늘 본 브런치의 한 글에서 오늘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신입사원이나 저 공룡이나 자리에 맞게 깎고 맞출 생각이 없더라도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때까지 약간의 시간은 좀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뭐 참고로 그 친구는 팀을 옮겼고.

회사 차원을 넘어서 그룹사의 공모전에 또 도전중이다. 전략은 그대로인것 같은데 들리는 소문이 줄어든 것을 보면 마음속의 모두에 대한 전쟁은 더이상 하지 않고 있는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학생'이 '회사'에 갈 때 생기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