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냥 : 제일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애사심 넘친다, 임원될 거 같다 이런거 아니었나요? 갑작스럽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신 이유가 뭐죠?
이미준 : 평소 가장 많이 듣던 오해의 멘트들인데요. 제가 열심히 일한건 덮어놓고 '애사심'이라는 구시대의 정신때문은아니었고요. 제 일이고 제 서비스에 대한 애착, 그리고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었죠ㅎ
남들 다 떠날 때도 남아있었던건 제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고, 비전은 셀프라고 생각하기때문도 있었어요. 책에도 썼듯이 시스템과 관계에서 많이 아는만큼 장점도있었고요.
도그냥 : 그럼 이제 할 일이 없어지신건가요? ㅎㅎㅎ
이미준 : 이 회사에서 해보고 싶은 일은 다 해봤다고 생각하고요, 차분하고 깊게 고민해서 방향성 있게 하고 싶은데 지금 환경에서는 너무 급하게만 일해야해서 그러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보다 더 성장하려면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과 일해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그냥 : 같이 일하는 분들이 막 아쉬워하지 않으시나요?
이미준 : 아쉬워하죠. 아무래도 오래 같이 일했고, 제가 최근에는 무리한 요구들을 대신 싸워주거나 이유를 설명해주거나 하는 것들을 많이 해왔는데 이제 그럴 사람이 없어질거라 다들 걱정하더라고요, 쉴드 없어진다고 ㅋㅋㅋ 저는 기획자의 역할이 '해야할 것을 판단하고 할 수 없는 것은 명확히 파악해서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서로 무리없이 목표를 따라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반응들을 들으니까 내가 그래도 생각했던 역할을 잘 해왔구나 생각이 들었죠. 일하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잡아주고 하는 그런 역할은 앞으로도 가장 지향하는 부분이에요.
도그냥 : 나가시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뭐가 있을까요?
이미준: 아무래도 사람이죠. 시스템은 사이트가 아예 달라진 적도 여러번 있고 어디를 가도 여기보다 복잡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겁은 안나요ㅋ 이제 몇몇 요청자 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잘 판단해서 일하고 싶어요.원래부터 '직급으로 눌려서 일해야하면 내가 기획자를 왜하냐'는 신념으로 하고 싶은 말 다 해왔지만, 대기업의 한계라는게 있으니까요~
근데 지금까지 쌓아온 동료들과의 신뢰를 다시 쌓아야한다고 생각하니 약간 겁나네요. 게다가 저는 여기저기 노출된 곳도 많다보니 사람들의 기대와 '얼마나 잘하나 보자'이런 시선도 분명 있을거고 신입부터 성장해온 이곳과는 또 다르겠죠?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요.
도그냥 : 퇴사가 코앞이에요. 어떤 것들을 기대하고 계세요?
이미준 : 일단 저는 쉴 필요가 있어요. 입사 이후로 가장 길게 쉰게 딱 1번 2주를 쉰 것뿐이고 그때도 플젝 중간에 다녀온 거라 마음이 조급했었어요. 신혼여행도 테스트기간 직전에 가서 쉬지도 일주일만에 복귀했고, 진급시험도 남들 2주쉬며 준비할 때 프로젝트중이라 하루 쉬고 시험쳤거든요. 애초에 못 쉴거같아서 한달전부터 매일 나눠서 공부했었죠. 명절에 붙여서 쉬는 것도 지방 안가니까 괜찮다고 다 양보했었어요 생각해보면 항상 프로젝트 중이었는데 프로젝트 생각해서 쉬는 시간을 줄였던 탓에 남들보다 정말로 쉬어본 적이 없더라고요, 정말 자유롭게 마음 편히 푹 쉬어보고 싶어요.
도그냥 : 이직한다니까 가시는 곳에 대해서도 많이들 궁금해할 것 같아요ㅎ
이미준 : 네, 그건 오프라인에서는 미리 말씀드리고 있는데 실제 공개는 10월에 사원증나올때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들으신 분들은 제가 가서 할 역할이 있어 보인다고 고개를 끄덕이시더라고요. 근데 일이란게 원래 예측한대로만 되는건 아니니까 가서 정말 잘할 일들을 찾고 세팅해봐야죠.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할 분들을 제가 모집하게 되면 좋겠네요ㅎㅎ
도그냥 :이직이 브런치나 대외활동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이미준 : 이직해도 대외활동을 못하게 하는 곳은 처음부터 제외대상이었어요ㅎㅎ 글을 쓰고 나누고 공부하고 생각하는 활동이 회사 내의 나도 더 성장시켜 주었거든요. 누구나 삶이 고되면 하던 대로 되는 대로 하고 싶어져요. 방향성 있는 삶은 '도그냥'으로서의 제가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도그냥 : 그 말을 들으니까 정말 안심되네요. 저도 '이미준'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도그냥은 없었을거라 생각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미준 : 남들이 나르시스트같다고 안하겠어요?ㅎㅎㅎ
도그냥 : 뭐 어때요, 글이란게 원래 자신을 알아보고 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활동인걸요:)
이미준 : 마지막으로 물어보실 것은 더 없으세요?^^
도그냥 : 마지막인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이미준 : 공식적으로는 메일을 보냈어요. 조직도를 보면서 한명한명 찾아서 일일이 수신자를 넣었어요ㅎ 저같은 직원 나부랭이가 전사로 보내는 것도 웃기고 그렇다고 인사도 안하고 가는 건 제 세월에 대한 마무리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마지막 인사 메일은 2일은 쓰고 다듬었어요. 인터뷰 마지막에 첨부할께요, 메일에 받은 답장들도 마음에 굉장히 많이 남더라고요:) 가벼운 축하인사부터 고맙단 이야기들 진짜 가슴에 많이 남았어요ㅎ
도그냥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이미준 : 남들에게 흔한 이직이지만 제 인생에서 첫 회사와의 작별이라 유난히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서비스기회자란 직무는 여전히 국내에서는 커리어패스가 불분명해요. 20년정도 밖에 안된 직업이면서 동시에 롤이 계속 확장되는 직업이라서요. PO나 PM이 서비스기획자와 다르다고 우월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서비스기획자도 PO,PM도 계속 변화하는 중이고 국내의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지요. 쿠팡출신 기획자분의 말이 생각이 나요. 넓게 일하는 서비스기획자는 PO나 PM역할을 할 수 있지만 PO나 PM만 해본 사람은 서비스기획자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고요.
한 회사에서 모범적인 선배로서 기획자 후배들의 길잡이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경력직이 되어버렸으니 마음 더 크게 먹거 절 아는 모든 기획 후배님들이 참고할만한 커리어패스를 설계해 보려고요. 물론 그냥 하나의 예시로서요.
그래서 누구보다도 도그냥님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도그냥 : 그럼요. 제가 누구보다도 미준님을 믿고 응원합니다^^ 제가 안믿으면 누가 믿어주겠어요?
우리 힘내요!! 화이팅!!!!
8월 28일 마지막 퇴사 메일,
Subject: 그 동안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미준 책임입니다. 올해로 롯데에서 보낸 시간이 10년, 만으로 9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린 신입사원이 성장하여 책임이 되었습니다. 입사시절 계시던 많은 분들이 떠나가고, 8명이던 제 동기는 어느새 1명만 남을 만큼 시간이 흘렀네요. 그래도 함께 해주시는 좋은 분들이 여전히 많고, 얼굴도 모르는 많은 후배님들도 생겼습니다. 이미 들으신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새로운 환경에서 더 성장하기 위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오랜 기간 다녔는데, 직접 뵙고 인사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마지막날이 되어 메일로 퇴사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짐을 가지러 31일에 사무실을 방문할 예정이긴 합니다.) 이 곳에서 상상만 하던 UX기획, 서비스 기획 업무를 배울 수 있게 되면서 신나고 기뻤던 적도 많고요, 고민하고 공부하고 논쟁하면서도,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UX기획, 서비스기획 업무를 중심으로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부분에 있어서 조율하고 협의하고 논쟁하고 해결해야할 것들도 많았지만 스스로 서비스 정책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대부분 성장의 기회였고 실제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프로젝트의 특성상, 대화할 일이 없을 수 있는 회사내의 여러 조직에 속한 분들의 업무와 입장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회사에 입사하면서 품었던 제 목표들의 많은 부분을 이룰 수 있었던 행운아에요, 지금은 없어진 ‘롯데닷컴’에 2011년에 입사하면서 2가지 목표가 있었는데요. 1) 자신의 직무에서 전문가 되기 :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커머스에 대해서 깊고 넓게 공부할 수 있었고, ‘이커머스 시스템 전문가’라는 꿈을 위한 10년의 초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2) 제 직무를 잘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더 잘 알려줄 수 있는 사람 되기. : 올해 6월에 서비스기획, UX기획에 대해서 후배들이 배울 수 있는 책인 <(현업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서비스기획 스쿨>을 출간했고, 최근에 2쇄가 나왔고, 전국의 전혀 서비스기획을 공부할 방법이 없던 지망생들을 위한 책입니다. (서비스기획, UX기획이 뭐하는 일인지 여전히 모르시겠다면 제 책이지만 추천드립니다. ) ‘회사 내의 이미준’이 ‘회사 밖의 이미준’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고, ‘회사 밖의 이미준’이 ‘회사 내의 이미준’을 더 공부시켜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성 있는 회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기획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지금까지 함께 일 해주시고 친절히 설명해주시고 시간 내어 논쟁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첫 회사라 정도 많이 가고, 또 기대했던 바도 많아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꼭 같은 회사가 아니더라도, 좋은 분들과 계속 인연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렇게까지 다정한 사람이 아니어서, 함께 있을 때도 먼저 연락하고 밥먹자고도 많이 못했는데요, 제가 사적으로 보고 싶으실 때, 궁금할 때 연락주세요^^ 모든 분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시든지 응원하겠습니다. 첫 직장의 첫 퇴사라, 마지막 인사도 참 길어졌네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뒤숭숭한 2020년 안전하게 마무리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