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닐 때 쓴 무척 짧은 레포트에요:)
최근 석사학위를 취득한 고려사이버대학교 융합정보대학원에서 2018년에 썼던 4쪽짜리 짧은 레포트에요.
요즘 BTS가 빌보드 1위하는 이 시점에 우연히 다시 생각나서 꺼내봅니다.
이른바 각각의 분야의 경계가 분명하고 전문화를 추구하던 ‘분화의 시대’를 지나 탈경계의 ‘융합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정보통신과 교통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시간과 공간의 압축’이 가속화되어 세계의 지구촌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러한 세대에 태어난 융합문화 세대들은 새로운 문명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융합 시대에 살아가는 이른바 융합 네이티브 세대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시공간의 제한없이 다중적인 작업과 다중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새로운 사상과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1]
고려대학교의 김문조 교수와 김남옥 연구원이 공동작성한 연구논문인 ‘융합시대의 문명론적 진단’에서 이러한 융합의 시대를 단순히 기술적인 차원이 아닌 하나의 문명으로 간주하고 ‘패러다임으로서의 융합 문명’이라 정의한다. 문명이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의미[2]하며,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문명은 계속해서 진행 중인 진보의 개념을 정의한다
.
김문조 교수는 문명이란 사회적 상태이자 과정으로서 여행 중 발견되는 경관처럼 포착되는 모습으로 진단하고자 한다.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문명의 경관들을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활용하여 사회적 패러다임으로서 통찰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미분화 -분화 – 탈분화의 3가지 문명적 패러다임 전환을 제기한다.
첫번째 문명인 농업, 수렵 문명은 모두가 동일한 형태의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분화가 되기 전 미분화 문명으로 이야기된다. 두번째 단계인 산업문명의 시기는 소위 ‘제2의 물결’이라고도 불리는 시기로 컨베이어벨트의 테일러리즘으로 떠오르는 분업과 산업 세분화가 이루어지며 2차 산업, 3차 산업에서 다양한 직업의 세분화와 전문화라는 분화의 시기를 거친다. 이를 통해 ‘전문가’라는 집단에 대한 사회적 신념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탈분화의 문명적 패러다임으로 현재 우리가 포함된 융합 문명을 제시한다.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을 기반으로 근대적이고 고정된 사상이 파괴되고 비예측적이고 우연성과 복잡성을 띈 사상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기존의 산업사회의 기준이 무너지고, 스마트폰과 같은 기술적 융합(convergence)의 산출물들이 산업의 모습과 조직, 문화, 사회의 모습과 규범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김문조 교수의 패러다임적 문명론은 현재 진행중인 융합문명의 여러 차원의 경관을 정의한다. 기술적 경관(디지털 기술의 발달), 경제적 경관(유연적 축적체제의 정립), 정치적 경관(지배구조의 다원화), 사회적 경관(상호의존성의 지구적 확장), 문화적 경관(다문화주의의 융성), 사상적 경관(탈근대 의식의 확산)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실제 현재의 문명은 융합 문명에 도달했다고 정의하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실제 사회적 차원에서 앞서 정의된 융합 문명의 경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자 한다.
‘문화’와 ‘문명’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물질적·정신적으로 진보한 상태를 뜻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문화'는 종교·학문·예술·도덕 등 정신적인 움직임을 가리키고, '문명'은 보다 더 실용적인 생산·공업·기술 등 물질적인 방면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기술 문명', '토론 문화' 등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그래서 '문화'를 정신 문명, '문명'을 물질 문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3] 문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연적으로 사상과 인식 구조의 변화를 통해 문화적인 변화도 가져온다는 점에서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융합 문명의 전경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서는 점차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가는 ‘팬(Fan) 주도 문화’를 통해 융합 문명의 전경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 문화를 선정한 이유에는 융합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문화를 선정하기 위해 과거 산업문명 시기부터 발생되지 않은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된 이후 발생한 문화이자, 10대 때부터 정보통신에 노출되어 소위 융합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는 1980년 이후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로서 의미가 있다.
물론 1990년대 이전에도 나훈아, 남진 또는 조용필과 같은 가수들에 대해 대규모의 팬이 형성되었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문화로 규정하기 어려우므로 제외하였다. 문화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ㆍ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른다.[4] 1990년대 말 이후 PC통신과 오프라인 팬클럽의 형성으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모여진 사회적 집단이 공유하는 공동의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 때부터를 하나의 ‘팬 주도 문화’라고 명명하고 이를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김문조 교수가 정의한 융합 문명의 6가지 경관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1) 기술적 경관(디지털 기술의 발달),
2)경제적 경관(유연적 축적체제의 정립),
3)정치적 경관(지배구조의 다원화),
4)사회적 경관(상호의존성의 지구적 확장),
5)문화적 경관(다문화주의의 융성),
6)사상적 경관(탈근대 의식의 확산),
이 중 몇 가지 관련된 경관을 통해 팬 주도 문화의 현상들에서 연관되는 모습을 확인하고자 한다.
1) 기술적 경관(디지털 기술의 발달)
융합 문명에서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모든 정보를 디지털적 속성을 가지도록 했다. 디지털화된 정보는 정보의 유실없이 무한 복제가 가능하며 자유로운 조작과 변형이 가능한 가공성을 가진다. 이러한 기술적 양태는 매체 이용자들은 정보의 수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적극 참여하는 프로듀져 (produser=producer+user)로 거듭하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수동적 자아가 아닌 강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아정체성을 나타나게 한다고도 설명된다. [5]
팬 주도 문화에서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문화 형성의 핵심적인 플랫폼으로 작용한다. 팬들은 방송이나 영상 등 주요 매체를 캡쳐 혹은 복제하거나 온라인 상으로 유통되는 사진 이미지를 다운로드를 통해 손쉽게 복제하여 공유한다. 또한 대규모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자신이 직접 찍은 스타의 사진도 직접 유통시킨다. 또한 재가공이 쉬운 특성을 바탕으로 포토샵 등을 이용하여 사진이나 영상을 재가공하여 재배포한다. 단순히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일부 팬들은 캘린터, 바탕화면, 시간표 등 일상 속의 다른 제품으로 생산하여 ‘굿즈(goods)’라는 형태로 팬들간의 거래를 하거나 나누기도 한다.
핵심적으로 생산활동을 많이 하는 팬들은 이 문화권내에서 좋아하는 연예인 대상이 아님에도 핵심적인 인물로 활동한다. 소위 ‘홈마’[6]라고 불리는 핵심 팬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무리를 형성하고, 의견을 모으기도 한다.
2) 경제적 경관(유연적 축적체제의 정립)
포드주의의 대량생산체제가 포화되면서 다품종소량생산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조직과 생산에서 유연적 축적체제가 정립된어간다. 이에 따라 노동체제는 불안정해지고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여가 시간의 확대를 가져온다고 설명된다. [7]
팬 주도 문화에서 여가 시간의 확대는 중요하게 작용된다. 일부 팬들의 경우, 대상 연예인의 해외 스케줄을 모두 따라가고 핵심 팬들의 경우 콘서트 전일을 예매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팬층이 넓은 가수의 경우, 5분내에 콘서트 전석이 매진되고 더 높은 값의 프리미엄 가격을 형성하는 암표 시장이 성행하기도 한다. 즉,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직업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여가시간이 형성되어야 하고, 경제적인 자유도도 높아야 가능하다. 편견과 다르게 팬문화에서 주요한 경제적 요소는 많은 돈을 가진 30대 이상이 주도한다.
3) 정치적 경관(지배구조의 다원화)
융합 문명에서 정치적 경관은 권력의 분산화의 형태로 보여진다. 온라인에 의해 정보가 쉽게 옮겨지기 때문에 중앙권력이 분산된다. 팬 주도 문화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나타난다. 과거 연예기획사는 일방적인 연예인에 대한 정치적 권력을 보유했다. 하지만 지금은 팬들은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낸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일본 진출에 관련하여 우익 작사가와의 협력 소식을 빠르게 접한 팬들은 이에 대해 집단 항의글을 내고 기획사를 압박했다. 결국 협력은 철회될 수밖에 없었다. 그룹 가수의 멤버 중 일부가 부적절한 일을 할 경우, 팬들이 단체 성명을 발표하고 멤버의 탈퇴나 사과를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한 일부 팬집단은 직접 행사를 만들고 기획사에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도 한다.
4) 사회적 경관(상호의존성의 지구적 확장)과 5) 문화적 경관(다문화주의의 융성)
융합 문명에서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쉽게 전세계의 이슈에 접근 가능하다. 이로 인해 초국적 집단이 형성되고 권력을 형성하기도 한다.
Kpop의 팬 문화도 더 이상 국가내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적극적인 홍보없이도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빌보트차트를 석권하고 있고, 유튜브에서 그들의 춤을 따라하는 외국인 팬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집단은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워너원의 중국 팬들은 멤버 박지훈을 위해 사막에 1천그루의 나무를 기부하기도 했고, 워너원의 강다니엘의 생일을 맞이하여 전세계의 팬들이 모금을 통해 미국 타임스퀘어 광장의 메인 광고창에 일주일간 생일축하 광고가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 동일한 팬문화도 다양한 문화적 형태가 나타난다.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거나 2차 영상을 제작하고, 굿즈를 사는 무리가 있는가하면 연예인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성이 받아들여지고 또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필자는 팬주도문화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가 김문조 교수가 주장한 융합 문명에 도달해있는지 평가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세계화와 기술이 내재화된 융합 네이티브 세대가 향유하고 있는 팬주도문화는 융합문명의 특질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문화를 향유하는 집단이 이 시대의 모든 세대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적 문명은 앞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언제든지 세대 부적응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계층이 나뉜 문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융합적 사고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고 할 수 있겠다. 서로 사고관이 다른 계층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융합,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패러다임을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융합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지속적인 고민과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융합 문명은 미래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삶은 그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며 진행되고 있다.
[1] 김문조 외 1인,[융합시대의 문명론적 진단], 재인용.
[2]표준국어대사전 인용, https://ko.dict.naver.com/detail.nhn?docid=14351900
[3]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네이버 재발행에서 인용, https://ko.dict.naver.com/rescript_detail.nhn?seq=263
[4]표준국어대사전, https://ko.dict.naver.com/detail.nhn?docid=14437200
[5]김문조, 2010,『융합문명의 도전과 응전』,정보통신정책연구원.
[6] ‘홈마스터’의 줄임말로, 홈페이지에 직접 찍은 사진이나 굿즈 등을 공유하며 수많은 팬들의 리더로 활동하는 이름이 알려진 팬.
[7]김문조, 2010, 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