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투심을 사랑하는 방법

삼십대 여자의 자랑스러운 질투의 역사

by 도그냥


그 친구가 그렇게 잘한다더라고

회식자리에서 동종업계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직 1년도 안된 신입인데 마치 5년은 일한 것처럼 너무나 똑똑하고 레벨이 다른 신입이 있다며 팀내에서 평가가 그렇게 좋다는 이야기였다.


심장이 움찔했다. 표정이 나도 모르게 어색해졌다. 신입에서 멀어진지 이미 오래인 6년차인 나인데도 나는 또다시 질투를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인정받고 싶어하는 나의 오랜 태도 중 하나였다.




질투의 화신

내 질투의 기억은 아주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난 태생이 이미 비교대상이 있는 둘째였고 어린시절부터 언니라는 존재와 항상 경쟁을 해야했다.

성격이 만들어지는 초등학생때까지 언니는 언제나 나보다 키가 컸고 잘했고 무엇이든 나보다 3년씩 일찍 했다. 어찌보면 3살의 차이만큼 적절한 라이프사이클대로 성장한 것이겠지만 절대 이겨볼 수도 없는 나에겐 너무나 큰 장벽이었다.

그나마 공부나 성적은 어떻게든 커버가 됐지만 외적인 부분은 쉽게 될 수 없었다.

"똑같은 딸이지만 사실 언니가 얼굴은 더 예쁘지"

우리 엄마가 별뜻없이 했던 그 말은 평생 마음에 남았고 원망한다기 보다는 어린 나이에 지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써야만했다.

덜예쁜건 사실이었고 키도 결국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체육도 잘 못하고 살도 더 잘 붙는 타입이었고 눈도 나빠 안경을 썼고 비염도 심해 부정교합과 다크서클도 찾아왔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언니에게 지는 게 확실한만큼 난 적어도 내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언니만큼은 하겠다고 뭐든지 아등바등했다. 엄마가 암묵적으로 비교하고 날 독려했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다. 그저 나는 나대로 내 가치를 증명받을 방법을 찾고 싶었다.


질투는 나의 힘?
댓츠 노노~질투는 공허하다

나의 질투심의 존재를 알아챈 건 초등학교때였다. 같은 반에 머리가 긴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여성성이 높아 인기가 많았다. 나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도 그녀를 꽤나 질투했다.

싸움의 이유도 내용도 기억이 안나지만 상담실에서 선생님을 붙잡고 나는 사실 그녀를 질투했노라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평생 집안에서 진 외모싸움을 밖에 나와서도 계속 진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싫었다. 그렇게 나는 내 질투심의 존재를 깨달아갔다.


문제는 대응법이었다. 한차례의 외모열등감을 지나치면서 내가 찾은 방법은 "돌아가기"였다. 어차피 외모가 안되면 매력으로 승부하고 그것도 안되면 똑똑함으로 승부보자는 것이었다. 말은 그렇지만 사실 빈틈을 파고들자는 속셈이었다.

언니가 가수를 쫓아다니며 공부를 안한다고 혼이 나면 나는 미리부터 교과서를 한번 더 읽는 식이었다. 미리 칭찬의 씨앗을 뿌려놓고 나의 컴플렉스와 열등감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했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착한 딸 모범딸이 되어갔다. 이제 혼나는 쪽은 언니였다. 나는 공부도 열심히하고 엄마 마음도 다 이해하는 착한 딸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언니에게도 한번 제대로 개기지조차 못하는 동생이었다.

칭찬받고 싶은 질투심은 날 '착한 아이 컴플렉스' 에 빠지게 했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락밴드 동아리에 보컬 파트로 들어갔는데 동아리원들끼리 자유롭게 어울려서 팀을 짜는 구조로 움직였었다. 내 실력은 그저그랬고 하드한 락을 하기엔 여자라 부족했고 jazzy한 곡을 하기엔 실력이 부족했다. 합창을 오래한 터라 발성도 락보컬이 되기 부족했다. 못난 나는 또다시 질투심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나도 공연하고 싶고 팀을 하고 싶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난 별로였기에 먼저 나서지 못했다. 대신에 나는 내가 했던 '돌아가기'를 또 자처했다. 동아리에서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공연기획에 열을 올렸다. 포스터를 만들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공연 장소도 섭외했다. 그게 내가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역시 공연하고 싶고 같이 누군가가 팀을 만들자고 말하기만 기다리는 마음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욕망처럼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동아리 활동의 한켠은 항상 공허했다.


너는 약간 시녀기질이 있는 것 같아

그런 자발적 착한 아이에게 어느날 뻔한 칭찬이 아닌 칼날같은 진실이 날아왔다. 요즘 말로하면 "팩트리어트"폭격이었다.

동아리의 철학과 선배는 제법 깊은 펀치라인을 남겼다. 내 태도가 내 행동들이 무언가 칭찬과 인정에 목마른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라는 말이었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집에 와서 가족들과 상의했더니 모두들 그 오빠가 헛소리하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깨닫고 있었다. 그 오빠가 맞고 가족들이 틀렸다는 걸.


나의 돌아가기 전법은 결론적으로 나에게 칭찬을 가져다 주었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언니보다 예쁘단 소리가 듣고 싶고 내 노래를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듣고 싶은 칭찬과 아무 상관없는 말들일 뿐이었다.

나는 공허했다. 이런 나의 질투심을 드러낸다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내가 잘하는 것들로 선택했던 대안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타인의 평가에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시녀처럼 칭찬받을만큼 거슬리지않게 좋은 평가에 집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으로 내세운 내가 잘하는 것들의 가치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해내서 자랑스럽고 뿌듯함을 느낄 타이밍에 공허함을 느꼈다. 덕분에 항상 부족한 사람으로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그 선배의 말을 계기로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내 감정을 다시 똑바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내 질투를 내리누르지만 말고 똑바로 쳐다보기로 했다.


나는 질투가 심하지만 모든 것에 질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 체육을 못했지만 체육을 잘하는 애들을 단 한번도 질투했던 적은 없었다. 춤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나게 댄스를 잘하는 친구에게는 그저 박수만 쳐줬을 뿐이었다.

그러데 그럴 때 오히려 두려움없이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어차피 못하니까 그냥 해도 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성과나 칭찬은 못받아도 행복과 만족감은 이때가 더 높았다. 그래서 막춤은 추어도 부끄럽고 속이 상하지 않았다.


그냥 길이 다르다는 것

타고나게 춤을 잘 추는 아이와 나는 그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계속 춤을 춘다면 그래도 동네 공연은 할 정도는 성장하지 않았을까?


나는 처음으로 내 질투심과 대화를 시도했었다.


"내가 재즈를 부르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나만의 목소리가 있잖아? 내가 나답게 부르고 연습하면 나에게 꼭 맞는 팀도 나타날거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어쩔건데? 나도 공연하고 싶단 말야~!!"

"이 동아리 사람들하고 공연하지 않으면 어때~ 넌 아무데서나 노래하고 아무하고나 팀이 될 수 있어~ 그냥 저 언니와는 길이 다른거야"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토록 듣고 싶던 말을 들었다.

"니 목소리가 딱이라서 널 추천했어~ 우리 팀 같이하자!"

난 포스터 제작이 아닌 보컬로 공연을 설 수 있었다. 내 동아리가 아니었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곡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지만 내 마음의 공허함은 더 이상 없었다.

내 질투심의 대상이었던 그 언니보다 여전히 별로였지만 나는 나대로 내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니가 기획의 요정이면
난 기획의 드워프다


다시 불쑥 솟아난 내 질투심을 똑바로 바라봤다. 얼굴도 모르는 '기획의 요정'을 질투하는 내 자신이 조금도 유치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나는 나대로 정말 기획을 잘하고 싶은 것뿐이니까. 그 감정을 오롯이 받아주기로 했다.


"니가 기획의 요정이면 나는 기획의 드워프가 될란다. 너가 고작 꽃이슬을 머금을 때 나는 나만의 황금열쇠를 만들거다."

이게 나의 질투심을 올바로 이해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누가 나한테 질투가 많냐고 물으면 난 질투심으로 똘똘 뭉쳐서 나만의 길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치냉장고가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