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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Mar 23. 2017

UX기획자의 전문성(to.JR님)

보통의 어느 UX기획자의 성장과정


 JR님의 질문이 가슴을 쿡 찔렀다.

 사실 핵심 질문은 2가지.

 1) 서비스기획은 전문성을 증명하고 커리어쌓기가 쉽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2) 다른 직군에 비해 해야할 일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아서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은데 극복하는 방법이 있는가.


정답은 사실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나마 나의 생각과 배워온 과정을 통해 스스로 정의해놓은 부분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이 직업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이자 과정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작은 의견을 말해볼까 한다.



내 꿈은 처음부터 전문가였다

 이쪽 직업에 발을 디디기 전부터 나는 '전문가'를 꿈꿨다. 게다가 우연히 듣게 된 '사용자경험'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멋있었다. 인문학과 경영학을 함께 배운 나에게 이론까지 그럴듯한 '사용자경험 전문가'라니 너무나 '꿈다운 꿈'이었다.

 그렇게 이 직업의 길에 들어섰고 3번에 걸쳐 전문가에 접근하는 생각이 바뀌어왔다.

 

1기 자만심-UX이론이 전부인 줄 알았다.

 회사에 들어와서 팀장님께 첫 질문은 이랬다.

 "저는 사용성 테스트와 내부 사용자를 위한 서비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것도 많이 접할 수 있나요?"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 생각보다 테스트보다는 기획자의 인사이트 중심으로 일하고 있어. 내부 사용자에 대한 것보다 서비스 자체를 더 많이 생각하지."

 난 그 말을 듣고 역시 실제 현장은 주먹구구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신입인 나에게는 UX 이론서에 나오는 수많은 과정은 나만 아는 특별한 내용처럼 느껴졌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한 것만이 억울한 기분이었다.

 내가 빠져들었던 UX란 더 고객을 연구하는 것이고 원칙이 있는 것이었는데 현장은 마치 기획자 맘대로처럼 보였다. 모든 신입들이 그렇듯이 빨리 배워서 얼른 점프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구직난 끝에 얻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백조의 발까지 보려면 물속에 가야한다

 아마도 지금 구직을 하는 초기 기획자들이라면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남들이 못한 획기적인 기획을 턱하니 내놓거나 기존 기획들이 다 놓친 서비스의 잘못된 점을 요목조목 따지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동경하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한 월급이 싫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회사에 들어가면 넓은 커버리지는 고사하고 내 눈앞의 배너하나 붙여달라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배너하나를 붙여도 하드코딩 고정 배너인지, 백오피스에서 등록변경하는 이미지인지, 특정 케이스에서만 나올 이미지인지 구분하고 기획하는 것도 어렵고 긴장된다.

 마치 유유한 백조의 유영모습을 기획하고 개발요청을 했는데 실제로 기획자가 제대로 기획하려면은 그 발밑의 움직이는 발의 방식도 기획해야 됐기 때문이다.

 UX이론에 대한 이야기는 머리에 많더라도 일단 실무를 시작해보지 않는다면 이 발밑은 잘 모른다. 발밑을 모르는 상태로는 전문가라는 평은 받을 수가 없다. 일단 현장에 뛰어들어야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많다.

 


2기 기본기 - 비지니스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다

 자만심 가득하게 시작한 마음과 달리 막상 업무를 배우는 것은 고되지만 재밌었다. 이론과 아무 관계도 없는 배너넣기 이런 것들을 하면서도 무언가 세상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 선배들은 나에게 '어떻게'를 반복해서 알려주었지만 '왜'를 이해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업무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내가 아는 것은 너무 적어서 사이트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이 그냥 허덕였다.

 어느 날 나의 멘토였던 대리님이 '정유진의 웹기획론'이라는 책을 주셨다.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UX에 대한 거창한 내용까지 가지도 않았는데도 난 모르는것 투성이였다. UI와 웹에 대한 인포메이션 아키텍쳐, 기본기 탄탄한 확장성있는 웹기획에 대한 내용이 내 시각을 바꿔놨다.

 당장  UX를 어마어마하게 바꾸겠다는 생각보다 난 일단 이 사이트가 돌아가는 구조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3년을 보냈다.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먼저였다

 막상 UX기획자를 꿈꾸면서도 업종에 대해서는 혹시 무관심하지 않은가? 과거에는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를 기획해본 사람을 더 높게 생각해주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바일과 웹비지니스가 크게 발전하면서 한 분야를 깊이 아는 인력들이 더 각광받기 시작했다. 쇼핑몰 내에서도 수십가지 모듈이 존재하고 깊이있게 알아야할 것들이 많다. 이런 것은 경험으로  체득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러다보니 경력직을 뽑을 때는 쇼핑몰 근무경험을 중요하게 판단한다. 포털과 쇼핑몰의 목적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나도 입사원서를 준비할 때는 무조건 UX기획팀이었다. 업종불문 그냥 썼다. 지금은 쇼핑몰이라는 특화된 업종이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식의 베이스가 필요하다. 무한정 기술에 대한 거라면 개발자를 따라갈 수 없고 디자인만 갖고 이야기하기엔 전문 비주얼 디자이너들을 이길 수가 없다. 기획자가 쥐고 있고 단 한가지 무기는 비즈니스 전체를 조망하고 방향타를 지시할 수 있는 눈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러려면 업종에 대한 이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기획자의 레퍼런스를 인정해줄 멋진 개발과 디자인 동료를 만날 수 있다면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지 척 할 수 있는 기획자'정도는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기 - 주어진 것 그 이상을 넘어서기

 10년도 안된 7년의 회사생활동안 재밌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과거 서브에 머물렀던 단순 작업자였던 UX기획이 점차 중요 기획부서로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온라인 사업에서 UX나 개발없이 가능한 것은 없으니까 이쯤되니 현업에서도 UX에게 신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소위 이슈가 있어 진행하는 회의에서 UX기획자가 'MC'와 '판사'가 되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유관부서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발언과 논의를 정리해줄 뿐 아니라 의견을 하나로 모아 정책을 설정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정책을 서비스화 시키는 것까지 Product 전체를 챙기게 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요청한 내용 자체가 아니라 진짜 니즈를 파악해서 대안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업에서 신규 서비스 매장을 요청했다. 요청 내용은 아예 신규 템플릿을 개발해야 하는 것. 하지만 경험을 통해 유사한 기능을 이용해서 요청 기능의 80%를 개발없이 구현할 수 있다는 걸 눈치챌 수도 있다. 요청한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는 방법을 제안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대리로 근무하면서 나름 굵직한 신규 서비스 프로젝트를 진행 기획가 많아지게 되었는데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획자와 요청부서 거기다가 관련부서까지 다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특히나 전시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견이 많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모바일 메인에 '백화점상품'만 모아놓은 '백화점'탭에 대해서였다. 백화점상품판매를 하지 않는 영업팀에서 특혜라고 비난했다. 마케팅부서도 테마위주로 그 영역을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기획자는 고객에게 백화점상품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지만 대화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주니어 때 하는 업무들은 보통 타사를 보여주면서 '여기 봐봐 여기도 이렇게 했잖아!'라고 해왔다면 대리급이 되면 좀 더 객관적이고 전문성있는 지표를 보여줘야한다. 애초에 기획전에 백화점이라는 탭에 대한 클릭수를 대해 모아서 기획 보강 자료로 제시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클릭수가 높았다. 기획에 대한 설득력을 높인 것이다.

 물론 추측과 다른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혹을 만들어낼 서비스를 위해 비교 데이터를 미리 만들어서 체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 부분은 기획자의 인사이트가 중요하다. 무엇을 측정해서 무엇을 볼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획 오퍼레이터에서
Product Manager되기

 대리급의 연차가 쌓이면 이제 외부에서도 기획자가 더 많이 리드해주길 바란다. 요청을 그대로 처리만 하면서 공부하던 시기가 끝나면 이제 지식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해야한다.

 이 때부터 개인의 기획자적 사고관의 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으면 이제 전체를 정리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척하면 척!하고 일하는 것은 어느 정도 주니어선에서 습득할 수 있다면 지금부터는 멀리보고 크게 볼 수 있어야한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하는 이유와 사업에 방향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판단이 있어야한다. 거기다가 업무에 대한 소요시간과 영향도 판단까지 가능하다면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다만 일을 잘한다는 레퍼런스가 쌓인다면 이직이나 프로젝트의 기회가 자연히 찾아온다. 물론 손들고 스스로 찾아다녀도 이제는 증명이 가능해질 것이고.


4기 - 기획자를 넘어서 UX리더가 되기

  사실 4기는 나도 아직 겪어보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위 선배들을 보면서 두가지 길이 뚜렷이 보인다.

 자신의 업무방식을 정리하고 후배들에게 미래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UX리더가 있는가하면 매번 이유도 모른채 같은 방식으로 업무만 처리하게 하는 UX리더가 있다.

 전자의 UX리더가 되기위해서는 트랜드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무조건 못하냐고 윽박지르는 리더가 사이트 전체의 대고객메시지를 컨트롤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니까.

 지금 내가 보기에는 계속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보인다. 자기가 잘 알지 못하면 그 누구도 리딩할 수가 없다. 대상이 후배이든 외주 기획자가 됬든지.


전문성과 커리어는 같은 말이 아니다

  커리어라는 건 수능봐서 서울대가는 식의 절대적인 경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목표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직무가 같더라도 하는 업무는 천차만별이고 처리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회사를 점프하며 다양한 회사프로젝트 경험을 갖는 것도 커리어고 하나의 회사에서 꾸준히 성장해나가면서 프로젝트를 늘리는 것도 커리어다.

 전문성은 그러나 다른 이야기다. 자소서에 경력 커리어가 넘치는데 일을 같이 하면 한숨나오는 사람도 참 많다. 어떤 커리어패스를 만들더라도 전문성을 갖는 것은 개인의 미션이다.

 전문성은 스스로 당당하게 한분야에 떠들 수 있을 때 그때 발휘된다. 그냥 꽁꽁 나만 아는 전문가란 없다. 분야를 잘 알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써먹게 되어있다. 그게 하다못해 브런치 글이라고 해도!


 스트레스가 싫다면
적당히 타협하면 된다

 아기엄마 중에 육아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임신부터 시작해서 항상 변수를 만나고 해결할 것들 투성이다. 낳을 때 고생도 참 많다. 그런데도 애기엄마들은 둘째를 낳기도 한다.

 흔히 커피타는거 외에 기획자가 다 수발든다는 말이 있다. 범위가 애매한게 아니라 기획한대로 제대로 빚어내려면 어디든 참견해야 하는 게 맞다. 그게 싫다면 가장 쉬운 방법은 포기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다. 기획을 주장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쩌면 정당한 과정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개발과 디자인에 사람으로 치이고 있을 수 있다. 이건 기획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논리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힘이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팀간의 파워도 있을 거고 개인의 파워도 있을 거다. 개인의 파워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논리가 탄탄하고 누구보다도 잘 알고 설득력있고 예의바르게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다. 모르면 배우고 다르다고 말하면 우기지만 말고 설득하고. 그래도 안되면 타협이 아니라 협상을 하자. 기획의도를 알리고 모두가 동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신입때 개발자에게 무시당해서 눈물을 콸콸 쏟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 시기가 지나고 내가 잘 알고 성장하면 그런 일은 점차 줄어든다.

 그 때까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못하겠다고? 다이어트도 힘든데 전문가 되는 길이 쉬울 수 있을까?

 건강한 인간관계라고 가정한다면 오로지 스스로 기획을 관철 시키고 싶은 자신의 욕구가 스트레스를 만든다. 그건 건강한 스트레스고 성장의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사이에 1달이 지났어요.

그 사이에 승진도 하고 시니어 기획자가 되었네요.

연초라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도 많고 신입사원들도 들어와서 계속 정신이 없었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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