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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May 02. 2023

도그냥님, 직무 책을 추천해주세요.

미리 말해두는데 이 글에는 책 리스트가 없다.


"도그냥님, 서비스기획 직무를 위해서 어떤 책 읽으면 좋을 지 추천해주세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 글에는 책 리스트가 없다.


지난주 수요일에 서울여성가족재단에서 주체한 "웬즈데잇(IT)"이라는 무료 강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름 그대로 IT계열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시니어 직무자들이 중심이 되서 하는 토크콘서트같은 프로그램이다. 처음에 한 20여명 정도 참여자가 올 거라고 해서 출산 후 첫 외부활동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를 하기로 했는데, 인스타그램과 자체 홍보가 나간지 몇일만에 200여명의 참여자가 몰려서 황급하게 마감처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의 작은 소규모 강의실에서 스페이스살림내의 지하강당으로 옮겨서 140여명의 참여자만 받기로 했다고 한다.   


4월 26일 당일은 청중으로 가득찼다. 너무 신기해서 입장중인 청중을 몰래 한컷 찍어두었다. 나중에는 맨 앞의 좌석까지 꽉 차고, 옆에 계단까지도 사람이 가득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직무가 핫해졌기 때문이지만)


스페이스살림_ 입장하면서 한 컷


강연이 끝나고, 예상치 못한 긴 줄이 생겨났다. 강의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친구들이나 소장하고 있던 책에 싸인을 받거나,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강연을 마친 뒤에 이렇게 질문을 하는 분들의 용기에 항상 감탄한다. (물론 강연 중 손을 들고 질문하는 사람에게는 더 감탄한다) 이러한 용기가 분명 삶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게 한 질문은 매번 들을때마다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한다.


끝나고 생긴 갑작스러운 줄 :)


"도그냥님, 서비스기획 직무를 위해서 어떤 책 읽으면 좋을 지 추천해주세요"


당시에 나는 이 질문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책이 기억이 안나서라기 보다는 좀 더 질문자의 의도에 적합한 만족스런 대답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질문은 이 분만 했던 것이 아니다. 굉장히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나도 그래서 떠오르는 몇가지 책을 답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쩐지 내 마음에 가득차진 않았다.


제가 지금 답변을 드리기 힘들어서, 메일을 따로 보내주실래요?


그래서 이번에는 고민을 좀 더 해서 답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답변을 뒤로 미뤘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시간을 내어 고민을 해서 답변을 보냈고, 내 의도를 잘 파악한 학생분의 훌륭한 답장도 받았다.


나를 만났을 때 이 질문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 또 있을 것 같아서, 브런치에도 글을 남겨본다.

내가 보낸 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이미준입니다.

먼저 용기내어 질문해주셔서 고마워요! 강의를 찾아오는 것도, 질문을 하는 것도 큰 용기죠 :)이런 용기는 분명 삶에 큰 밑거름이 될 거에요.

메일을 받고나서도 곰곰이 생각을 더 해봤는데요.
사실 서비스기획을 책 몇권만으로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 어떤 책도 모든 면을 다 담아내지 못하기도 하고, 각 저자의 상황이나 생각이 모든 회사의 상황을 대변해주지도 못하거든요. 저 역시 한두권의 책을 읽어서 뭔가 지식을 쌓은 것이 직무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는 말 못하겠네요. 뭔가 뾰족하게 무엇을 해결하기 위한 책이라면 추천해줄 수 있겠지만, 두루뭉수리한 질문에는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워요.

사람들은 인스파이어드나 프로덕트오너, 아니면 제가 쓴 책도 추천해주긴 하겠지만 그 책들이 지향하고 있는 내용이나 상황은 모두가 다르고 독자들의 수준에 따라서 전달되는 것도 다르더라고요.
제 책만 해도 입문서가 맞고 주니어들이 공부용으로 읽지만 이미 일하고 있는 친구들의 경우 행간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제 직무를 위해서 읽은 책들을 추천해준 것들은 <코딩 몰라도 됩니다>라는 제 책의 챕터마다 리스트를 넣어놨어요. 아마도 학교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빌릴 수 있을테니 거기서 한번 보시고 목록만 빼서 보시면 도움은 되실 거에요. 하지만 한 두권은 아니에요.

이번 기회에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한번 바꿔보시면 좋겠어요. 인생에서 학교가 끝나고나면 학문이 아니고서는 더이상 몇권으로 무언가를 다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요.
학생때는 한권을 다 읽고 공부하는 게 의미있겠지만, 성인이 되면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을 하면서 머리 속에서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책을 꼭 끝까지 다 읽으려고 하면 오히려 시간 낭비일 때도 많아요.

이러한 어른스러운 공부에 대한 방법은 <폴리매스>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다른 직무에 대한 책을 읽기 전에 폴리매스를 읽으시면서 어떻게 자신만의 공부의 틀을 만드실지 그리고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학습이에요. '습'은 연습이고 실전입니다.
어떻게든 좀 더 현장에 가까운 무언가를 도전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 이미준 드림.


어쩌면 질문자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질문했던 친구 역시 내 의도를 잘 파악하고 답장까지 보내주었다. 본인이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한 것이 아닌지, 지금까지 타인의 공부의 틀에 익숙했던 것 같다며 공부를 넘어선 본인의 학습을 만드신다고 이야기했다.


난 이 분이 어떤 일을 하시든 더 성장하실 거라고 확신한다. 왜냐면 보통은 정성껏 고민을 해서 답장을 해도 이후에 후속 답장이 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 원하는 지름길을 답변해주지 않아서 불만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 분은 의도를 이해하고 곱씹고 자신의 공부의 길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나중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성장한다.


나를 포함해서 학원과 시험에 익숙한 세대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하다못해 줄넘기까지 학원을 다닌다는 이 대한민국에서 이런 질문은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지금 택하려는 서비스기획이나 프로덕트 관련 직무는 그러한 방법이 불가능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 꼭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단지 취업을 위해서 빠르게 요점만 파악해서 직무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게 바로 이 직무다. 이 직무의 대다수는 소프트스킬이고 이건 요점 정리 노트가 불가능하다. 기획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생각의 근육이 튼튼해야하는 거고 이 부분은 책 몇권이 해결해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생각하는 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본인만의 직무에 대한 이해를 만들어야 한다. 진짜로 취업에 성공하고 나면, 그 뒤는 진짜 일상이다. 취업 후에 공부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진정한 공부인 학습이 시작된다.


여튼. 그 날 그 자리에 함께한 140여명의 동료, 후배, 학생 등등 다양한 분들에게 나의 관점과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뻤다. 모든 사람이 역사를 바꾸는 엄청난 천재 기획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만능 재주꾼이 될 것도 아니다. 그저 직업인으로서 각자 인생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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