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일잘러 시리즈는 하나의 직무, 또는 하나의 회사에서 오랜기간 잘 적응해서 일하다보면 언젠가 이겨내야하는 자신의 한계나 성장의 필요성에 대해서 내가 느꼈던 감정과 회고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또 어떤 경우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또 지나치게 날 것의 생각들이 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심각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의외로 행동만 앞설 수도 있습니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자랑만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온라인 글세상에 마음껏 열등감과 불쑥 나오던 못난 모습들을 글로 남겨보려고 해요. 그게 인생이니까요.
책 출간을 목표로 호흡이 긴 글을 순서대로 써내려가고 있다보니 이 과정의 깨달음과 의미있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깁니다 :) 처음 써보는 제 자신의 속 깊은 곳까지 완전히 드러내는 글이라 저도 종종 두렵습니다만 이렇게 스스로 회고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회수, 좋아요, 댓글만으로도 굉장한 응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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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실력이 연차와는 꼭 비례하지 않더라고요”
옅은 웃음과 함께 3년차 친구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 친구는 누가 봐도 똑 부러지고 똑똑한 일잘러였다. 이 말은 맞는 말이다. 분명 직무에 있어서 연차와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초기 몇년간 만들어놓은 실력을 계속해서 반복 사용하면서 더 이상 크게 성장할 일이 없기도 하다. 브런치에서 글로 자주 뵈어왔던 peter 작가님의 <커리어의 결정적 시간들> 연재글 중 하나에서 초기에 높이 쌓아올린 경력과 역량을 바탕으로 이후 더 큰 발전 없이 기존의 것을 활용해서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방법을 ‘글라이딩(gliding)’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성장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눈치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대부분 글라이딩 방식으로 커리어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 문장은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최근 ‘페이스북의 성인’으로 불리는 신수정 부사장님의 글에서도 연차에 따라서 꼭 실력이 결정되지 않으며 끊임없는 의도적인 성장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읽었었다.
하지만 저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왜냐하면 나는 그 친구가 이 말을 한 의미를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년차는 어떤 직무든 시작하고나서 업무를 제법 익숙해지는 시점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누가 봐도 일잘러였기에 3년간 성장이 굉장히 컸다. 문제는 그 말을 한 사람이 타인이 아닌 3년차 본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이었다. 이 문장을 10년, 20년이 넘은 사람이 말할 때는 연차가 쌓여도 안주하지 말라는 조언이 될 수 있지만 3년차 친구의 입에서 이 문장이 나올 때는 분명히 위험했다. 왜냐면 내가 그 맘 때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 지금 그 때를 후회하기 때문이다.
후회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문장을 뱉는 순간 쓸데 없는 것이 자라난다. 바로 ‘에고EGO’다.
이 직무에서 잘한다는 것은 뭘까?
서비스기획 직무에서 ‘일을 잘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획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엄청난 리더십을 가지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또 성과로 금방 파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기획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보통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업무 현장에서 기획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일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이 빠진다. 똑같이 무언가 온라인 서비스라는 뚜렷한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가지만,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고 개발자는 개발을 한다는 그 관점에서 보면 기획의 역할은 그야말로 정의하기 나름이다. 흔히 ‘커피 타는 것 빼고는 다 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단지 아이디어만 내거나 멋지게 문서를 잘 쓴다거나 이런 방향의 서비스를 만들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끝이 아니다. 프로젝트를 통해서 진짜 의미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과 수많은 선택의 과정을 유연하게 생각하고 파악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무직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역량을 정량화해서 파악하기도 어렵고 타인의 역량도 정량화해서 평가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서비스의 성과나 성공? 이건 더 어려운 이야기다. 대부분의 기업 보도자료에서 모든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묘사하거나 한다. 하지만 그게 객관적이고 정말 명확한 성공이냐를 묻기에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것은 서비스가 얼마나 대성공했느냐와의 완전히 다른 결의 문제다. 흔히 서비스기획자나 PM/PO라고 불리는 이 직군이 멋진 서비스를 대성공시키는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착각하기 쉽지만, 모두가 세상을 바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서비스를 더 강화시키는 것이 목표일 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서비스를 안전하게 마무리하고 접는 것이 주어진 미션일 수도 있다. 모든 서비스는 흥망성쇄의 라이프사이클을 따라가게 되어 있고, 그 시점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과 행동이 필요하다. 기획자는 조직내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목표와 제약사항이 천차만별인 상태로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특정 기업이 크게 성장했으니까 그 기업에 속한 기획자들이 모두 대단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서울대 법대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모두 판사가 쉽게 되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일 것 같다. 서비스나 기업의 성장과 성공에 대한 기여가 명백하다면 분명히 그 사람의 실력이겠지만, 서비스나 기업의 성장과 성공이 없더라도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결과 적인 엄청난 성과만이 사람의 실력을 의미한다면 대다수의 이 직무자들 중에 실력 있는 사람은 대체 몇 명이나 자부할 수 있을까. 우주안의 먼지처럼 작게 느껴지는 그런 극단적 객관성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야말고 극히 드물것이다.
그래서 어떤 기획자가 일을 잘하냐고 서로서로 물어볼 때, 대부분 암암리에 그 사람의 경험의 양이나 똑 같은 일을 해도 고려할 수 있는 고민의 양을 보거나, 효율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얼마나 그 일에 집중하느냐 등등 장점들을 가지고 역량을 평가하게 된다. 연차가 길어도 경험이 매번 비슷하고 고민의 깊이가 깊지 않다면 실력이 별로라고 평가받기도 하고, 연차가 짧아도 무조건 해내야하는 환경속에서 어떻게든 해내려고 깊게 고민한 사람이라면 역량이 높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다.
눈치빠른 독자라면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평가와 평판은 어쩌면 진짜 역량이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게 이미 내가 있는 우물 속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비교라면 더더욱.
비대해진 에고(Ego)는 '우물 안 일잘러'의 시작점
게임을 해보면 보통 튜토리얼부터 낮은 몇 개의 레벨은 몇 개의 스테이지만 지나가도 쉽게 올라간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스테이지의 난이도와 만나야 하는 적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미 레벨이 어느정도 높아졌는데도 중요한 미션을 하지 않고 초기에 잡던 몹이나 간단한 미션한 수행한다면 어떨게 될까. 게임 연차는 높아져도 레벨은 전혀 오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초기에 쉽게 스테이지만 지나쳐도 레벨이 오르는 상황에 있는 뉴비들은 위의 사람들을 만나면 속으로 흉을 볼 수도 있다. “열심히 하면 레벨이 오를 텐데” 라던가 “게임 연차가 레벨과 비례하지는 않더라고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뉴비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을 수 있다. 이 게임에는 더 높고 중요한 미션 자체가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높고 중요한 미션은 누가 아주 명확하게 미션이 무엇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차와 실력이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이 생각을 모든 면에서 아직 열심히 실력을 쭉쭉 높아지는 저연차 시절에 하고 있다면, 스스로 자신이 그 말을 한 이유를 제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사용하는 본인이 스스로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거나, 누군가 자신보다 연차가 훨씬 높은데 기대한 것보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었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
이 모습은 ‘우물안 일잘러’가 가진 ‘비대해진 에고(ego)’의 시작이다.
우물 안 일잘러의 비대해진 에고
에고(ego)란 원래 자기자신을 뜻하는 라틴어지만 보통 프로이트의 해석에서 유래된 ‘자기자신의 모습’인 ‘방어’에 대한 이미지로 설명된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은 자부심, 자존감을 넘어서는 비대해진 자아’로 사용한다.
최근 재밌게 읽은 <에고라는 적>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로 에고를 설명한다. 이 책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비대해진 ‘에고’가 성장을 더 방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에고’는 자기 자신을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로 믿게 하고, 누구보다 더 잘해야하고 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올바른 선택을 못하고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욕망에 빠져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우물안 일잘러’가 되는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자신의 경험속에서 비대해진 ‘에고’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내가 3년차 쯤에 ‘연차가 실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내가 저런 말을 하고 다닐 무렵에 나는 꽤 자신만만했다. 돌이켜보건데 그 시절이야말로 내 직장생활에서 가장 꼴보기 싫었을 모습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최우수직원상을 받은 것이 바로 3년차 쯤이었는데 당시에 나는 연차에 맞지 않게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칭찬의 소리와 스스로 해낸 산출물들에 무척 취해있었다. 이 와중에 상까지 받았으니 나의 에고는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졌다.
그 커진 에고에 취해 당연히 나보다 경험이 부족했을 후배의 업무를 조언이 아닌 지적질을 하며 ‘이 친구들은 왜 고민을 적게 하지’ 같은 다른 기획자의 고민의 깊이를 감히 평가하는 식의 행동을 했던 적도 있다. 나보다 10살도 더 많은 외주 개발자들과 일하면서 테스트 중에 오류가 나오자 ‘정책도 이해 못하면서 개발은 어떻게 했냐’며 화를 내며 감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시점도 바로 그 시점이었다.
당시의 나는 감히 '싸가지 없더라도 일만 잘하면 되지'같은 생각에 취해있었다. 감.히.
내가 이 일을 잘 해내고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타인도 알 것이라고 바라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게 나에게 독이 되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고 건방진 나 자신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다.
여기저기 수많은 기획자들을 만나보면 ‘내가 일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스스로를 한탄하고 자신감 없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하고 성장할 방법을 찾고 또 유연하게 행동한다. 거친 피드백에 멘탈이 모두 바사삭할 수는 있더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는 사람의 성장력은 굉장히 건강하다.
문제는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칠 때 있다. 라이언홀리데이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하는 무언가가 굉장히 옳다고 여길 때, 사람의 시야는 굉장히 좁아진다. 일에 대해 높은 열의를 다해서 빠르게 성장한 뒤에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성장은 거기서 멈춰버리고, 일은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고나면 내 눈앞에 일의 깊이있는 이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더 멋진 더 훌륭하고 화려한 무언가를 찾아보게 된다. 그 때의 나는 ‘퇴근’과 ‘주말’만을 기다리며 스스로 일을 매일매일 잘 쳐내는 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야말로 ‘쳐내고 있었기에’ 일에 대해서 아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고, 본인만 옳다고 생각했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풍선처럼 부풀어서 붕붕 자아가 떠오르기만 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당시 나의 비대해진 에고가 풍선처럼 부풀어서 날아가다 못해 터지기 전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비자발적인 ‘작은 우물 탈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3년차에 사내에서 전혀 다른 서비스로 이동하게 됐고, 다시 습득하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시간에 놓일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어느 정도 다시 중력값을 적용받으면서 부족함을 다시 느끼고 배울 것들을 찾고 주변인들의 훌륭함을 다시 보게 되었었다.
나 빼고 주변이 다 바보같이 느껴진다면, 정말로 우물을 나가야 할 때다.
우물안을 탈출한다는 것은 이직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직이 아니라도 환경을 바꿀 수있다면 그 때의 나처럼 다시 제정신을 차릴 수 있다.
하지만 10년차의 우물탈출은 상황이 달랐다. 내가 바라는 우물 탈출은 목표가 있었다. 일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고 또 그걸 공부하기 위해서 제일 쉬운 방법을 찾아야했다. 사내에서 확장해볼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되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았다. (물론 이런 사례도 있어서 연재 중에 다루려고 한다)
내가 환경을 바꾸려는 기로에서 고민할 때, 없어진 줄 알았던 ‘비대한 자아’가 다시 내 가슴을 다시 비집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다시 신입사원처럼 일을 배워나가는 걸 해야할까? 프로덕트오너는 처음인데..”
신입사원 시절, 일을 익히기 위해서 9시 출근시간보다 훨씬 이른 아침 7시반까지 회사를 나갔었다. 업무 시간에는 일하느라 바쁘니 더 공부해두기 위해서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공용폴더에 들어가서 서비스에 대한 정책문서와 선배 기획자들이 만들었던 기획문서들을 읽으면서 머리에 뭔가를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약속시간을 딱 맞춰서 가려다가 5분씩 늦는 나같은 인간에게 그 시절의 나는 집념과 도파민 그 자체였다. 그렇게 문서들을 읽어대면서 회사 시스템에 대해서 뭔가 하나를 더 알아내고 배우는 것에 몰입했고 주말에도 일부러 나가서 공부하고 익히려고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성장이 일어났고, 그 반대로 갑자기 3년차의 자만심도 따라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또다시 흐른 7년, 건방지지 않도록 계속 어렵고 새로운 과제를 하면서 사람은 성장을 했고 인격적으로도 더 겸손해졌는데 내 안에는 같은 우물이었기에 없어지지 않은 에고가 남아있었다.
이제 우물안을 벗어나서 뭔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불쑥 튀어올랐다. 낯설고 불안했다. 요리를 제법하게 된 쉐프가 다른 나라의 식당에서 다시 접시닦이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내가 시도해보려고 하는 프로덕트오너라는 직무는 특히나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의 방식을 따라가고자 하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주로 하던 방식이었다. 소위 대기업에 오래 다니던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처음 가려고 할 때 많이 생각한다던 많은 질문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래도 내가 여기서 했던 역할들이 있는데, 사이즈 큰 역할을 받을 수 있을까?”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간다면 그래도 팀장은 달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내가 연차가 얼마인데..’ ‘그런데 내가 가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등등..
우물 안을 탈출하는 이유가 더 장기간의 생존임에도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질문들은 남아있던 에고들이었다. 3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 때의 나 역시 뒤통수를 쎄게 갈겨주고 싶다.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더 큰 무언가를 못하는 것. 그게 바로 우물탈출을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싸워야 하는 존재인 나 자신이었다.
막상 우물을 나가려고 한다면,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야.
하지만 정작 내가 고민했어야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주어지지도 않은 기회를 두고 ‘자존심’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모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독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현실은 붕붕 떠다니는 에고를 끌고와서 땅바닥에 두 다리를 지탱하고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지금 서있는 것이 우물 바닥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