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난 견딜수가 없었기에 선택은 쉬운 편이었다.
나는 내가 체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경험하지 않고 남아있는 그 시간을 왜 그토록 견딜 수 없어 했을까?
이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억울함이라기 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바 때문이었던 것이 더 크다. 난 지난 7년여간 내 일과 직업을 설명하는 일들을 조금씩 해왔다. 이건 퍼스널 브랜딩이나 그런 목적이 있었다기 보다는 오랜 습관이었다. 2008년 대학생 때 휴학에 대해서 한 경험을 블로그에 기록하면서 시작된 10년간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내 직업의 경험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게 했고 그걸 시작한 것이 2016년 브런치에 글을 남기면서부터였다. 엄청 대단한 성과를 낸 사람이거나 임원도, CEO는 아니었지만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서 내 직업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꿈. 그건 내 오랜 소망이었다. 그렇기에 성공이나 엑시트처럼 쉽게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분명 갈 수 있는 다른 우물의 방식을 익히면 내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 선택은 점점 더 명확해져갔다. 대단한 일을 하기를 바라지도 엄청난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경험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분명 자신의 상황의 한계나 방향도 잘 이해해도 이미 익숙하게 잘한다고 생각하는 쪽에 남는 것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잘 살아남아서 중간관리자에서 더 상위 리더가 되건, 아니면 전혀 다른 일의 방식으로 다시 시작하거나, 새로운 직무를 시작하 건, 누구나 자신의 전부였던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 필연의 시간은 온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누구에게나 한번은 오는 우물 속 깨달음
작년 연 2회에 걸쳐 금융대기업에서 7주간 서비스기획 스쿨이라는 클래스를 진행했었다. 전국의 지점에서 선발된 직원들이 무려 토요일 하루를 반납하고 강의를 들으러 서울로 올라왔다. 이런 대기업의 순환보직은 지점에서 영업을 하다가 한순간에 전혀 다른 온라인 기획 부서로 갈 수도 있을 정도로 대중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 해야할지 모르는 서비스기획 직무에 대해서 미리 자원을 한 사람들에게 기획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조별로 실습을 해보는 과정이다.
2023년 현재의 나의 강의는 기존 <현업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기획 스쿨>을 쓸 때와 분명히 달라졌다. 이미 우물안을 빠져나와 더 확장하고 배워왔기에 강의 역시 양쪽의 우물의 이야기를 다 아우를 수 있다. 서비스기획자로서 클래식한 방식이 필요한 곳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게 하고 반대로 프로덕트오너의 방식을 원할 때는 그에 맞는 이야기로 구성한다. 그리고 기업강의라면 현재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먼저 듣고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기획업무를 설명하기 위해서 강의를 재구성한다. HR에서 원하는 목표와 수강생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도.
하지만 그렇게 맞춤식으로 진행을 해도 꼭 말미에는 그 회사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회사의 방식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라도 소개를 한다. 이 기업의 경우 유명 금융기업이지만 기존에 외주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고 기획자는 순환보직으로 지점에 있던 사람들이 오는 경우가 많은 곳이었다. 서비스기획자와 외주가 함께 일하는 방식에서 기획의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실습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주차에만 역시나 그 기업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동종업계인 토스에서 프로덕트오너 중심으로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함께 애자일하게 일하는 방법까지 조사해서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내 강의를 들은 한 수강생이 종강후 간단한 회식자리에서 강의 후기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은 이미 과장 위치에 있는 중간관리자급인 분이었다.
“강의 내용중에서 말해주신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 이야기, 인상깊고 너무 좋은 이야기는 맞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절대 불가능해요. 차라리 그런 거보다는 기획서 빨리 쓰는 스킬같은 거 알려주면 좋았겠다 생각했어요”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보였던 그 분은 취기가 오른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에게 충고라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어차피 우린 순환보직이라 일하는 방식이 확 바뀌기 전에 지점 다시 갈 거거든요. 이 직무만 엄청 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강사님께 제가 특별히 말해주는 거에요.”
그에게서 오랜만에 나에게서 나던 ‘우물안 일잘러’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그 우물에서만 계속해서 남는다면 다른 방식, 다른 생각들을 배우는 것은 필요없는 일일까?
그에게 말을 전하진 못하고 웃고 말았지만, 마음 속에는 이미 지나갔던 나의 고민의 결과로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 분은 10여년의 세월을 한 기업에서 지점과 본사를 오가며 주어진 환경내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왔을 것이다. 그 기업의 고착화된 분위기나 조직의 문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내가 그랬었듯이! 그리고 수강생 중 유독 고연령임에도 7주라는 과정을 끈기있게 참여한 점에서 분명 더 많은 성장의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도 명백한 일잘러의 태도였다. 그런데 왜 정작 변화의 가능과 넓은 스펙트럼을 이야기할 때, 오히려 더 애써서 부정적인 말을 했을까?
우물 밖의 세상에 대한 관심을 일부러 접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기업 안정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수업에서 만났던 또 다른 대리급 수강생도 비슷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입사초에는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기업으로 이직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닐수록 ‘내가 무슨 이직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이직이라는 큰 용기를 낼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냄비속에서 개구리처럼 익어가는 기분을 느끼다보니 더 오래된 선배가 전혀 부럽지 않지만, 이미 다리가 많이 굳어져 뛰어나갈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글을 쓰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웹툰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있었다. 기업 안정성이 높을수록 우리는 우물안에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다른 욕구를 내리 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우물이 좁다는 것을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고 할 때, 어쩌면 그 우물이 한창 가열중인 냄비였을 수도 있다. 요즘에는 고용이 안전한 기업이 없어져가고 있고, 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그 깨달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되면 우물안 일잘러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의 우물안 일잘러의 위기
‘평쟁 직장’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과거 IMF시기 극복과정에서 아버지들의 명예퇴직과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또 일부는 강제 합병되면서 우량한 기업들이 자리잡았고, 자리잡은 대기업들은 공개채용 형태로 직원을 뽑았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덕에 그 전보다 취업의 문은 좁아졌어도 노동에 대한 권리는 더 좋아졌다. 한국 사회는 쉽게 직원을 해고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치열한 사내 경쟁에 정년을 채우기란 더 어려워졌다. 임원이 되지 못하면 자발적으로 50대 전후에 나가서 자영업을 하게 된 사회가 되어버렸다.
모든 직업의 마지막에 치킨집이 있다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국내 2019년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 비중은 24.6%로 OECD에서 6등에 해당한다. 선진국인 독일(9.6%), 일본(10%), 프랑스(12.4%), 미국(6.7%)과 비교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물론 당장 기업이 너무 괜찮고 안정적이라면 어떻게든 팀장달고 임원되서 살아남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젖은 낙엽’을 어떻게든 딱 붙어 있겠다는 의지다.
2021년에 유행했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 김 부장은 이런 생각을 가진 일잘러 직장인 대다수의 결말이 어떻게 나는지 보여준다. 임원되기는 실패하고 과거 언젠가 잘 나가던 에이스였던 본인은 사내정치에 휘말려 퇴직당할까 눈치보는 입장이 된다. 왜냐면 기업은 위로 갈 수록 설 자리가 거의 없는 피라미드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에서 많은 공감을 받았던 ‘이싸이트’ 작가님이 쓰신 글 중에 ‘잘 나가던 과장들이 몰락하는 과정’이란 글이 있다.
그 잘 나가던 일잘러 과장들이 피라미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의견과 날카로움을 줄여가는 모습을 읽다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기업에서 생존만을 지향할 때, 이 피라미드는 자연스럽게 일잘러 타이틀의 색이 바래지게 만든다. 그나마도 끝까지 갈 때나 아름답다. 만약에 더 이상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진다면 내가 가진 지식이나 능력이 과연 우물밖에서도 통할까?
이대로 우물안에 일잘러로 살아남기를 선택해도, 계속 일잘러로 인정받으며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심지어 최근에는 50살까지 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2023년 초부터 금융가와 유통사에서는 83년생(40세) 직원까지 희망퇴직을 받았고, 2022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나빠진 투자문제로 잘나가던 스타트업에서도 대거 해고 사태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갑자기 해고당한 사람들의 블라인드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꿈의 기업이라고 불리던 해외 기업에서도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부단위로 아예 신사업 부문 자체를 통으로 해고시키기도 한다. 아마존, 구글, 메타(구.페이스북)의 이야기다. CEO가 바뀌자 반 이상을 그대로 내보낸 회사도 있다. 이제는 'X'로 이름까지 바뀐 ‘트위터’의 이야기다. 회사에서 내보내진 이들이 일을 못했을까? 그 기업들의 안정성이 지금 우리의 회사보다 낮았을까?
이제는 어떤 일잘러라고 해도 언제든지 회사밖으로 튕겨나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뿐이다. 내 역량과 점프력이 고작 한 개의 우물안에 맞춰져 있다면 나는 너무나 불안할 것 같다.
그 과장님의 몇 년 후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은행에 계신 우물안 일잘러 과장님은 우물을 나오는 모험보다는, 지금 회사내에서 정년까지 계속 순환하며 어떻게든 일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이야기했다. 회사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은 건전한 일이다. 하지만 평가도 잘 받고 에이스로 대접 받는다고 해도 결국 위기는 온다. 기업이 크면 클수록 비슷한 수준의 인재는 넘쳐나고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직급의 인원은 항상 지금보다 줄어들어 경쟁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지방의 지점이 더 줄어들거나 혹은 온라인으로 서비스의 변화가 계속해서 더 일어날 것이다. 어느 순간 외주에 빨리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역량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시기는 분명 올 것이다. 그 때는 너무 늦다.
근본적인 직무에 대한 이해나 고민이 없이 주어진 매뉴얼대로 수행만 해온 사람을 경력직으로 받아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너무나 쉽게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대체되고 잘 만들어지니 AI 시스템에 대체될 수 있다.
과거 같은 일의 반복만으로도 대기업에서 동종업계의 중견으로, 중견에서 중소로 내려가면서 직급은 높이고 생명연장을 할 수 있다는 과거의 논리는 언제 회사의 존폐와 승패가 갈릴 지 알 수 없는 불확실의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40대에 퇴사를 한다면, 남은 인생은 60년이나 된다.
우물이 좁다는 것을 깨닫고 나가려는 고민을 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근본적 질문 하나가 내면에 완전히 자리잡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설명하고 프로세스화할 수 있을까? 과연 하루아침에 세상밖으로 밀려난다면 내가 아는 기업내의 단편적 경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또 다른 우물에서 나의 세상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결론적으로, 우물안 일잘러로 남겠다고 선언해도 그 삶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우물이 좁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면 어떻게든 우물을 빨리 벗어나는 것은 결국 생존의 문제다. 더 넓은 세상을 헤엄칠 줄 알아야 오래 살아나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그 문제의 과장님이 회식에서 취하기 몇 주전에, 메시지를 하나 보냈었다.
이 수업 후에 이 직무로 네카라쿠배당토와 테크기업으로 바로 이직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나는 이 수업은 그 정도로의 파워는 없는 입문수업이라고 설명했었다.)
회식이 끝나고 그럼 말을 했었지만, 그도 우물밖에 나가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마치 여우의 신포도처럼 업의 변화와 다른 방식이 필요없다고 부정한 그였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우물을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온다는 선배의 말이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