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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Aug 27. 2023

누가 <우물 안 일잘러>를 만드는가

월요 연재  '우물 안 일잘러'를 아시나요, 02


초년생의 꿈은 일잘러인가요?


 ‘일잘러’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일을 잘한다’는 특징에 사람을 나타내는 er을 붙여서 튀어나온 근본없는 신조어다. 그런데 이 용어는 너무나 찰떡같다. 그리고 어딘가 누구나 가지고 있던 인정받고 싶은 욕구, 경쟁에서 이겨내고 싶은 욕구 그런 욕구들을 자극한다. 그러니 각종 직무교육에서 ‘일잘러’라고 소개하고 일잘러가 되고 싶냐고 물을 때 그렇게 마케팅 효과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면, 우리가 직업을 시작할 때 원했던 것은 정말 ‘일잘러’가 되는 것이었을까?


“도그냥님은 처음에 서비스 기획자가 될 때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종종 토크콘서트 같은 곳에서 취준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엄청난 준비를 한 이야기를 듣고 싶겠지만, 실망을 줄 수 밖에 없다. 왜냐면 나는 대학교를 다닌 6년여의 시간(휴학2년) 중에서 이 직무의 존재를 안 것은 고작해야 마지막 6개월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 직무는 유명하지도 않았고, 내가 취업준비를 하던 2010년은 아이폰과 갤럭시s2가 유행하면서 UX(User experience)가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나마도 우연히 알게 된 정보에, 그 준비도 시작도 정말이지 우연한 일이었다.


 그럼 난 그 취준 시간의 대다수는 어떻게 보냈을까? 솔직히 대부분의 취업준비 기간에는 누구나 좋다고 하는 이름이 알려진 기업에서 내가 뽑힐 것 같으면서 막연히 재미나보이는 직무면 일단 원서 접수를 했었다. 특정 직무를 위한 자격증이나 대외활동도 했지만 이건 그건 그냥 플러스 알파를 위한것일 뿐이지 기본적으로는 영어자격증이나 봉사활동같은 보편적인 스펙을 쌓고 인적성고사나 면접스터디같은 것을 했다. 특별해보이지 않아서 실망스럽겠지만 그 당시는 다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어쩌면 나에게 정말 맞는 직무를 갖게 되는 것은 대다수에게 신의 영역이었다. 직무를 선택해서 간다는 것은 요즘에나 있는 이야기지 십여년전만해도 HR에서 배정받기 나름이었다.


 “1지망 직무에 가지 않아도 괜찮나요?”


 취업준비시절 언젠가 면접 강의에서 대기업의 최종 합격 후 많이 들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강사는 합격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는 어디서든 열심히 하겠다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쯤은 상식이라고 설명했었다. 하기사 아예 업종이 다른데도 계열사내 1지망 2지망 기업도 다르게 지원해야했던 공채입사자라면 더 말해 무엇하나. 나의 1지망은 서비스기획 직무(당시 UX기획팀)가 있던 이커머스 계열사였지만 2지망은 전혀 상관도 없던 백화점이었다. 사실 백화점 계열사가 연봉도 더 높아서 경쟁률도 훨씬 높았다. 어차피 백화점으로 붙여주지도 않았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안붙여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커머스를 하는 회사에 입사해서도 마찬가지였다. OJT의 마지막날 그 질문을 또 들었다. 난 처음부터 원하고 인턴도 했던 서비스기획 직무에 발령이 났지만, 동기 중 한명은 인턴때는 영업팀에 있었는데 정규직 전환후에는 나와 같은 서비스기획 직무로 발령이 났다. 영업과 서비스기획이 얼마나 다르냐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했지만 그 친구는 현재 여전히 훌륭하게 서비스기획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처음에는 모두에게 기가 차는 결정이었지만 오히려 적성에 맞았다. 그러나 이건 굉장히 운이 좋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하는 일의 시작이 좌우하는 시점인데 이 무슨 운명론적 직무배정인가.  


 그런데 이 운명의 힘은 굉장히 세다. 그나마 직무명이 팀에 붙어있는 경우는 본인이 무엇인지 알기라도 쉽다. 팩트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냥 선배들이 했던 대로 혹은 주어진 역할을 어찌저찌하다보니 자신이 해온 일이 어떤 직무구나를 나중에 아는 경우도 있다. 내 책의 리뷰를 쓴 어떤 신입은 자신이 인턴을 수행하면서 팀에서 했던 일이 무엇인지 당시에는 몰랐다가 내 책인 <서비스 기획 스쿨> 책을 보고 그게 서비스기획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글을 본 적도 있다. 본인의 커리어패스를 모르지만 기업명만 보고 입사해서 달리는 상황. 안타깝지만 충분히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센스있게 일만 잘하면 ‘일잘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누구나 처음에는 일잘러가 되기를 꿈꾼다. 조직과 HR이 그들의 직무를 운명으로 정해줬고, 마치 직무가 프로테스탄트적인 소명의식을 가져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의 이름조차 모르고 그 직무의 근본과 본질을 모른다면 아무리 지금 회사내에서 잘한다고 해도 그 한계는 명확할 수 밖에 없다. 회사의 맥락을 파악해서 환경에 맞게 자신의 직무를 변화시키면서 하는 것도 본질을 알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회사만 평생 다니다 퇴직할 것도 아니라면 직장 생활을 통해서 직무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저 회사의 습관대로, 그저 내 경험에서 유효했던 방식 그대로 같은 환경에서 열심히만 하려고 하다보면 세상이 넓다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우물 안 일잘러’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다. 일은 어찌어찌 잘하는데 우물안에만 머물게 된다.


 페이스북의 현자라고 불리는 KT엔터프라이즈의 신수정 부문장님은 그의 저서<일의 격>에서 피드백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예술이나 스포츠분야는 여러 분파가 나뉘어 랭킹이 매겨지는 냉정한 피드백과 평가에 익숙하고 그를 통해서 개인의 실력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인지할 기회가 많다. 하지만 경영이나 직장인의 일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회사에서나 피드백이나 평가는 받지만 기준이 명확치 않기에 모두가 자신이 일을 기준보다 잘한다고 생각하고 더 나가서 평가나 연봉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고 설명한다. 우물안 일잘러의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

 동료들에게 면전에서 욕먹지 않는 이상 본인이 일을 못하는 것도 객관화하기는 어렵다. 갑질을 해도 되는 회사에서 갑질로만 목표 수치를 만들어온 사람에게 일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인은 그럴 수 있다. 왜냐면 언제든 일은 해결되어 왔고 본인이 생각한대로 움직였으니까. 특히 연차가 쌓이고 문제 없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잘 알고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우물안 일잘러가 되었나.

 그럼 나는 어쩌다 우물안 일잘러가 되어버렸을까. 갑질하는 회사에 다녔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을 떠넘길 수 있었떤 것도 아니다. 스스로 자부심이 생기는 것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나도 신입시절부터 칭찬도 좀 받아본 놈이었다. 우수사원도 받아봤고, 성과를 내기도 했다.

 당연히 나 자신에게 객관적일 수 없을 테니 내가 생각했을 때 일잘러라고 생각했던 내 우물안 동기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한 회사에서 입사후 10년간 매 반기마다 우수수 들어왔던 수많은 후배들이 많았기에 그 친구들 중 유독 칭찬을 받던 친구들의 비슷한 성장과정을 봐왔었다.



 일잘러가 될 새싹들은 기본적으로 똑똑하고 눈치와 센스가 있다. 시킨 일의 구조나 본질을 파악하여 반복적인 업무들을 쉽게 정돈하기도 하고, 선배들이 만든 자료를 보고서 본인이 어떻게 해야할지도 금방 파악한다. 선배들이 회의하고 회의록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팀간 업무분장도 눈치채고 어떤 식으로 조율을 해나가는 지도 알아낸다. 업무도 곧잘 흉내내기 때문에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성과도 보인다. 주변에서 신입치고 잘한다고 칭찬도 듣는다. 여기까지가 ‘하수의 일잘러’다. 비슷하게 흉내를 잘 내지만 어떤 행동과 의사결정의 이유까지는 모르는 상태다.

 신입사원때 종합몰내에 유아동 전문관을 기획하는 업무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협업하던 유아동팀의 팀장님이 신입같지 않게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어린 맘에 굉장히 으쓱했다.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들 때조차 흥이 나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그 직전에 위의 선배를 도와서 남성전문관을 만들어보았기에 대부분 기억을 더듬으며 흉내내듯 일을 진행했었다. 특히 유아동 전문관의 메인에서 기획전으로 넘어가는 이미지배너가 여러개 있었는데 이전에 남성영업팀과 마케팅팀을 모아놓고 누가 어떤 식으로 이런 위치를 운영할지 조율하는 회의를 기억해내고 똑같이 회의를 소집하고 조율했다. 기획안의 작성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들의 문서들을 열람하며 조합하고 배껴가며 일을 흉내냈다. 많이 묻고 많이 따라가려고 애썼다. 쉬운 것이라도 결과를 온전히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많이 들을 연차였다.


 이 단계에서 조금 더 연차가 쌓이면 왜 이런 문제가 해결이 되는가에 대한 조직내의 원리를 알아내기 시작한다. ‘중수의 일잘러’가 되면 업무의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된다. 난 그 쯤 됐을 때 기획전 배너 운영에 왜 그 두팀이 논쟁해야했는지 알게 됐다. 당시 우리 회사의 마케팅팀은 모든 노출영역을 통제해서 중요한 키워드로만 소구하고 싶어했고 영업팀은 고객이 정말 보느냐보다도 영업적인 이유로 노출되는 영역을 확보해서 셀러와의 소싱에 유리한 지점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어디 한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두 팀이 논의해서 합의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중수의 일잘러에게는 직무역량에서도 본인만의 프로토콜이 생긴다. 주제어만 듣고도 뭐부터 할지 머리속에 쫙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유아동관’ 이렇게만 들어도 어떤 팀과 논의하고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협업해야하는 사람들 리스트와 일정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이쯤되면 성과도 제법 있어서 팀내에서 에이스 소리를 듣기도 한다. 본인도 직무에 대해 가장 자신만만해질 시기기도 하다. 이때 쯤에 나는 회사에서 매년 연말에 시상하는 ‘최우수 직원상’도 수상했다. 상장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서 얻은 소소한 결과들은 스스로 일잘러라는 자부심으로 쌓아지고 있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회사분위기를 보고 다음에 무슨 일이 시작될 지 예측하는 ‘고수의 일잘러’가 된다. 예를 들면 이번달에 해외의 동종업에서 성공사례에 대한 뉴스가 올라오면 어떤 임원이 이에 관심을 가질지 그리고 어느 팀에서 누가 무슨 요청을 할지 먼저 예측한다던가, 11월 임원 평가기간전까지 뭘해야하고 어떤 업무에 힘을 덜 써야할지도 알게 된다. 상사가 집착하는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되고 강약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요령도 부리면서 일한다. 일복이 터지면 절대적 업무양은 많을지 몰라도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좋은 평가와 좋은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팀내 핵심인재로 대접받는다. 연말에 개인평가 S라도 받고 나면 회사가 곧 나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조직내 힘의 역학도 잘 알기때문에 이용도 잘 하고 친분과 신뢰를 활용하게 유리하게 사용할 줄도 안다.


 이렇게만 보면 얼핏 괜찮아보인다. 마치 남자들이 샤워중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때, 혹은 여자들이 풀메이크업을 하고 셀카로 이런저런 각도를 잡아볼 때처럼. 하지만 이런 자칭 일잘러가 ‘우물안 일잘러'로 남는 것은 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일잘러라고 믿는 기준이 딱 주어진 현재의 배경 속에 타인의 칭찬에서 시작해서 동료들과의 친분과 익숙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내가 깨달은 직무의 노하우도, 본인이 만든 프로토콜도, 회사의 분위기를 보고 다음을 예측하는 것도 지금 회사에 국한된 것일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지금 환경을 벗어나면 어디까지 통하고 어디서부터 톻하지 않을지를 모른다.  

 게다가 스스로 일잘러라고 믿는 근거는 내가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들뿐이다. 언제든 외부의 시선과 태도가 바뀐다면 일잘러가 아니게 될 수 있다. 누군가 한 명이 의도적으로 이간질을 한다거나 블라인드에 욕이라도 올라온다면 타칭의 일잘러는 끝난다. 그 기준은 내 직무의 본질에 머무르지 않기에 객관성이 없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계속해서 비슷한 상황이 유지될 때 우리는 젖은 낙엽처럼 멈춰버리고 고여버린 물웅덩이에서 천천히 가라앉아버려 모든 환경이 익숙해져 버릴 때가 온다. 드디어 ‘우물안 일잘러’의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된다.



우물안 일잘러란 대체 무엇인가.


 우물안 일잘러는 변화와 다름의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겪었던 위의 유아동 전문관의 배너 운영방식을 꼭 두 팀의 협의로만 정했어야할까? 다른 회사에서는 두 팀의 목표나 알력보다는 고객들의 실제 성향을 파악해서 기획에서 나눠줄 수도 있고 아예 자동으로 노출시키는 방법도 있었을 겻이다. 하지만 우물안의 일잘러는 다른 방식의 존재 자체를 상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의 원천이 자신이 겪어온 회사내의 경험과 학습에서만 기인했고, 그렇게 해와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걸 서비스기획팀이 왜 정해요? 그 회사는 마케팅팀도 없어요? ”

 제3자의 입장에서 우물안 일잘러를 본 적이 있다. 대기업에 다닐 때 중소기업에서 이직한 분과 이 기업에서만 일해온 어떤 선배가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이직해오신 분은 그의 경험을 이야기했고, 선배는 자신의 경험으로만 이야기했다. 대화는 매끄럽지 못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맥을 채우고 있는 감정은 우물안 일잘러가 가지기 쉬운 오만이었다.

 그 선배의 경험에 대한 확신과 다르게 이 세상에는 다양한 회사가 있고 어떤 팀이 어떻게 일해야하고 어떤 롤을 해야하는지는 고정적으로 정해져있지 않다. 그저 그 회사내의 합의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자신이 속한 기업내의 암묵지가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만 적용하려고 하면 통하지도 않고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 된다. 결국 그 회의에서 둘 다 감정이 상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조직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직접적인 직무적 역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번은 기존 기업에서 엄청난 직무적 성과를 많이 올렸왔다고 자랑하는 기획자를 만난 적이 있다. 사내의 굵직한 서비스를 모두 본인이 만들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기간내에 혼자서 다 기획하고 프로젝트 실무까지 진행할 수는 없는 범위였다. 자세히 물어보니 외주에 발주하고 관리하는 역할만 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회사마다 업무의 범주는 다를 수 있다. 그 회사에서는 필요한 기획자 역량은 딱 거기까지였겠지만, 실무로서 직접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곳에서는 의미없는 경력이 되고 만다.

 자신이 일했던 회사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이 직무의 커리어패스에서 필요한 수준을 올바로 정의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관계적 정의가 아닌 스스로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으로 자신의 현재 상태의 한계와 차이를 아는 것이 우물을 벗어나는 길이다.


 ‘우물안 일잘러’의 문제는 고착화된 환경이 아니다. 우물안 일잘러의 가장 큰 문제는 그 환경이 전부인줄 아는 우매함에 있다. 개인적으로 영감을 많이 받는 몇몇 지인 중에서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마나 대기업을 뛰쳐나와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윤준탁님과 록담님이 계신다. 그 두분은 시기도 상황도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었다. 윤준탁님은 계급장 떼고 일을 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기업에 있을 때 그 수많은 환경이 본인의 실력인 줄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록담님은 같은 회사내에서 외부의 상황이 밀리면서 일잘러에서 갑자기 부적응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의 역량의 본질을 펼칠 곳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일의 방식을 바꿔나갔다. 내가 일하는 과정에서 기업을 바뀌지 않고도 환경이 고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너무 고착화되었을 때는 그 환경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역량에 대한 악몽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것이 악몽이 될 수 밖에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우물안 일잘러의 상황이다.



누가 우물안 일잘러를 만들까?

 그렇다면 누가 우물안 일잘러를 만드는 것일까? 회사? 환경?  

 가장 큰 문제는 ‘이 우물의 일잘러’가 ‘모든 세상에서 일잘러’라고 믿는 자기 자신의 고정된 믿음에 있다. 그 믿음이 자신의 경험을 무조건 옳다고 믿게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스스로 우물안 일잘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9년 8개월의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온 내 자신에게서 다른 외부에 변화에 대한 묘한 이기적이고 모난 마음이 드러났을 때, 나는 그 때 스스로를 우물안 일잘러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느낀 그 우물은 ‘일하는 방식’의 우물이었고, 나는 가치관이 다른 그 다른 방식을 내가 배워야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우물안 일잘러’로 보이는 내 못난 마음이 자꾸만 커져서 나에게 걷잡을 수 없이 실망하게 될 것 같았다.  


 스스로 일잘러를 정의하고 자신의 환경에서 목표를 만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챌린지를 발견했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 우물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비유적인 표현은 보통 성장하지 않는 우매함을 말하지만, 사실 가장 행복한 개구리는 우물안이 세상 전부라고 믿는 개구리다. 우물 밖에 넓은 세상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개구리야말로 마음이 타들어간다. 그 때서야 스스로를 ‘우물안 개구리’라고 알게 된다.


 나를 ‘우물안 일잘러’로 만든 것은 내가 우물안에서 편협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부족하다고 느껴버린 그 순간의 나 자신이었다. 그 열등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나는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열등감을 없애고 다름을 인지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도 행복해지는 방법이겠지만, 나에게 제일 좋은 방법은 열등감을 그대로 들이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점프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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