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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Aug 20. 2023

일잘러의 세상이 흔들렸다

[연재] 우물 안 일잘러를 아시나요 01

2011년 1월, 나의 커리어가 시작된 해다. ‘죽을 사’라고 불리던 사학과를 졸업하고 갈 수 있는 직무는 많지 않았다. 수십개의 서류가 떨어지고 우연히 알게된 온라인 서비스 기획이라는 직무는 이력서를 재정리할 수 잇는 기준이 되어줬고 난 어렵게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는 인턴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기업을 골라가기는 커녕 유일한 합격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기업에서 일을 배우고 운도 좋게 잘 적응해서 일을 해나가다보면 보이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 첫 3개월이면 우리팀의 역할이 뭔지 알게 되고, 1년이면 어느정도 내 직무에  익숙해지는 것이 느껴지고, 3년이면 조직 전체의 형태와 권력관계도 보이고 5년쯤되면 너무 익숙해져서 성장의 한계를 느끼거나 염증도 느낀다. 거기다가 중간에 몇 번 우수직원 평가를 받거나 내부에서 수상이라도 하게 되면 스스로 자부하게 된다. 나는 일잘러라고. 그리고 빈말이라도 팀내 에이스 소리를 듣기도 한다. 회사의 규모가 작다면 사실 5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재수없다 하고 누군가는 인정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그렇게 믿었으니까.


2020년 6월, 딱 일해온지 10년이 되던 해에 난 10년간 일해온 일하는 방식과 노하우를 정리한 <현업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기획스쿨>이란 책을 출간했다. 당시 10년이란 세월간 하나의 분야와 하나의 회사에서 한가지 직무를 해오고, 이를 기반으로 글을 쓰고 3년여간 강의를 해왔던 나에게는 하나의 총정리이자 기념비였다. 책에 대한 반응도 좋았고,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무자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들으면서 구체적으로 업무를 하나하나 배울 수 있다는 평이 이어졌다. 이론적이거나 지나치게 현학적이라기보다는 평범한 회사에서 평범한 직원인 내가 평범하게 궁금증과 경험을 쌓아가면서 일해온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안에서 느낀 감정이나 당황, 그리고 이를 해결해온 과정은 내가 가진 보편적 지식이 큰 힘을 발휘한 결과였다. 나는 분명 한 기업에서 서비스기획 직무를 해오면서 못한다고 욕먹지도 않고 회사에서 평가도 잘 받아온 자칭 일잘러였다. 최선을 다해 정리했기에 좋은 평가에 뿌듯했다.


그 리뷰를 보기 전까지는.



서비스 기획 업무 입문서로는 보기 좋다. 그러나 필자는 프로덕트 매니저와 서비스 기획자를 동일시하는데, 롤은 명백하게 구분이 가능하다.(그러다보니 프로덕트매니저를 제품의 ceo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프로덕트매니저의 경우는 목표 설정, 제품 전략, 문제정의(발굴), 솔루션, 우선순위 결정, 실행, 제품팀 관리 등에 더 무게를 둘 수 있다.   
즉, 프로덕트 매니저는 why와 what을 고민하는게 주 역할이라면, 한국에서 말하는 서비스 기획자는 how 즉 어떻게 만들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즉, 문제 발굴과 실행을 구분해서 롤을 바라봐야하는데 필자는 대기업의 서비스 기획자의 경험만 있다보니, 크로스펑셔널한 제품팀에서의 프로덕트 매니저의 경험이 없다. 이 부분에서 프로덕트매니저와 서비스 기획자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못한게 아쉽다.

2020.07.20. 교보문고의 리뷰



처음으로 이 리뷰를 읽었을 때 얼굴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전까지 좋은 리뷰들만 보다가 이 리뷰를 봤을 때 내가 느낀 첫 느낌은 불쾌감이었다.


“얼마나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익명의 리뷰어에 대한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하지만 그 불쾌감의 이면에는 다른 감정도 숨어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눌러오던 불안감이었다. 사실은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내가 책에 쓴 일하는 방식은 ‘서비스기획’이라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내려온 보편적인 형태이지만, 그만큼 진부했다. 분명 이미 주목받는 기업들에서는 이와 다른 방식으로 ‘프로덕트오너’라고 불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성과를 크게 내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저 리뷰어는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의 첫 책이 발간하기 3달전쯤, <프로덕트오너>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프로덕트오너는 쿠팡이나 실리콘밸리에서 사용되는 직무명으로 서비스기획자라고 부르면서 일하는 내 업무의 유사하지만 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형태다. 막연히 이래저래 타인의 경험들을 온라인상에서 들어본 적이 있기에 유사하지만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어렴풋이 들어본 적은 있었다. 책을 마무리 하던 단계였기에 얼른 후다닥 그 책을 읽으면서 서비스기획자와의 사전적 차이에 대해서 <서비스 기획 스쿨>책에도 그래서 가볍게 명시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확한 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저 다른 방식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막연하게 실리콘밸리의 방식은 약간 다르다는 수준으로 밖에 알지 못했다. 글자로 배운 차이의 설명에 가장 불만족스럽던 사람은 다름아닌 나였다.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리뷰어의 말에 쉽게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었다.



변화 속에서 전문가를 꿈꾼다는 것은 나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


 <서비스기획스쿨>이라는 책을 내기까지 딱 10년. 신입으로 내 업무에 처음 시작하면서 내가 막연하게 꾸었던 꿈은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특정 업계의 전문가가 되어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오랜 소망이었다. 하지만 책을 쓰면서도 느꼈던 것은 하나의 업종, 하나의 직무에서 긴 시간동안 일한다해서 모두가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와 내가 있던 회사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전혀 다른 문화 그리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동종업계 경쟁자가 나타나서 업계를 뒤집어 버리는 상황.

 그것은 어느 업계에나 있을 수 있고 또 그저 묵묵하게 한가지 방식으로 쌓아올린 전문가의 꿈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시장에서는 선두주자로 불리던 기업이 후발주자가 되어 버렸다. 새롭게 유행하게 되는 키워드가 업계에 퍼지고 갑자기 뒤쳐지게 된 기업의 리더들은 더더욱 내부 직원들에게 성장을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새로운 모습을 이야기하고 실제로는 제자리 걸음을 하며 그 안의 직원들은 각자 자신의 전문성에 더 많은 물음표를 가지게 되는 상황. 모두 다 갑자기 변화한 환경과 질서가 힘없는 직장인에게 가져오는 혼란스러움이었다.


 신생 회사의 화력에 위협을 느끼는 회사가 직원들을 쪼아댈수록, 오히려 회사의 발전에 대한 걱정보다는 나 자신에게로 걱정이 향하고 있었다.


“난 과연 이 직무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맞는걸까?”


“나 이대로 계속 지내도 앞으로도 계속 괜찮을걸까?”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던 이 세계가, 사실은 전부가 아니었다는 불편한 진실. 그렇다면 나의 일의 역량과 경험도 결국 내 경험의 틀 안에만 있는 반쪽짜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억지로 누르고 있던 참이었다.

어렴풋하게 느꼈어도 애써 무시하고 있던 성장과 변화에 대한 ‘필요’가 저 리뷰 하나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과연 기획자로서 아무런 기반도 없는 환경에서도
커머스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이 생각에 도달하자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 세상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구나.’





나는 우물안 일잘러였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짐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는 내가 알고 세상이 모두 가짜로 만들어진 TV쇼라는 것을 알게된 트루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트루먼은 자신의 세상이 가짜임을 의심하기 훨씬 전부터 자신의 삶이 굉장히 갑갑하게 틀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느끼고는 했다. 그래서 평소에 다른 길로도 가보고 갑작스럽게 다른 행동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안락한 가짜의 세상을 인식한 순간 세상은 너무나도 좁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에 그가 떠나는 것을 배신감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가 그 세상보다 실제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잘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 세상에서, 다른 넓은 세상이 더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순간 예전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마음을 훨씬 더 불편하게 했다. 내가 최고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문가’가 되고 싶은 내 꿈에서 이미 이탈해버린 느낌. 하지만 당장 뛰쳐나가기에 이미 익숙해진 조직과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은 나에게는 쉬운 선택임은 분명했다. 이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일이 올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까지 하면 적당한 마무리인지 잘 아니까. 그냥 그런 원론적인 성장에 대한 욕심따윈 집어치우고 어떻게든 버텨서 진급을 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10년후의 모습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려고 하자 생각은 바뀌었다. 40대 중반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데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 지금까지 10년동안 쌓아놓은 기술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조금더 매니지먼트를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익숙함이 역량이 되어 ‘아’하면 ‘어!’할 정도로 내 직무와 조직의 목표와 일하는 형태와 이슈를 대처하는 방법까지 숨쉬듯 자연스럽지만 계속 그대로 역량을 재활용해가면서 소모만 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의 세상은 작은 우물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막연히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의 직무에서 오랫동안 근속을 하게 되면 겉으로는 말할 수 없는 작은 고민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동창인 유정이는 유명 게임사에서 나만큼 오래 근속을 한 친구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일과 삶에 대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에게서 나와 같은 불안을 마주했다. 일에 치이고 바쁜 듯 살고 있고,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승진도 잘 하고 살아간다고 해도 사실 이 회사 밖에서도 ‘일잘러’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하는 공포였다.


 직업적 역량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기술직이나 스포츠 선수와 달리 사무직들의 일은 어디까지가 개인의 역량이고 어디서부터가 환경과 운에 적용되는 영역인지 알기 어렵다. 특히 정량적인 지표로 평가받지 않는 대다수의 직무는 더더욱. 안에서는 그래도 사고 없이 주어진 일을 잘해내는 자칭 ‘일잘러’였지만 혹시라도 다른 환경에서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된다면, 내가 가진 알량한 자존심은 회복조차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계속해서 피어났다. 스스로의 기준에 도달해서 스스로 자부하는 이 ‘일잘러’라는 그 이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보통의 일잘러들의 공포, '실력'


 스스로 ‘일잘러’라고 생각하는 일잘러들은 왜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게 되는 걸까? 연차가 높아지면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 주제는 점심시간이나 차를 마시다가 한번쯤 입에 오르내렸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지인들의 고민은 ‘순환근무제’였다. 순환근무제는 제네럴리스트를 키워내기 위한 대기업의 공채들이 흔히 겪는 시스템이다. 직무가 계속 순환되기 때문에 다양한 직무를 체험하며 회사 전반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명목이다. 과거 관료제로서 부장만 되도 일하지 않고 일을 시키기만 하던 시절의 조직구성 방식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현실 속 10년차 과장, 차장들은 오히려 순환근무제때문에 고민에 빠진다고 했다. 순환근무제 덕에 여러가지 일을 해보긴 했지만, 한가지 직무를 그 기간이 너무 짧아서 ‘OO전문가’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아예 이직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완벽히 똑같은 동종업계에서 다시 순환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경력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세상을 넓혀야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선택이다.


 중소스타트업에 다니는 지인들의 고민은 일의 표준이나 업무 범위 자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사가 작으면 필요하다 싶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상세하게 역할이 나눠져있는 대기업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대기업 이직을 하려고 할 때 전문성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고, 가고 나서는 체계적이지만 한계가 많은 조직의 형태때문에 적응에 실패하고 돌아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어떤 곳에서 시작하고 어떤 길을 가려고 해도, 일을 좋아하고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의 불안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본다. ‘내가 속한 곳에서만 일잘러이고 더 넓은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을까봐.’ 그리고 그 불안은 더 멀리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애써 다른 세상을 보지 않으려 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2020년 그 리뷰를 만나기 전에 이미 몇번이나 내가 사랑하는 이 직무의 세상이 여기가 끝이 아님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 안에서 애를 쓰고 잘하려고 했고 더 큰 프로젝트를 하려고 했고, 인정받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불안은 커져갔다.


 그리고 결국 나의 세상은 누군가 던진 돌멩이 같은 리뷰글 하나에 세차게 흔들렸다. 나의 넓고 자유롭던 세상이 우물같이 좁게만 느껴졌고, 나는 오랜 서비스기획자로서의 방식이 아닌 프로덕트오너로서의 방식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우물 밖에서도 아니 그 어떤 곳에서도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일잘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을 해보고 난 뒤, 저 리뷰어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무엇이 차이인지 겪어보니 알게되고 그리고 알고보니 난 그 세계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우물안을 나와 진짜 일잘러가 되기 위한 변화를 결심했다. 그게 2020년 7월이었다.

우직하게 10년 가까이 지낸 회사에서 나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지냈지만, 책이 나온지 고작 1달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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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시리즈<우물안 일잘러를 아시나요>는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직장인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공포, 그리고 변화에 대한 불안, 성장의 대한 갈망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IT업계와 환경 속에서 기획이라는 직무를 가지고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반응하기 위해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그 시기를 지나왔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래의 변화들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이 연재를 지켜봐주세요 :)

서비스기획자에서 프로덕트오너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수행자에서 오너십으로

감각에서 데이터 드리븐으로

문득 자신의 실력에 대한 불안으로 우울감이 생길 떄

반복적인 이 일에서 벗어나야하는 것을 알지만 무기력할 때

습관적인 업무방식에서 다시 신입이 되어 공부하기

오랜 경험에서 오는 에고와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이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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