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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Sep 18. 2023

부정적 감정이 오히려 성장을 가져올 때

연재 <우물 안 일잘러를 아시나요>  05

열등감과 배신감 : 우물 탈출의 원동력


 우물안을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다니던 회사가 좁아서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회사 생활에 대해서 내가 가진 신념이 있다. 바로 ‘비전(Vision)은 셀프(Self)’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가 나의 성장을 이끌어주지 못하는 것은 회사가 비전을 주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개인의 성장에 대해서는 인도적 책임은 있을지 몰라도 계약된 명시적인 책임은 없다. 돈을 주고 개인의 노동력을 사들여서 회사를 운영할 뿐이다. 반대로 내 노동력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것으로 거래는 끝났기에 돈을 주는 사람이 성장까지 책임져줄 의무도 없다. 


 나는 이 명제를 절실하게 체감했던 적이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2018년에 온라인 대학원에 IT관련 정보학 석사과정에 입학을 했다. 대학원에서는 회사 HR팀을 통해서 제휴기업이라고만 도장을 받아오면 등록금을 30% 할인해준다고 했었다. 회사가 학교에 뭔가 기부금을 낸다거나 약속을 하는 것도 없었기에 HR팀에서는 적극적으로 응원을 해주며 내부 기안을 상신해주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해당 부문의 부문장 결재가 통과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에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부문장님의 이유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 회사 업무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좀 억울했다. 그 대학원 공부도 내 직무를 더 잘하기 위한 기반이 되는 공부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난 꽤나 큰 학비 할인혜택을 받지 못했던 덕에 더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일부 장학금을 받으며 석사를 마쳤다. 내 역량을 키우는 것은 철저하게 내 몫임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물론, 이 에피소드의 상황은 특정 임원의 사견일 수 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기업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기업은 지금 이 순간의 직원의 노동력에 이미 값을 지불했기에 더 성장하는 것을 꼭 필요로 하진 않는다. 신입사원을 교육시켜서 회사의 장기적인 일꾼으로 키우는 사고방식은 수많은 공채 시스템의 중단과 함께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 되었다. 이제 회사는 이미 역량을 가진 사람에게 걸맞는 비용을 내고 노동력을 사려고 한다. 경력없는 취준생에게는 슬픈 세상이지만, 어쩌면 사내에서 일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그 역시도 슬픈 상황이다. 그 임원과 나는 서로 배신감을 느꼈다. 


 회사가 아무리 잘 나가고 제이커브를 그리며 가파르게 성장한다고 한들, 개인의 기존 역량을 반복적으로 소모만 시키고 있다고 느낀다면, 개인에 대한 평가나 연차가 쌓인다고 해도 성장은 정체되어 있을 수 있다. 물론 회사는 개인 역량을 소모 시키는 것이 디폴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하는 개인의 스스로의 성장포인트를 찾아내서 집중해야한다. 그게 바로 회사와 무관한 셀프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헬스장에 가면 흔히 ‘무게를 친다’고 한다. 헬스기구는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을 반복시킨다. 하지만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똑같이 무거운 물건을 들면서도 특정한 근육이 어떻게 쓰이고 나는 힘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서 근육의 성장이 달라진다. 일 역시 마찬가지다. 본인의 셀프 비전이 있다면 똑같이 역량을 소모하는 과정에서 내가 키워야 하는 근육에 신경을 쓰고 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일정 관리능력을 더 향상 시키는 것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다짐한다면, 그 부분만 더 깊게 고민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보고 거기에 대해서 개인적인 회고를 해볼 수 있다. 그 프로젝트의 성과나 의사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일정 관리에서 목표를 가지고 그 근육을 집중적으로 쓴다면 최소 내 경험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이야기되는 ‘1만시간의 법칙은 신경써서 할 때를 이야기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되는 일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그래서 ‘우물안 일잘러’ 탈출이란, 이직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과 상황에 익숙해져서 거만해진 에고와 틀을 깨서 습관적으로 일을 쳐내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방식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일해보면서 이 직무의 역할과 원리, 프로세스에 대해서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이것이야말로 회사가 책임져주지 않는 개인의 비전, 나의 ‘셀프 비전’이었다


 어쩌면 왜 그렇게 스스로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가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하지만 모든 사람이 희열에 넘쳐서 신이 나고 열정이 넘쳐서 성장을 추구하진 않는다. 변화의 시작은 다른 곳을 보고 놀라움과 경탄 그리고 거기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열등감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면 잘하고 싶은 거고, 더 성장하고 싶은 것이다. 이 마음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은, 내 발이 성장을 향해 갈 때 괴로움이 있더라도 참을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는 열등감에 괴로워하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성장을 향해 내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애사심이 아니라 이기심 :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이유


 9년 8개월이나 다닌 회사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미준님은 애사심이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긴 기간을 한 회사에 다니고 이직하지 않았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의 셀프 비전 덕이었다. 

회사만 놓고 생각했을 때, 회사 네임밸류에 대한 불안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매번 빅테크 회사의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남아있었던 것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졌고 열심히 하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성장의 기회였다. 


 나는 이커머스를 잘 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었는데 내가 다닌 회사는 유통 계열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 접할 수 있는 이커머스의 범주와 형태가 굉장히 다양했다.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주기적으로 신규 구축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 그 덕에 나는 운이 좋게도 이커머스의 구석구석의 여러 모듈을 기획하는 일을 하면서 계속해서 지식을 쌓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회사는 나의 노동력을 활용해서 1등할만큼 훌륭한 비즈니스를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나는 내 연차에 어디서도 갖추기 힘든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에 있어서 필요한 정책이나 고려요소들을 고민할 기회를 얻으며 아카데미하듯이 두루 익힐 수 있었다. 


 당연히 그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신규 사이트 구축이나 리뉴얼 등 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경력직으로 왔던 선배들은 많이 퇴사를 했고 나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서비스를 인수인계받고, 내가 기획했던 서비스는 신입에게 넘겨줘야했다. 일정 기간 회사에서 경력이직을 받지 않고 신입만을 뽑는 기간이 생기면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팀장님은 ‘네가 사원이라도 사고치면 안된다’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잘나서 그런 일도 잘 했냐고 물으면 분명 당시에 함께 한 누군가들의 평가는 엇갈리지 않을까? 잘해줬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콧방귀를 뀌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회사를 어떻게든 잘 하게 하려는 아름다운 애사심이 아니라 이기심으로 그 자리를 버텼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지 모른다. 그 당시에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우리 회사가 1등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이렇게 중요한 경험을 해서 얻는 지식이나 경험이 나의 비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챌린지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그 순간에 더 성과를 내려면 더 좋은 인재는 항상 따로 있었을 수 있다. 누군가는 그런 내 모습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애사심이라고 봤을 뿐이다. 난 그런 식으로 이커머스 서비스 내에서 전시, 배송, 클레임, 정산, 주문결제, 상품, 앱 등의 순서로 마치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돌 듯 경험을 해보면서 연차에 비해서 다양한 업무를 체험해볼 수 있었다. 물론 다음 기회가 오려면 적당히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니던 회사를 개인의 힘으로 아마존으로 만들 수 없었다고 날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스타트업 커리어 전환을 돕는 스타트업인 <조인스타트업>의 대표 장영화 대표님은 그의 책 <커리어 피봇팅>에서 개인이 기업을 다니는 것을 ‘아카데미’처럼 생각해야 되는 시대라는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에 가지고 있던 감정은 딱 그랬다. 우물을 벗어나는 방법이 더 이상 사내에서 해소되지 않을 때 새롭게 기회를 얻으며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나의 이직이었다. 



거슬림과 짜증 : 핏(Fit). 그 놈의 핏(fit)


 이직을 마음 먹었을 때, 어디로 가야 내가 이 회사에서 겪어보지 못한 모습으로 일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했다. 나의 우물탈출을 시작하게 만든 문제의 책 리뷰가 지목한 ‘크로스펑셔널 팀’ 형태로 일하는 국내회사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은 2개의 회사였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던 중에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우리 회사 출신 중 저 두 곳에 간 사람이 없네?”


 그랬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가 아는 그 많은 사람 중에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빅테크 기업으로 정말 많이 갔지만, 희한하게도 거기에만 없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그 다른 일하는 방식의 기업들만. 


“프로덕트오너로 일하는 회사는 지원 안했어?”

 나는 이직에 성공했던 기존 동료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지원했는데 서류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면접까지 갔는데 떨어졌다는 사람도 있었다. 면접과정에서 느낀 것에 대해서 떨어진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하나같이 ‘핏fit'이 맞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핏(Fit), 대체 그 놈의 ‘핏fit’이 무엇일까? 


 책 리뷰에 충격을 받기 전부터 사실 서비스기획자의 새로운 방식으로 프로덕트오너가 떠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일하던 방식의 서비스 기획자와 스타트업의 프로덕트오너의 차이는 피상적이었다. 대표적인 프로덕트매니지먼트의 개념서라고 불리는 <인스파이어드>와 국내 프로덕트오너의 정의를 퍼뜨린 기업인 쿠팡의 김성한님의 <프로덕트오너>라는 책을 읽으면서 차이를 이해하려했었지만, 사실 똑 부러지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는 토마토케찹인데 그 사람들은 토마토퓨레 같았다. 분명 토마토로 만드는 소스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제작방식도 그 용도도 약간 다르다. 프로덕트오너로 일하는 방식이 더 트랜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이미 고착화된 프로토콜을 가진 나의 시각을 바꾸지 않고는 그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토마토퓨레를 보고서도 토마토케찹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업무의 결과가 유사했기에 생각과 프로세스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글만으로는 어려웠다. 비슷해보이는 것을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짜증이 올라왔다.



 ‘우물안 일잘러’의 익숙해진 프로토콜이 체화된 상태에서는 자신의 필터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일의 결을 바꾸는 미묘한 생각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고 있고, 그런 차이를 ‘핏이 맞지 않다’고 말한다. 나의 우물 속 일잘러 동료는 ‘에이, 뭐가 다르겠어. 그냥 다 일이 똑같지 뭐’라고 생각했다가 기존에 생각해본 적 없던 면접 질문의 포커싱에 당황했었던 것과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해줬고, 우리는 함께 불쾌한 마음과 동시에 무언가 알 수 없이 쫓기는 마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던 이 차이는 3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은 설명할 수가 있다. 경험을 확장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면접관으로 사람을 뽑는 입장이 되고 나니 ‘핏’이 맞지 않는 사람을 뽑는 것이 기업입장에서 얼마나 어려웠을지도 이해하게 됐다. 


 “혹시 스프린트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에 대해서 경험이 있거나 이해하고 있는 바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스프린트는 처음 들어봤어요.”


 15년 넘게 훌륭하게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에서 경력을 쌓고 새롭게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1~3년차 프로덕트오너 자리에 지원했던 한 분의 대답이었다. 나 역시 그 분을 아쉽게 떨어뜨리며 ‘핏fit’이 맞지 않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스프린트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고 사람의 가치를 보지 못하냐고 말할 수 있다. 그 분도 내가 겪었던 많은 자존심이 걸렸던 고민들을 모두 다 이겨냈기에 지원을 했을 것이고,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도 깊었다. 하지만 기존회사에서 이 회사로의 이직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꿔서 습득하려는 의지까지는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선배인 그 분의 행동에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었다면 그 방식으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아보고 올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쉬웠다. 그게 아마도 그 질문에서 나와 다른 면접관이 느낀 핏의 문제였다. 


 반면에 그 직무를 차지한 사람은 달랐다. 현재 일하는 기업과 면접을 보고 있는 기업에 기대하는 일하는 방식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본인이 어떻게 일해보고 싶은지 설명하고 그 가능성을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핏’이 맞지는 않지만 ‘핏’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아야 새로운 핏에 적응할 수 있다. 그걸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애초에 차이를 먼저 대충이라도 알아내고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때의 나는 이것을 지금처럼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짜증과 쫓기는 듯한 거슬림을 느꼈다. 그것은 그대로 가라앉을 것 같은 위기감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보자, 내가 준비해야할 것이 눈에 보였다. 만약 무턱대고 지원부터 시작했다면 나 역시 같은 좌절감부터 맛보게 되지 않았을까. 


 우물 밖의 세상에서는 당신이 그 우물을 벗어나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일하는 방식을 바꿔서 나의 세상을 확장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먼저 그 세상에 대해서 알아봐야한다. 그리고 무엇을 바꿔야하는지 먼저 떠올리고 각오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 그 각오와 마음 자체가 ‘핏(fit)’을 맞출 수 있다는 증거이자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Chapter1. 일잘러의 세상이 흔들렸다. 끝.

다음주부터는 다음 챕터로 넘어갑니다 :) 

chapter2. 우물안 일잘러를 구원할 메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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