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물안 일잘러를 아시나요 - 9-
조급하게 인정을 바라는 애타는 마음의 이직자
드디어 ‘서비스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벗어나, ‘프로덕트 오너’로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름과 변화 그게 뭐라고 변화속에서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느낌에 목이 다 타들어가는 것 같았었다.
이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고, 이제 다르게 일하면서 변화를 내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치 신입처럼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배워나갈거얏!”
마음은 정말 그렇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정말 그랬던 걸까?
새로 받은 웰컴키트를 두고 사진 한장을 찍고, 전 직장에서 그렇게도 지급받기 어렵던 맥북을 받아들고 반가운 마음도 잠시, 나는 미친듯이 회사 어드민(Admin)을 뒤져대기 시작했다. 어드민은 보통 회사 내부의 사용자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서비스 메뉴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UI보다는 데이터나 정보가 실제 데이터 테이블에 저장된 것과 유사하기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제 어떤 식으로 시스템이 구현되었는지 파악하기가 쉽다.
대기업에서 서비스기획을 하던 사람들은 이직을 하면 의례 모든 기획내용과 정책들이 정리된 정책서를 찾기 마련인데, 사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정책서를 쓸 시간에 프로덕트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 많다고 알고 있어서, 나는 나의 짬바로 새롭게 적응해야할 서비스를 파악하기로 했다.
복잡도가 요구사항으로 만리장성 쌓을 만큼 기능이 많고 복잡했던 이커머스 서비스에서 일해오던 나에게는 전체적인 기능의 양은 굉장히 단촐했다. 역사가 짧은 만큼 없는 기능이 많았다. 마음 속 한켠에서 불쑥 무언가가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여기는 기획을 해놔도 진행이 이상하게 안되요.”
단호한 표정의 그녀의 표현은 명료했다.
나는 이커머스 시스템에서 ‘주문’을 담당하기로 하고 이직을 왔는데, 회사에는 나보다 석달정도 먼저 이직을 온 팀내 동료가 있었다. 너무 반갑게도 나와 기존의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일했던 동료였던 터라 마음에 의지와 위안이 되었다. 이 분이 내가 오기전까지 임시로 주문과 클레임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었기에 그 분에게 주문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인수인계를 받기로 했고 저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이것저것 인수인계 파일과 정리하기 위해 노력한 문서들을 넘겨 받았다. 그리고 정말 그녀의 말처럼 이미 기획이 끝난 것으로 보이는 십여개의 노션 문서들이 개발이 시작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홀딩되어 있었다. 현업에서 요청받은 리스트들을 백로그(해야할 일 목록)으로 쌓아두고 하나씩 기획안을 만들고 일정을 협의하려고 했는데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호라.. 이렇다는 건가’
그 순간 내 마음에서 또 한번 불쑥 무언가가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주에 처음으로 사내의 모든 프로덕트오너가 인사를 드리던 날, 지금 생각하면 내 뒤통수를 한대 치고 싶은 멘트를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미준입니다. 10년 가까이 이커머스있으면서 이커머스 종합몰 구축을 2번 참여했고, 운영기획을 하면서 다양한 모듈을 겪어왔습니다. 제가 겪어온 다양한 것들이 많으니 뭐든지 많이 물어봐주세요.”
“구체적으로 뭘 많이 물어볼 수 있나요?”
한 분이 반문했다.
지금와서 생각했을 때 내 안에서 움직였던 것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다름 아닌 내다 버리고 온줄 알았던 ‘우물안 일잘러의 에고’였다. 내 선택은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하는 것을 다르게 일하는 것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왔지만, 복잡도가 낮은 서비스를 보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우물에 서 있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곳까지 쫓아와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인정받을 일을 하기도 전에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유치한 자아였다.
그 때의 나는 퍽 오만한 대답을 했다.
“이커머스 서비스들 정책이나 구조같은 것들이요.”
이글을 쓰는 지금도 그 멘트를 생각하면 얼굴이 훅하고 뜨거워지는 것 같은 말이었다. 당시의 나 역시 그 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살짝 상기되는 감정을 느꼈었다. 이렇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랬다.
우물안을 빠져나온 일잘러는 내가 우물을 빠져나온다는 사실 자체에만 너무 몰두하고 있었지만,환경의 변화는 나만의 것이 아님을 잊고 있었다. 나의 우물이 아닌 곳의 서 있던 그 사람들에게도 나라는 사람의 등장은 변화 중 하나였다. ‘우물 안 일잘러’로서 오랜 시간 시간을 보내온 탓에 기대를 받는 것에 익숙했고, 그래서 기대감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에 쓸데없는 급한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일에 대한 지식도 그리고 그에 대한 스킬도 천천히 보여주면 되는 것인데, 도착한지 하루 만에 나를 일잘러로 인정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런 생각이 깨지는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변화 앞에서 만난 관성의 충돌 현장
나보다 석달 먼저 이직을 온 그녀는 분명 내가 잘 알고 있는 여타의 일잘러들과 같았다. 회사에 정책을 부지런히 정리해서 문서로 만들고 파악하고 있었고, 요구사항을 잘 리스트업하고 요구사항을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지 보기 좋게 기획 문서를 정리했다. 목표하는 일정도 셋업해 두었다. 하지만 일이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음에 답답해했다. 몇번의 스프린트 회의를 하며 지나갔는데 일정이 세팅되지 않더라는 그녀의 이야기였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연차의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 일을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그러던 것도 잠시, 오만했던 내 인삿말이 어떤 면에서는 먹혔던 건지 입사하고 2주차가 될 때 사내에는 대형 프로젝트 3개가 떴고 그 중에 하나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프로젝트는 여러가지 용도로 분산된 상품쪽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하면서 상품 모듈의 한계를 없애기 위해서 레거시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였다. 상품 모듈과 주문 모듈을 주니어 1명과 함께 같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전사 플래닝’을 통해서 사내에서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발표하는 시간이 잡혀있었다. 4일 뒤였다. 나는 시간에 쫓기자 종합몰에서 상품등록/관리를 하는 시스템을 이미 만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습관적으로 요구사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십개의 항목을 적고, 거기에 맞는 예외 적인 정책들을 빼곡히 적었다. 나는 경험이 많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우물안 일잘러의 시그니처 오만’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경험에 미루어 일정을 가늠해보고 못해도 1년은 걸릴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3년이나 긴 프로젝트를 하다가 겨우 왔는데 또 긴 프로젝트라니, 이것도 팔자인가.’
하지만 그 생각에도 오만함은 베이스처럼 따라붙어 있었다. 일 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어서 일부러 뛰쳐나온 환경인데 나는 습관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저 손이 빨랐다.
대망의 플래닝 발표의 날, 나는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많은 상품등록 항목과 케이스들을 포함했다. 필요없다고 생각한 몇가지는 지웠지만 대부분 기존에 계속해서 봐오던 습관적으로 보던 항목들을 문서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발표가 끝나고 피드백과 질문이 나왔다.
“폴리, 그건 그렇게까지 먼저 정해서 말하지 말아요. 목표 일정은 3개월이에요.”
“아, MD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렇게 고려해서 해야겠네요”
그런데 누군가가 내 문서 내의 개발적인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했고, 자리에 앉아 있던 개발자들이 먼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개발자과 개발리더들이었지만 나와 협의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객석에서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기획을 이야기하며 발표하던 나의 존재가 패싱되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내가 느낀 감정은 ‘욱하는 마음’이었다. 내 눈빛이 아주 매서워졌고, 나도 모르게 그 개발자를 향하는 눈빛이 강렬해졌다. 심지어 3개월이라는 일정도 말도 안되게 느껴졌다. 심지어 개발은 1달, 테스트해서 세팅하고 사용하는 것까지 3개월. 그리고 기존에 운영하던 서비스를 내리거나 DB를 이관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저 사람, 나도 짬바가 있는데 지금 날 무시하는 건가?’
나는 처음으로 fit(핏)이 맞지 않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전의 회사에서는 기획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만 움직였다. 심지어 개발에서 의견을 내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모든 옵션을 기획자가 이해한 후에 결정해오지 않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에 있던 나에게 내가 아직 이해하기도 전에 누군가와 협의를 마쳐 버리는 것이나, 4일만에 겨우 가이드라인을 힘들게 짜온 기획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개발 내용은 과도하다는 평가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평가를 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배우고자 했던 기업에서 크로스펑셔널팀에서 주로 일해온 경험이 많게 이직을 온 개발자들이었다.
도리어 그 사람들은 나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면 어떤 비즈니스 임팩트가 있는지 말해주세요.”
상품등록, 관리를 하는 시스템을 통합하는 레거시 개선 프로젝트를 하는 것의 결과는 당연히 상품을 등록하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레거시를 바탕으로 더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적인 대답은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좀 더 클린한 비즈니스 임팩트를 숫자로 보여달라고 했다. 난 머리 속이 멍해졌다.
내가 하던대로 해도 진행이 될 것 같지만, 뭔가 납득하지 못한다는 그 미묘한 분위기 그것이 바로 차이였다. 정리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임팩트가 있는 일을 하려는 것이 크로스펑셔널팀에 익숙한 개발자들의 핵심 질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의지하던 클레임의 그녀를 통해서 ‘핏’의 차이를 더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사의 프로덕트오너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VP는 프로덕트오너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내에서는 내가 만드는 새로운 상품 시스템을 기반으로 물류창고를 통해서 직배송을 하는 서비스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주문과 클레임은 모두 새로운 서비스 프로세스에 가담해야했다. 문제는 거기서 일어났다.
VP는 프로덕트오너들에게 각 프로세스에서 가장 비즈니스 임팩트를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먼저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클레임 처리를 할 때 교환 프로세스를 정책적 범주를 어떻게 가져 가는 것이 개발량을 최소화하면서 비용과 구매자를 생각했을때 가장 합리적인지를 제안해달라는 것이었다. 클레임을 담당하던 클레임의 그녀가 그 때 발언을 했다.
그리고 약간의 설전이 이어졌다.
“그런 정책은 사업부에서 먼저 정해서 전달해야지, 우리는 정해진 정책대로 문제 없이 구현이 잘 되도록 하는게 일이 아닌가요?”
“기획자가 하나하나 다 정해진대로 개발을 하는 게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에요.”
VP도 대답했다.
“그럼 프로덕트오너가 사업까지 관할해야한다는 거에요?”
“사업적인 부분이라기 보다는 사용자와 개발관점에서 적절한 양을 정해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최대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거죠.”
클레임의 그녀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만, 그날의 대화를 들은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나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우물안의 일잘러의 에고’와 우물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애써서 공부했던 모든 것들을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우물안에서 일했던 방식으로는 클레임의 그녀의 말이 구구절절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는 말들이었다. 거기서는 사업적인 부분에 대해서 지나치게 의견을 내는 것은 월권이었고 크게 관심갖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내가 굳이 이직까지 해오며 겪어보고자 했던 크로스펑셔널팀의 방식은 VP의 말이 맞았다. 내가 미리 공부했던대로라면 비즈니스 임팩트를 명확하게 밝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유저스토리레벨로 간단하게 정의하고 나면 그 다음은 메이커들이 자신들의 역량과 능력으로 자유도를 가지고 만들어가는 것을 지향했다. 그러려면 비즈니스 임팩트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했고, 그 영역은 분명 과거의 사업부의 영역으로 선을 긋던 부분과 미묘하게 일치했다. 흔히 서비스기획에서 ‘상위기획’이라고 나누는 것과도 다른 결이었다.
그런 논쟁이 있은 후, 나는 내가 하는 일의 방식이 실제로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내 ‘우물안 일잘러의 에고’를 다시금 곱게 접어서 마음 속 서랍 어딘가에 쑤셔 박았다. 무엇이 다른지 정말 모르겠다면 이런 방식에 익숙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이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프로덕트매니저들의 성향에 대해서 조사하고, 비즈니스 임팩트를 찾는 일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하는 새로운 포커싱에 몰두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클레임의 그녀는 떠나갔다. 놀랍게도 내가 있던 그 회사로 이직을 했다. 내가 있던 곳에서라면 일잘러일거라고 한 눈에 알아봤던 것처럼 그녀는그곳에서 굉장히 안정적으로 성과를 만들며 적응했었다. 클레임의 그녀는 떠나가면서 본인은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적응할 뜻이 없지만 나의 적응이 될 수도 있을 거라며 용기도 주고 갔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말했던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이유’였다. 그녀는 익숙하게 요구사항대로 기획안을 작성하고 전달했지만 그에 대한 사업적이고 숫자로 나타난 ‘비즈니스 임팩트’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메이커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크로스펑셔널팀으로서 함께 스프린트를 설계하고 모든 메이커들과 소통하지 않고, 개발리더에게 리스트업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요청했기에 누구도 개발 착수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어줄 수 없었다.
내가 우물같은 익숙함을 벗어나서 새롭게 만난 곳에서의 가장 큰 차이는 일을 움직이는 핵심의 차이였다. 이 세계를 돌리는 무브먼트의 엔진의 핵심은 ‘비즈니스 임팩트’였다.
방향성에 따라서 일의 방식을 바꾸는 것 : 업스킬링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언인지 당시에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노력한 것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서비스기획자’라고 불리던 국내의 표준적인 일하는 방식에서 ‘프로덕트오너’라고 불리던 방식으로 당시에 가장 성과를 잘 내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문서작업이나 의사결정 과정과 같은 환경의 차이, 크로스펑셔널팀이라는 조직의 차이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겉모습의 차이보다 중요한건 ‘일을 움직이는 무브먼트의 차이’였다. 기존의 조직은 조직의 여러가지 생리구조에 의해서 일이 정해졌었다. 거대한 대기업, 그 안에서 임원들의 임기, 대기업내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계열사간의 관계, 그리고 심지어 고객사와 수행사라는 관계까지.. 이런 여러가지들이 날이 서있게 움직이는 곳에서는 어디선가 리스트업된 수많은 요구사항들의 그 모습 그대로를 만들어내고 수행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내가 바꾸고자 하는 ‘크로스펑셔널팀’이 작동하는 것은 각 분야의 전문적인 직무자들이 ‘비즈니스 임팩트’를 위해서 짧은 시간내에 임팩트에 효과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에 있었다.
무브먼트의 차이는 시계 돌아가는 방식을 바르게 한다. 아날로그 시계와 디지털 시계의 차이처럼 그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작동 방식이 달라지듯, 그래서 작성하는 문서도 시간을 쓰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날로그 시계와 디지털 시계의 해야할 일(Job)은 결국 시간을 알려주는 일이듯이, 나의 해야할 일(Job)은 프로덕트를 기획해서 세상에 탄생할 수 있도록 개발자, 디자이너와 협업을 하는 것이었다.
나의 우물 탈출을 위해서 기존의 일하는 방식에서 세세한 스킬(skill)들을 모두 세세하게 분리한뒤, 새로운 무브먼트에 맞게 재조립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아니라면 나에게 익숙한 형태로 돌아가는 것도 답이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초심자가 되는게 아니라 내 스킬들을 업스킬(Upskill)해야 했다.
이런 개념은 최근 아마존 Learning & Development 리더십 매니저인 ‘데런 널랜드’(Darren Nerland)의 세션을 우연히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흔히 우리가 역량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가능성’이라면 스킬은 지식을 활용하여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바로바로 활용가능한 세분화된 능력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나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이나 유행이 바뀔 때, 우리는 근본적인 스킬들을 그대로 활용하되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업스킬이나 혹은 기존의 것을 활용하되 새로운 스킬을 추가로 익혀서 아예 전혀 다른 직무로 전환할 수 있는 리스킬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 직무교육에서 중요한 트랜드라고 설명했다.
핏(Fit)이 맞지 않는 것을 알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내 과거의 스킬들을 활용하면서 무언가 삐걱삐걱 마찰소리를 내면서 바뀌고 깎으며 변화를 시켜야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계속 성과는 있었고, 나는 변화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 과정은 물음표가 넘치는 꽤나 지독한 시간이었다. 이를 테면 사과를 깎아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돌돌돌 깎으려고 하니까, 빠르게 사과를 먹기 위해서 조각부터 내서 그 조각 사과껍질부터 깎아서 먹어가면서 까내려가라고 하는 기분이었다. 잘 아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시작할 때 조금씩 머뭇거리며 ‘이게 맞나’를 다시 생각하며 마음속에 ‘우물 안 일잘러’의 에고를 조금씩 지워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3개월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