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강민 Salawriter Feb 11. 2019

저에게 실례하신 것 같습니다.

불편한 마음 표현하기

농담 아닌 농담으로 불편했던 마음


대학교,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 여러 기관이 모여서 국책 연구 과제의 진행 방법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고 장소가 지방이어서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예전에 연구를 했었던 주제여서 관심이 있었고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기꺼이 참석하기로 했다. 회의에서는 주최한 기관의 책임자인 교수님의 주제 발표가 있었고, 그 후 질의응답을 겸해서 참석한 기관들끼리 앞으로 협력할 방법을 논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교수님이 발표를 마쳤지만 다들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먼저 질문을 하려고 말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대뜸 하는 말이.

“아, 오늘 저는 지자체 관계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지자체에서 말씀해 주시지요.”

참석을 요청한 사람이, 민간 기업에 속해 있는 나의 의견이나 발언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네?”

회의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막는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었고, 순간적으로 차오른 불쾌한 기분에 밀려 올라온 외마디의 질문을 던지고는 교수님의 눈을 몇 초 동안 쳐다봤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런 회의를 수없이 이끌어 왔을 것 같아 보이는 교수님의 눈을.

"지자체 관계자분들 모시기 어려우니까, 말씀 좀 들어 보자고요. 자, 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자체 관계자를 향해 몸을 틀고 앉은 교수님의 몸가짐이나 자신을 낮춘 말투를 보니 이건 진심이다 싶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하면서 일단 지자체 관계자에게 두 손으로 발언권을 넘겨 드리듯이 양보를 했다. 지자체 관계자의 얼굴에서는 이미 붉게 달아오르기까지 한 나보다 더 난처한 표정이 보인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먼저 하세요.”

서로 더 큰 손짓으로 양보하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던 교수님 입에서 나온 말.

“아. 농담입니다. 농담. 질문하세요.”


이런 회의에 계속 참여를 해야 하는지, 내가 굳이 이 과제에 도움이 될 발언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교수님의 눈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좌중을 한 번 둘러본 후 마음을 다잡고 질문을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는 농담 때문에 회의를 망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회의를 진행하는 분위기를 살펴보니 이 교수님, 지자체 상대로 자신들의 성과를 어필하는 자리에 우리를 들러리로 배석시킨 것 같았다. 대기업도 참여하는 과제라는 이미지를 풍기고 싶었던 것일까? 회의 내내 교수님은 지자체 관계자의 눈치를 살피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분이 전화를 받느라 잠시 자리를 떴을 때는 회의를 중단한 채 언제 통화가 끝나나 회의실 유리벽 너머에만 온통 신경을 쏟곤 했다.


회의가 끝나고 헤어지는 인사를 할 겸 둘이 마주 선 자리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교수님. 다음 회의 때는 목적을 명확히 해 주시고, 저희가 꼭 참석해야 할 때만 불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까는 저에게 실례를 하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지자체 상대로 이야기 나누시려고 저의 발언을 막았던 것 말입니다. 교수님 요청으로 참석한 기관에게 그렇게 하시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농담이었어요. 당연히 다 같이 이야기하려고 모신 거죠.”

웃어넘길 수도 있었으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농담 아닌 것 같고, 그런 농담은 안 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다음부터는 목적을 명확히 정해서 만나시지요. 자주 뵙겠습니다.”

교수님의 표정은 개운치 않아 보였다. 마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개그를 왜 다큐로 받아들이지? 융통성 없는 사람이네.’


나의 시간과 지식과 생각과 말은 소중하다. 그런 소중한 것들을 들여 참석한 자리이고, 이왕 참여한다면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나라는 존재가 꼭 필요하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은 농담에 발끈하는 사람으로 나를 인식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런 농담을 다른 누구에게 던질 것 같은 교수님의 표정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 회의는 내용 자체에서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겼고 나는 불편한 말을 남겼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까닭에 다음날 교수님과 회의 참석자들에게 예전에 연구하며 정리했던 자료를 공유하는 메일을 보내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도 곁들였다.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농담이었으니 오해하지 말라는 말 대신, 실수한 것 같고 불쾌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결례로 불편했던 마음


정부 부처 산하의 어느 기관과 협업을 하고 있다. 실무자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우리 회사의 사정 때문에 업무 진행이 지연될 상황이 예상되어 설명과 함께 양해를 구했다.

“아. 그래요. 잠깐만요. (수화기에서 멀어진 소리로) 00사인데요. 얘네가 사정이 있어서 기한을 좀 늦추자고 하는데요?”

그분이 상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어보는 사이에 ‘얘네’라는 호칭은 몇 번이나 들렸고, 두 번째 들었을 때 이미 내 기분은 몹시 상해있었다.

“아. 여보세요? 제가 상의를 좀 해 봤는데요, 일단 상황이 그렇다고 하시니...”
“잠깐만요. 같이 일하는 기관을 얘네라고 부르는 건 좀 심한 것 아닌가요?”
“아... 들렸어요? 저는 전화기 가리고 이야기했어요. 들리는지 몰랐어요.”
“들리고 안 들리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 상당히 불쾌합니다.”
“아, 죄송해요. 저는 정말 안 들리는 줄 알았어요.”

그분의 말에는 마지막까지 억울함이 묻어났다. 예의를 갖추어 수화기를 가리고 이야기했음에도 소리가 들려버린 것에 대한 억울함. 결국, 적어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얘네”라는 말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나의 메시지는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요. 저 평소에도 그런 말 많이 써요. 저희 회사 윗분들 안 계시는 자리에서는 그분들도 편하게 부르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원래 그러니 앞으로 그러더라도 괘념치 말라는 듯한 일종의 사과에, 나의 불쾌함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해시키려는 마지막 시도를 겸해서 인사를 했다.

“네. 앞으로는 서로 예의를 갖추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두 기관은 장기간 협력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이이다. 그리고 각자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기관이다. 그런 만큼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지금까지 없었던 그런 마음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을 때 공식처럼 돌아오는 말.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에요.”
“제가 의도한 건 아니고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오해하신 겁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정말 오해한 것이기를 바란다. 나를 가벼이 여긴 것이 아니며,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뱉어 버린, 나쁜 마음이라고는 없는 그런 말이었기를. 하지만, 오해의 여부를 떠나 마음은 이미 불편하고 속상하니, 뻔한 해명을 듣더라도 상대방에게 불편한 마음을 전해야 내 마음이 조금은 해소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또다시 똑같은 불편함을 느낄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나 역시도 불편한 말을 꼭 전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전 01화 내 마음을 왜 네가 정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