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강민 Salawriter Jun 08. 2018

모르고 하는 말, 알면서 하는 말

스무 살이던 해에 대형 레코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매장에는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자주 찾아왔었는데, 말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한 그들은 주로 반말을 했다.

리차드 막스 어디 있어?
이거 들어 볼 수 있어?

점원이었던 나는 당연히 높임말을 했다. 그러다 점점 말을 놓게 되었다. 무시하는 마음보다는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점원이라는 이유로 계속 참고 들어야 하는 건지.

서른 정도에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어는 고급 수준까지 공부하고 갔으니 문법은 크게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커서 배운 외국어다 보니 억양은 티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갔다. 신청 서류를 두고 경찰과 몇 마디 나누다 보니 갑자기 말을 놓기 시작한다.

이 서류 어디 있어?
이거 뭔지 알아?

10년 전 동남아 노동자들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억울함이 밀려왔다.


모르고 하는 반말과 알면서 하는 반말.

두 말 자체에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수준은 같았지만, 그 말을 뱉은 사람의 마음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었다.

제가 지금 굉장히 불쾌합니다.
존경어를 써 주세요.

또박또박, 책에서 배운 말 그대로 이야기했다. 나를 내려다보던 경찰은 작은 외국인의 굳은 눈빛과 표정에 잠시 말을 멈추더니, 처음 인사를 건네던 말씨로 돌아갔다.


모르고 하는 말, 알면서 하는 말.

꼭 반말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뱉는 말은 그 마음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진다. 그 말을 듣고도 상대방이 가만히 있다면, 그는 어쩌면 두 번 다시 나와 말을 섞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전 02화 저에게 실례하신 것 같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