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 레일바이크, 닭갈비
20년 전에는 너무나 친숙했던 이 단어들을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오랜만에 기억에서 소환하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동기들과, 선후배들과 함께였다면, 이제는 가족과 함께라는 것이 크게 달라진 점이다. 그런 변화에 가장 들뜬 것은 바로 나였다. 아이들과 강촌이라니. 펜션을 잡아볼까 했지만, 서울에서 많이 멀지도 않은 곳을 가면서 몇 십만 원 들여 숙소를 잡는 것은 사치인 것 같고, 기억 소환을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민박에서 묵기로 했다.
여행에서 먹고 자기만 하면 아쉽지 않을까? 더구나 아이들과 동반하는 여행이라면 몸을 움직이는 이벤트를 마련하면 평화로운 여행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무리 멋진 경치를 눈앞에 두더라도, 감탄하며 구경하랴 사진 찍으랴 바쁜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해져 있다.
"이거 언제까지 볼 거예요? 심심해요."
목적지를 강촌으로 정한 것은 이런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레일바이크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다행히 아무도 타 본 적 없고 모두가 타고 싶어 했다. 안 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레일바이크 코스는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휴게소까지의 레일바이크 구간이 6Km, 휴게소에서 강촌역까지의 낭만열차 구간이 2.5Km로 구성되어 있다. 매일 출발 회차가 9회이며, 1회는 9시, 9회는 오후 5시 반이다. 요금은 4인승이 4만 원, 2인승이 2만 원이다. 사람이 많으면 다음 회차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으니 예약을 하면 편하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길에 비가 오더니, 춘천에 접어드니 눈보라가 몰아쳤다. 예약을 한 시간 후로 미뤄야 했지만, 3월 하순의 눈 오는 날 춘천 여행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김유정역에 있는 레일파크에 도착하니 시간 여유가 있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춘천이면 막국수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눈이 올 정도의 날씨였으니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어 만두를 택했다. 육개장 만두전골, 떡손만두국, 통만두는 어른과 아이의 입맛을 모두 사로잡았다. 첫 식사부터 만족도가 아주 높으니 여행의 출발이 매우 순조롭다.
눈은 그쳤다. 레일바이크에는 간단한 지붕이 있었지만 사방에서 들이치는 눈, 비를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니 좌석이 젖어 있었다. 파크에서 제공한 우의로 좌석을 덮고 앉으니 옷이 젖을 문제는 다행히 해결이 되었다. 시간이 되니 탑승 방법에 대한 안내가 있었고, 수 십 대의 바이크에 사람들이 올라타기 시작한 후 차례차례 출발한다. 추돌할 경우에는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뒤 차에 100% 과실이 있다고 하니, 이 점은 주의해야 한다.
레일바이크 코스는 2011년 경춘선 복선전철을 개통하면서 폐선된 경춘선 폐철도 위에 만들어졌다. 기차가 달리던 길 주변에 있던 강, 산, 터널, 마을을 눈에 담으며 자전거로 달린다. 오르막 길에서는 힘이 들기도 하지만, 함께 페달을 밟으면 또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되는 보람이 있다. 터널마다 테마가 있어, 다음에는 어떤 분위기일지 기대하게 된다. 별 빛 터널에서 감수성에 젖어보기도 하고, 클럽 분위기의 터널에서는 소리 지르며 어깨춤도 쳐 봤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을 때 만나게 되는 풍경은 감동을 더해준다.
허벅지에 가벼운 운동의 피로가 느껴질 때 즈음 휴게소에 도착했다. 낭만열차로 갈아타는 곳이다. 북한강을 바라보며 커피와 간식을 마시기도 하고, 부지런히 기념사진을 남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낭만열차는 실내, 실외 좌석이 있으니 날씨에 따라, 기호에 따라 자리를 선택하면 된다. 강촌역에 도착하면 셔틀버스를 타고 김유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몸을 열심히 움직이고 나니 다시 먹을 수 있는 배가 준비되었다.
예약해 둔 민박집을 향해 다시 강촌역으로 이동했다. 언덕에 걸쳐진 듯 서 있는 민박은 도로 쪽에서 보면 2층, 강 쪽에서는 3층이다. 2층의 우리 방에는 냉장고, 밥솥, 식기, TV, 에어컨, 이불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20년 전에는 이불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지금의 민박에는 없는 게 없다. 주인이 깔끔한 성격이신지 이불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거슬리지 않는 정도다. 가격도 펜션의 반값도 안되니, 서울에서 멀지 않은 여행지에서 "굳이" 하룻밤 자기에는 딱이다.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닭갈비집을 찾았다. 민박에서 가까운 곳 중에서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는데, 황금 불판을 사용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맵지 않은 닭갈비도 있는 것 같아 찾아 나섰다. 민박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닿는 곳의 가게에 들어서니 자리마다 놓여 있는 황금 불판과 벽 면에 걸려 있는 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2016년에 2TV 생생정보에 소개된 이 가게의 불판은 순금으로 도금해서 눌어붙지 않고 타지도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춘천에서 닭갈비에 옥수수 동동주 한 잔. 그리고 점심때 만두에게 양보한 막국수까지 먹고 나니 배는 부르고 마음은 가득 찬다. 예전에 들었던 어느 행복 전문가의 강연에서 마지막 멘트는 "사랑하는 사람과 밥 드세요. 그것이 행복해지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입니다."였다. 바로 이런 행복감일까? 민박으로 돌아오는 조금 쌀쌀했던 길, 그리고 온돌이 뜨끈한 방에 앉아 몸을 녹이며 텔레비전 하나로 같이 웃는 토요일 저녁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방 한 간에 빈틈없이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한다. 바닥은 뜨겁고 공기는 차다. 오래전 방학 때마다 찾아갔던 추풍령 외가의 느낌이다. 생각은 그렇게 예전 기억을 더듬다가 잠이 들었다. 돌아오는 차에서 막내가 한 말을 들으니, 이번 여행 참 좋았던 것 같다.
"하루 더 자고 싶었어요."
오마이뉴스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