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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Sep 08. 2021

독립 노동의 혁신인가, 자기 착취의 가속화인가?

<Gigged,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서평

상상해보라. 여기에는 꼰대 상사도, 답답한 근무규칙도, 신물 나는 사내정치도, 불합리한 승급 시스템도 없다. 그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누구의 간섭도 지시도 없이, 자유롭게 일하면 된다. 또 상상해보라. 여기에는 말로만 일하는 빈 수레도, 얌체 같은 땡땡이도, 뻔뻔한 무임승차도 없다. 그저 본인이 일한 만큼씩 정확히 계산해서 비용을 지급하면 된다. 


어떤가? 혹시 당신이 꿈꾸던 파라다이스 같은 직장이 바로 이곳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아차차! 단, '직장'이라 표현할만한 상시 결집된 공동체 공간은 없겠지만.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 '긱 노동'이 바로 그것이다.

 

앞서 글머리에서 언급한 합리성, 효율성, 투명성, 자율성 등의 장점은 책 <Gigged,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모두 긱 노동의 매력이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드디어 회사가 노동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회사를 선택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했고, 누군가는 노동시장의 효율성이 혁신적으로 개선되었다고도 말했다.     


긱 노동은 4차 산업혁명으로 파생된 일자리에서 태동하여, 플랫폼에 기반한 공유경제가 확대되면서 크게 증가했다. 우버, 아마존, 에어비앤비, 그랩, 배달의민족, 크몽 등 핫한 플랫폼 기업들은 모두 이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이 같은 시스템을 긱 경제, 플랫폼 경제, 주문형 경제(온디맨드 이코노미)라고도 부른다. 노동이 필요할 때 즉각 일시적인 계약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무척 효율적이고, 일한 만큼 정확하게 돈을 번다는 점에서 매우 투명하다. 더군다나 MZ세대의 특성에 잘 맞는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근무환경이라니 요즘 시대에 각광받는 것은 어쩜 당연하다.     


하지만 유연성과 효율성으로 포장된 긱 노동이 정말 장밋빛일까? 긱 워커는 법적으로 피고용자가 아닌 독립계약자(즉, 사업자) 신분이기에 노동자로서의 보호장치와 권리를 누릴 수 없는, 공적 제도 내 사각지대에 있는, 적절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받지 못하는 모호한 존재이다. 따라서 업무에 필요한 모든 집기비품과 경비 구입도 자부담이고, 일한 만큼만 소득이 발생하므로 유급휴가나 병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직원 교육이나 복지혜택도, 동료와의 유대감, 조직에 대한 소속감도 모두 사라진다. 


더군다나 플랫폼에서 내가 파는 노동력이 그래픽 디자이너, 기자, 프로그래머, 영화 스태프 등 희소성 있고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이 아니라면, 플랫폼 내 거래가 활성화될수록 노동력 가치가 하락하여 저임금 현상이 나타난다. 경제학의 오래된 허구적 개념인 '완전 자유시장'이 마치 이 시대의 노동시장에서 재현된 듯하다.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이 펼쳐진다.   

 

결국 기존에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벌던 만큼 소득을 유지하려면,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소비해야 하는 '삶의 질 하락'이 발생한다. 현재 긱 노동 플랫폼에서 가장 활성화된 거래가 운전기사, 청소원, 요양보호사, 베이비시터 등 평균 급여 수준이 낮은 분야임을 고려하면, 이 분야의 노동환경이 열악해질 우려는 더욱 심각하다. 특히 긱 노동과 돌봄 노동(요양, 보호, 보육 등)과의 연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결국 이들의 노동환경이 사회복지 서비스 품질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오프닝에서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택배기사로 취직하는 주인공 '리키'의 모습을 담는다. 드디어 나도 사장이 되었다고, 내 고유 사업을 갖게 되었다고, 이제 열심히 일한 만큼 다 내 수입이 되는 거라며 기뻐한다. 택배차량을 마련하는 것도, 바코드 리더기를 준비하는 것도 모두 회사에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초기 투자비라 여겼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아내 '애비'가 출퇴근 시 사용하던 자동차를 팔아서 비용을 마련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내 맘 같지 않다. 회사가 할당하는 배송량이 과해도 거절할 수 없고, 배송이 늦어져 불만 접수될까 봐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평가점수가 낮거나 회사에 밉보이면 인기 없는 노선을 배정받기 때문이다. 몸살이 나도, 배송 중 사고를 당해도, 가족 문제가 생겨도 마음대로 쉴 수 없다. 자주 쉬면 평가점수가 깎이고, 되려 대직 기사 비용을 회사에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점심식사 시간을 아끼고, 수면 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포기하며 점점 더 일에 매달리지만 관객은 안다. 그가 점점 더 행복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긱 경제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노동의 혁신인가, 외롭고 불안정한 자기 착취의 가속화인가?     


긱 경제가 맹렬히 싸우는 전사만 살아남는 비정한 사회가 아닌, 여백과 자유를 누리는 유연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적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제도적 섬세함과 노동소득 외의 사회적 안전망을 짤 수 있는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 같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법적 보호장치가 없는 긱 노동의 파괴력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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