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빠의 아빠가 됐다> 서평
우리는 가난을 모른다.
대학 수업 때 빈곤론 강의를 들었어도, 일터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맡았어도, 학회나 세미나에서 '빈곤의 대물림'과 '돌봄의 사회화'에 관한 숱한 논의를 접했어도, 여전히 우리는 구체적 삶 속에 가난이 어떻게 투영되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물론 재앙처럼 덮친 갑작스러운 큰 병으로 겨우 버텨오던 일상이 단숨에 무너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 속에 가족 구성원의 삶이 와해되는 불행의 도미노를 구조적으로 잘 이해하기에, 긴급지원사업,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돌봄 가족을 위한 지원사업 등 의미 있는 사업들도 마련되었다.
하지만 그 사업에 실제 참여하는 사람들 혹은 주변을 맴돌다 끝내 포기하거나 기준 미달로 제외되는 이들의 서류 밖 실제적 삶은 우리에게 여전히 희미하고 낯설다.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했던 건 결국 가난을 혹은 돌봄을 주변에서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가 당사자로서 담담히 기록한 9년의 이야기는 그 어떤 보고서보다도 무겁고 힘 있다.
한 번도 넉넉해 본 적 없었지만 그럭저럭 홀가분했던 '1인분의 삶'이 아버지가 쓰러진 후 느닷없이 '2인분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던 부담감, 망망대해를 호랑이와 함께 건너는 듯한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보호자'라는 새 정체성으로 견뎌지던 책임감, 외롭고 끝없는 돌봄에 지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던 절박함, 간병을 맡겼던 요양보호사의 나이가 저자와 아버지의 나이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을 깨달았을 때의 미안함과 씁쓸함, 용기 내어 두드린 병원과 동주민센터 상담실에서 느꼈던 무력감, 사연을 팔아야 한다는 거부감에 복지단체 지원금 신청 대신 월세 보증금을 깼던 자존심...
만약 우리가 서류로 접했다면 “어릴 적 부모님 이혼 후 부친과 단 둘이 거주하는 20대 고졸 남성(취업준비생)으로, 일용직 노동자인 부친이 작업 중 쓰러져 긴급 수술하게 되었으나 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 정도로 대상화되어 요약될 사연이리라.
하지만 저자가 솔직담백하게 써내려간 기록은 그 안에 재난적 의료비의 파괴성, 보호자로서의 외로움과 보람, 돌봄을 위해 꿈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의 갈등, 중년 여성노동자의 희생에 의존하는 돌봄시장의 왜곡된 구조, 요양병원 간의 기막힌 커미션 행태, 내 집 거주보다 격리병동 입소가 더 안락한 환자들의 아이러니, 병원비 연대보증제와 부양의무자 제도의 불합리성, 아무리 애써봐도 자격미달로 못 받던 정부 생계지원금이 직장을 NGO로 옮긴 후 급여가 낮아지자 곧장 선정되던 당혹감, 궁극적으로는 시민으로서의 돌봄 책임은 무엇일까(돌봄의 사회화) 등 다양한 이슈와 고민을 가득 안고 생생히 걸어온다.
가치지향적인 삶을 꿈꾸는 데도 계급이 있는가?
저자는 본인의 곤궁한 처지와 아버지의 쓸쓸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고찰 후, 정치적 행동과 사회 참여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의 당사자로서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비영리단체 활동가가 되겠다던 바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흙수저의 세상물정 모르는 치기”로 비아냥 받는다. 꿋꿋이 입사한 지역단체에서는 비민주적인 조직문화, 후원자들의 선의를 마치 개인적 자원처럼 으스대는 대표의 오만함에 실망한다. 끝내 참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했을 땐 “너 같은 흙수저가 여길 나가면 받아줄 곳 있겠느냐”라는 믿기 힘든 모욕적 말을 듣기도 한다.
가난은 그저 돈이 부족한 상태로 그치지 않는다. 가정 내 인적·물적 자원의 취약, 서로 돕고 지지해 줄 사회적 자원의 결핍은 현재의 고난을 견디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물질적·심리적 여유를 박탈한다. 장기간의 시간 투자가 필요한 자격증 취득, 국가 고시, 채용 시험들은 당장의 생계 해결이 시급한 이들에게 가까운 선택지가 아니다. 달성하고픈 목표를 위해 지금을 참아내는 인내력도 곁에 부양해 줄 가족과 의지할 지인들이 없다면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
가난은 다른 삶, 보다 다양한 삶을 꿈꿀 자유로운 상상력도 앗아간다. 자연 가까이서 느리게 사는 생태적 삶, 지속가능한 지구와 건강한 몸을 위한 친환경 제품, 정당한 대가를 내고 거래하는 공정무역, 현지의 환경·문화·경제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책임여행, 경쟁적 교과 교육이 아닌 전인적 교육을 지향하는 대안학교, 마을이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 더 나은 대안적 삶, 자본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 삶을 실천하는 시민운동의 주류도 결국 인생의 선택지가 다양한 중산층이 대부분이지 않았던가.
삶의 여정에서 맞닥뜨리는 숱한 선택의 순간에 늘 ‘제일 가성비 좋은' 혹은 '가장 저렴한’ 선택지, 즉 경제적 기준 만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는 없는 걸까.
다시 한번, 삶의 다양화를 가능케 할 기본소득을 마음속에 품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