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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Sep 24. 2021

[어슬렁,남해]41.나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이별의 슬픔에는 백신도 면역도 없다

드디어 <6주 살러, 남해>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


살아오며 제법 숱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해왔고, 일상을 벗어난 관계가 주는 낭만이 얼마나 얄팍한지,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나면 얼마나 금세 잊혀버리는지 잘 알기에 쉬이 마음 주지 않으려 했다. 정을 많이 줄 수록 헤어짐이 힘들고, 후일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늘 컸으니까. 내가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꼭꼭 잠가두겠다고 다짐했다. 그저 조용하고 깨끗한 남해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이고 싶다고, 잘 요양한 후 건강하게 돌아가는 게 내 유일한 목표라고 스스로에게 강조했다.


허나 완벽한 실패였다. 지키지 못할 다짐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뒤돌아서는 그들의 등을 바라보다가, 예상치 못한 섭섭함에 기습당했다. 이렇게나 감정이 요동칠 줄은 미처 몰랐다. 스스로 큰소리친 게 무색해질 만큼 서운했다. 결국 함께 채운 시간의 무게는 정직했고, 함께 나눈 밥상의 정은 농밀했다. 이별의 슬픔 앞엔 백신도 면역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잘 살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뿐. 되돌아갈 네 일상이 부디 떠나오기 전보다 조금 더 가벼워졌기를, 멀어지는 등 뒤에서 마음으로 응원했다.


센터에 더 머물겠다며 남았던 이들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빈자리들이 더욱 도드라졌다. 서운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던 걸까. 새벽이 깊어질 때까지 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무슨 얘기를 그토록 길게 나눈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많이들 웃었고, 다들 꽤나 취했버렸다는 것뿐. 그렇게 어물쩍 하루를 넘겨버리고 싶었나보다.




이틀 뒤, 내가 탄 버스도 서울로 출발했다.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왕지벚꽃길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등을 곧추 세웠다. 한 번 걸었던 길은 용케도 몸이 먼저 알아채고 반응한다. 그때 보았던 '근'의 높은 등, 앞장선 '문'의 보랏빛 바지와 팔토시, 그리고 옆에서 된 숨을 함께 내쉬던 '성'. 갑자기 그 모든 장면이 마법처럼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이 얼마나 선명한 각인인가. 이제 정말로 떠나는구나 싶어 왈칵 실감이 났다.


도로 바닥의 방향 표식과 공중의 이정표가 재차 남해대교 방면을 가리킨다. 저 멀리 '빨강 문' 남해대교와 하룻밤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준 '남해각'이 반가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간직하고파 사진을 찍어두렸는데 핸드폰이 말을 듣지 않았다. 흔들리는 남해대교만 한 컷 희미하게 담겼다. 6주 전 첫날, 남해로 들어왔던 그 길을 반대로 거슬러 나가고 있다. 이제 남해가 등 뒤로 하염없이 멀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다정도 병인지라, 버스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시 정차한 대전 터미널에서 무언가에 홀린  토스트 가게로 달려갔다. 허겁지겁  분만에 토스트를 먹어치웠다. 학창 시절부터 급식 느리게 먹는 걸로 유명했던 나인데, 무언가를 이렇게 빨리 먹은  처음이다. 울음을 참느라 지쳤던 걸까, 마음이 리해 허기진 걸까. 뭐라도 안에 채워 넣지 않고서는  배길  같았다.     


버스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느새 해가 훌쩍 저물어 있다. 후덥지근한 서울의 밤공기가 낯설었다. 인공의 열을 잔뜩 머금은 도시, 해가 떨어지면 이내 선선해지는 시골과는 공기의 무게부터 사뭇 달랐다. 지하철에 타니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바라볼 풍경이 없으니, 자연의 고요가 없으니, 절로 눈과 귀가 핸드폰에 쏠리기라도 하는 걸까. 빈 좌석에 앉자 나도 옆 사람을 따라 자연스럽게 폰을 꺼내 들었다. 적응은, 아니 복귀란 이렇게나 순식간이다. 이제 정말로 돌아왔다. 나의 여름방학은 끝났다.


흔들리는 버스의 창 밖으로 남해대교가 보였다. 무언가 두고 온 듯한 허전한 기분에 몇 번이고 되돌아봤다.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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