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모순적인 제목이 주는 자연스런 이끌림이 있다. <죽어야 사는 여자>, <장미 없는 꽃집>처럼.
Convenience Store, 이미 그 명칭에서부터 ‘편함’이 강조된 '편의점’이 감히 불편하다니! 당연히 서가를 서성이는 독자들은 눈길이 한 번 더 갈 수 밖에 없다. 비록 어느 정도는 그 ‘불편'의 원인이 예측가능해 보이더라도 말이다.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가 영 불편하거나, 영 불편한 사람이 거기 있나 보지 뭐’
소설은 다소 전형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편의점을 찾는 온갖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해 나가며, “진열해 둔 물건 종류도 적고, 이벤트도 다른 곳에 비하면 없는 편이며, 곰 같은 덩치에 말을 더듬는 사내가 알바로 있는, 여러모로 불편한” 이곳이 어떤 매력으로 사람들을 자꾸 찾아오게 하는지 보여준다. 물론 그 매력의 알맹이가 신원미상의 곰탱이 같은 사내 ‘독고’여야 함은 지당하다.
소설은 때로 비약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서울역에서 3년 넘게 노숙을 하며 알콜성 치매 상태까지 다다랐던 주인공 ‘독고’가 편의점 사장님의 따뜻한 제안에 단번에 금주에 성공한다거나, 일 년간 편의점 근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다보니 지워진 기억을 몽땅 되찾게 된 점, 혹은 거듭된 실패와 좌절 후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게임중독이 되어버린 오여사네 아들이 엄마의 진심이 담긴 편지와 삼각김밥을 받고선 바로 마음의 문을 여는 장면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현실에서의 삶이 이처럼 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하는지 알기에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재밌다. 심지어 몇몇 장면들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속도감 있는 전개, 유머러스하고 재치 넘치는 문체, 무엇보다도 편의점을 오가는 사람들의 생동감 있는 풍경은 마치 우리네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디테일하고 현실적이다. 안팎으로 치이는 팍팍한 삶의 위로가 퇴근길 편의점의 참참참 메뉴인 외로운 가장, 힘들게 돈버는 아빠를 생각해서 늘 1+1 할인제품만 골라가는 딸들, 학창시절엔 속 한번 안 썩이는 모범생이더니 다 커서 뒤늦게 사춘기를 치르는 듯한 아들이 창피하고 답답한 엄마, 공부로 잘났던 누나에 대한 열등감을 돈으로 성공해 이겨보려 했지만 뜻대로 안풀려 조바심 나는 사고뭉치 아들, 자식 교육비를 마련하고자 타협해버린 비리로 불명예퇴직을 당했는데 막상 자식들도 멀어져버린 고독하고 처량한 노인. 주변 이웃 누군가의 사연을 꼭 닮아서 도무지 남 같지 않다.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약자들에 대한 시선도 따뜻하고 묵직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점차 무기력해져 가는 노숙인, 배가 고파 삼각김밥을 훔치는 가출 청소년, 늙어도 벌이를 쉴 수 없어 경비원이 되었지만 온갖 무시 속에서 폐기물을 분리하다보면 스스로도 폐기물이 된 것 같다던 경비 노동자를 조명한다. “우리 같이 돈도 힘도 없는 노인들은 발언권이 없는 거야. 성공이 왜 좋은 줄 아나? 발언권을 가지는 거라고” 라는 대사엔 가슴이 시리고 아린다.
아마도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인용된 밥 딜런 할머니의 입을 빌려 이 얘기를 하려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에, 우리 모두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그리고 독고의 입을 빌려 이렇게 덧붙인다.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니냐고.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처럼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라고.
그러고보니, 소설의 주요 장소가 되는 편의점과 서울역이 묘하게 닮았다. 365일 내내 24시간 동안 열려있는 공간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수시로 오가는 곳이지만, 천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잠시 들렀다 어디론가 떠나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서울역을 오가는 여행자들처럼 인생의 여정 위에서 만나고 스치는 우리들도,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대하듯 서로 친절해져 보면 어떨까. 혹시 너무 진부하고 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다”던 독고의 대사를 한 번 더 떠올려보련다. 누군가의 친절이, 또 다른 친절을 낳고,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 사람에게 신성이 있다면 그런 헤아림 속에 깃들어 있을 거라던 그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한번 믿어보고 싶어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