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으로 통제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거나, 1인 체제가 불러온 변화
2017년 대비, 2018년에 결과가 무려 5배나 뛴 통계가 있다. 바로 '시간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더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이, 대중 소비자들의 큰 흐름을 읽기 위해서는 현재 소비자들의 감정을 확인해야 한다. 오늘의 결핍이 내일의 니즈가 되기 때문이다. 2018년을 살았던 한국인의 결핍이 무엇인지 파악한다면 자연스럽게 2019년의 니즈를 예측할 수 있다. 2019년,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과연 어떤 변화의 흐름에 반응할까. 그들은 무엇에 지갑을 열까? 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하게 된 걸까?
'퇴사'가 트렌드인 요즘.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과감히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오지만, 글쎄, 그것이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 통계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일반적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창업한 사람보다 돈은 더 잘 번다.
'돈'과 '시간'이라는 자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높은 보상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의 비율이 24%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67%에 육박한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생겨도 여행이 가거나 레저를 즐기는 사람의 수는 줄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싶다는 응답이 많아졌다.
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늘어날까?
새로운 경험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라는 자원이 필요하다. 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산업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점차 줄고 있다. '응? 주변 사람들 보면 잘만 가던데?'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더 자주 더 여러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반면 일 년에 한 번도 여행을 가지 않는 인구가 점차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물리적인 여행 인구의 감소에 따라 여행사들이 줄파산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간은 있고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떠나는 대신, 누군가가 찍어둔 크로아티아 유투브 채널을 보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 랜선 집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 새로운 경험을 유투브로 대리 만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여행을 포함한 외부활동 참여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오프라인 활동이 줄고 있다. 년도 별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016년부터 집에서 다양한 욕구를 해결하고자 하는 트렌드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성이라는 본능을 타고나기 때문에 혼자 지내면 사회성 결핍이 발생한다. 이런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TV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시청했다. 예를 들어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 혼밥 집밥, 가상 연애 등을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을 보며 타인의 일상적인 사회활동을 구경하는 것이다.
2017년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혼자 잘 살아보겠다는 개념인 'YOLO(You Only Live Once'가 등장했다. 아무리 타인의 삶을 구경하더라도 혼자 보내는 시간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한 번 사는 인생 화끈하게 살자! 를 외치며 등장한 YOLO 트렌드는 '화끈하게' 사라졌다. 이런 발버둥이 오히려 내적 불안감을 가중시켰던 것일까.
2018년에 들어서 개인들은 '혼자'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SNS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화끈하게 지르는 YOLO가 아닌, 평범한 삶 속 1인 체제가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다가온 2019년에는? 혼자 사는 삶이 더욱 본격적으로 현실화되면서 관련 시장의 니즈가 폭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가정 간편식 시장은 2011년 추정치 1조 5천억 원의 시장이었지만 7년이 지난 2018년의 간편식 시장 추정 통계는 4조억 원 후반으로, 편의점 전체 매출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은 늘었는데 라면 매출은 적어졌다?
혼자 밥 먹는 게 일상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1인 간편식의 대명사인 라면이 덜 팔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했다. 라면도 매일 자주 먹다 보면 얼마나 질리기 마련이라, 상대적으로 고급진 음식을 먹으려는 경향이 도드라졌다. 이에 편승해 미역국 라면, 김을 넣은 라면 등 새로운 형태의 (프리미엄) 진화된 라면도 속속들이 등장했다.
이처럼 1인 체제가 확고하게 굳어지고, 혼자 살더라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관련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삶의 방식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도 변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큰 방 선호해서 상대적으로 거실이 작았고, 같은 평수라면 큰 방을 원한다는 응답이 무려 77%에 달했다. 반면, 2016년 통계에는 동일 질문에 대한 답이 30% 이상 하락했다. 활동은 거실에서 잠은 방에서 자고 싶다는 것. 하지만 2018년에는 이것이 다시 뒤집혔다. 큰 방은 선호한다는 응답이 50% 이상 재상승한 것이다. 방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났고, 방을 개인의 니즈에 맞게 재구성하고 있다.
조용한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택시를 타고 구구절절 길을 설명하거나, 화장품 가게에서 점원의 지나친 친절이 불편했던 적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바일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화장품 가게는 도움이 필요치 않은 고객들을 위해 다른 색의 장바구니를 제공한다. 불편한 소통 대신 편한 단절을 택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당신은 왜 회사를 다니는가? 2019년 현재, 많은 2030 젊은이는 여가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답한다. 1970년대에만 해도 보상이나 처벌이 행동을 강화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는 관념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대기업에서 많이 활용되는 KPI 평가 지표가 일례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개개인의 '자발적 동기'로 젊은이들은 의사결정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에게 재밌거나 의미 있는 일에 움직이고, 심지어는 회사의 수익 모델보다는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를 우선시한다. 사실 전통적인 회사는 직원의 동기를 관리해온 경험과 역사가 없어 이러한 변화에 더더욱 원활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전통에 반론을 제기하고 직원을 어른으로 대하는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넷플릭스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휴가 기간 제한도 없고, 출장비용 제한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국내에도 유수한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극히 소수다. 그곳들의 힙한 근무환경과 복지, 성장세는 다양한 채널로 회자되지만 대한민국 전체 통계적 측면에서 트렌드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
변화의 한 복판에서 서 있는 우리. 그리고 2019년. 대중의 지갑을 여는 트렌드는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일까? 부정적인 경제 전망의 홍수 속에 나, 그리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잠시 한 호흡 고민해볼 순간이다.
※ 해당 글은 '손에 잡히는 경제'와 '2019 대한민국 트렌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