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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6. 2019

와인에게 사망진단서를 발행하다

와인의 결함 - Wine Fault


우리집에 30년도 더 된 와인있다? 좋은거지, 비싸겠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묻는 너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은데. '아마 못 마실 상태지 않을까...' 라는 말은 일단 삼켜둔다. 거실장에 위풍당당히 전시되어 있다는 그 와인에겐 사망진단을 내려야 할 터다. 많은 사람들은 '와인은 오래될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

오랫동안 숙성되면서 연륜과 기품이 풍부해지는 와인도 있지만, 보관 가능 기간 자체가 짧거나 보관 과정에서 변질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 와인의 결함(Wine Faults)라고 하는데,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질까?




와인의 화상 - 열화 현상

몇년 전, 한 여름날 캐리어에 와인 세 병을 넣고 제주도로 떠났다. (팁, 국내선에는 기내반입 가능한 액체 용량 제한이 없음) 이호태우 해변에 캐리어를 테이블 삼아 눕혀놓고, 바다 풍경을 안주 삼아 와인을 따라 마셨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는 30도를 훌쩍 넘긴 더운 날씨였다. 와인을 반 병쯤 비우고, 저녁엔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그때 낮에 마시던 남은 와인을 곁들였는데 글쎄... 와인에서 백세주 맛이 났다. 미각이 굉장히 둔감한 나라도 이건 뭔가 잘못되었음을 확실히 알겠더라. 와인이 화상을 입었네.

이호태우 해변에서 와인 한잔

온도 때문에 와인이 변질됨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와인이 끓었다. 와인이 익었다. 급격히 산화되었다.' 와인 종류에 따라 적합한 보관온도는 상이하지만 대에에략적으로 10-15°C 사이면 안정적이다. 온도는 어떻게 와인을 괴롭히나? 


1) 너무 높은 온도 - 와인이 노출되면 빨리 숙성된다. 나이를 천천히 먹어야하는데 급격한 노화가 와서 할아버지가 되버리는 느낌이랄까? 40°C가 넘어가면 와인이 팽창하면서 코르크를 밀고 새어나오고, 공기가 들어간다. 

2) 온도가 급격히 변하는 환경 - 와인을 막는 코르크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산소가 투과되는데, 온도가 변하면 병 내외부의 압력차이가 발생한다. 이 압력차로 인해 외부의 공기가 내부로 '펌핑'되어 빠르게 산화된다. 즉, 5°C에서 20°C를 왔다갔다 하는 것보다, 차라리 25°C쯤의 일정한 온도에서 보관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


와인도 자외선은 싫다고 - 빛 충격

이렇게 보관하면 절대 안된다.

우리가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썬크림을 바르듯, 와인도 보호해주어야 한다. 썬크림을 발라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빛이 없는 곳에 보관하면 된다. 어두운 색의 병을 쓰는 것도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레드와인은 화이트와인보다 빛 충격을 덜 받는데, 이는 와인에 포함되어 있는 페놀 성분이 자외선으로부터 와인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샴페인과 같이 섬세한 와인일수록 더 자외선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이 경우 판지나 젖은 털 같은 냄새가 나기도 한다.


급격한 노화 - 산화

와인이 공기와 접촉하면 빠른 속도로 산화가 일어난다. 코르크가 제 역할을 잘 한다면 공기가 거의 유입되지 않는다. 와인 병을 세워둘 경우, 코르크와 액체 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코르크가 건조해지면서 탄성을 잃고 밀폐력이 줄어든다. 이러면 산소가 병 속으로 들어가기 쉬운 상태가 되며 산화가 일어날 수 있으니, 가능하면 병을 눕혀두자! 와인의 안토시아닌, 카테킨, 에피카테킨, 그리고 다른 페놀 성분들은 쉽게 산화되어 이 과정에서 색, 향, 맛이 변질된다. 산화되면 레드 오아인은 물론 화이트 와인도 갈색을 띠게 된다. 

에탄올의 산화 과정



곰팡이가 폈나? - 코르크 오염

코르크 오염이란 주로 2,4,6-트리클로아니졸(Trichloroanisole; TCA)라는 물질 때문에 발생한다. 염소로 표백 된 코르크에서 생장하는 곰팡이의 신진대사에 의해 TCA가 생성되기도 하는데, 이때 토양, 곰팡이 등 퀴퀴한 냄새가 난다. 이런 상태의 와인을 ‘코르키(Corky)’ 되었다고 표현하며, 가장 대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와인 결함 중 하나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부쇼네(Bouchonne)라고 하는데, 병마개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부숑(Bouchon)에서 유래되었다. 

(이 뿐 아니라 guaiacol, geosmin, 2-methylisoborneol, 1-octen-3-ol, 1-octen-3-one, 2,3,4,6-tetrachloroanisole, pentachloroanisole, 2,4,6-tribromoanisole 또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 

2,4,6-Trichloroanisole(TCA)




와인 결함이 불러온 참사

와인에 결함이 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이상한 냄새가 난다. 너무 익은 과일이나 볏짚, 과일 썩는 냄새, 혹은 곰팡이 향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색이 요상하다. 시기상조로 산화된 화이트 와인은 노랑이나 갈색을 띈다. 여과 과정에서 구리나 납, 혹은 단백질이 적절히 제거되지 않았을 때도 와인의 색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파클링 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탄산 가스가 있는 것은 병입 후 원치 않는 재발효나 젖산 발효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맛이 이상하기도 하다. 아세트산에 의해서 탄듯 하거나 산성의 맛이 나서 와인의 맛이 불균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참사를 막으려면...

와인 셀러

와인 애호가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와인 셀러를 하나 장만할 수도 있을테다. 하지만 쉽지 않은고로...어둡고 온도변화가 적은 곳을 찾자. 최적의 공간은 바로 장농 속 이불 사이! 적절하고 균일한 온도와 습도를 자랑한다. 가정용 냉장고는 습도가 부족해서 적절한 곳은 아니다. 


마무리하며

오래된 와인이 거실장에 진열되어 있나? 그 와인은 오랜 시간동안 직사광선과 자외선의 공격, 여름-겨울의 온도 변화로 화상을 입고, 산화되었을테다. 더 보관한다고 비싸지거나 좋아지지 않으니 얼른 꺼내길 추천한다. (아빠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더라도) 결함이 발생한 와인을 마신다고 해도 죽는건 아니니 한 모금 마셔보자. 변질된 와인을 눈과 코와 입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1.《M. Baldy "The University Wine Course" Third Edition pgs 37-39, 69-80, 134-140 The Wine Appreciation Guild 2009 ISBN 0-932664-69-5》.

2.《D. Bird "Understanding Wine Technology" pg 31-82, 155-184, 202-222 DBQA Publishing 2005 ISBN 1-891267-91-4》.

3.《duToit, W.J. (2005). Oxygen in winemaking: Part I. WineLand. URL accessed on 2 April 2006.》.

4.《Kennel, Florence (14/12/05). Bordeaux boffin solves geosmin conundrum. Decanter.com. URL accessed on 2 April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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