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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Aug 12. 2019

할머니의 식탁, 나의 와인

그리운 이름

"저녁에 뭐 먹고 싶니?"

매일 오후 무렵이면 숙제하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시던 할머니의 물음이었다. 저녁엔 또 뭘 준비해야하나 늘 고민이셨을 우리 할머니.


그때 우리가 뭐라고 매일 답을 했었는진 기억이 나지않지만 한번도 확실하게 뭐가 먹고 싶다고 답해드렸던 적은 없었던것 같다. 아마 이런 질문에 전혀 도움되지않는 단어 '아무거나' 내지는 '몰르겠는데' 로 할머니 마음에 답답함을 더했던가 내지는 '할머니가 해주는건 다 맛있어~' 라는 애교 한 스푼 얹은 답변으로 할머니를 미소짓게 해드리거나 했었을것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춘천이 고향이셨다.

일찍이 혼자되셔서도 할아버지가 하시던 큰 농사를 한동안은 사람두고 다 관리하셨었다지만, 오래전 한국의 정치사회가 재건과 혼돈의 시기였던 그 시기에, 적지않던 땅을 이리저리 다 뺏기셨고, 그 이후에는 장사도 하시며 변혁기의 어려움을 혼자 오롯이 살아내신 분이셨다.  


쉽지않았을 그 시대 속에서 어쨌든 우리 할머닌 그렇게 열심히 살아 딸들을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하셨는데,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할머니의 작은 딸, 우리 엄마의 육아를 돕기위해 다 정리하시고 우리한테 오시게 되셨다. 그당시 우리집엔 엄마가 출근하면 살림을 맡아 하던 어떤 언니가 있었지만, 혼자 고향에 사는 엄마를 염려한 딸의 마음도 있었을것 같고 아이들 양육을 도움받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을것 같고. 어쨌든 그렇게 할머니는 작은 딸 집에 오셨고 우리와 같이 살게 되셨다.


할머니는 참 넉넉한 분이셨다.


우리 엄마가 학교 다니던 어린아이 시절, 할머니는 시골에서 아직도 큰 농사를 하시던 때라 평범한 시골집이었긴해도 다들 어려웠다는 그 시절에 집에 먹는게 떨어져본 적은 없었다 하는데, 저녁이면, 부엌 아궁이에서 딸들 먹일 저녁을 다 지으신 할머니는 마을을 잠시 돌아보며 어느 집 부엌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가 살펴 보러 나가시곤 하셨다한다. 연기가 안 피어오른 집은 혹시나 굶고 있을까하여 작은 딸 손에 뭐라도 먹을걸 싸서 갖다 드리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실 요량으로.


또한, 내 어릴적 기억속 할머니는, 집에 어느 누가 와도, 우체부 아저씨이건 뭐 고치러 온 분이시건,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선 모든 분들을 한번도 빈손으로 보내시는걸 본 적이 없다. 그게 물이건 쥬스건 과자건 과일이건 떡이건. 때로는 그게 식사때면 간단한 식사까지도.


그렇게 정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는 음식 솜씨도 정말 좋으셔서 철마다 다른 맛깔난 김치로 우리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셨다. 겨울 한기가 채 가시기 전엔 항상 하루나(이게 요즘 말하는 봄동이 아닐까..)가 나왔다고 푸릇푸릇 입맛도는 초봄 김치를 담아주셨고, 봄이 한창일땐 각종 겉절이를 먹게 해주셨고, 햇감자가 나오고 옥수수가 나오기 시작할땐 항상 칼칼하면서도 시원하고 아삭한 열무김치와 같이 먹을 수 있게 해주셨고, 나박김치에 오이 소박이에 각종 장아찌들에 시들해질 무렵이면 맛있는 김장김치를 맛 볼수있게 해주셨다. 겨울에 할머니 심부름으로 땅에 묻은 김장독에서 살짝 얼은 얼음을 깨며 떠온 동치미는 그 무우도 삭힌 고추도 맛있었지만 모든것이 다 어우러진 그 뿌연 색깔의 시원한 국물은 지금도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맛이다.


내 기억속 어린 시절 우리의 여름 밥상엔 할머니가 항상 우리 옆에 계신다.

그 여름 밥상엔, 하얀밥 위에 완두콩이 예쁘게 폭폭 박혀져있고, 이런 저런 맛난 반찬들과 함께 작은 물그릇이 하나씩 있다. 우리가 김치를 매워하던 어린이었던 우릴 위해 할머닌 항상 우리 밥상에 작은 물그릇을 하나 놓아주셨고 그러면 우리는  열무김치를 하나씩 그릇에 씻어서 먹곤 했다. 좀 더 커서 그 김치씻는 물그릇이 필요없어질 때까지.


할머니의 손길이 담긴 그 여름 밥상엔 항상 장아찌류가 있었다. 이걸 장아찌라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 왠지 장아찌류같이 여름이면 해주시던, 성인이 되고 특히 미국에 오게된 후에 여름이 되면 더욱 그리운 반찬인, 할머니의 늙은 오이 무침이다. 노각이라고도 부르는것 같은데 할머닌 늙은 오이라고 하셨었고 오이가 늙어지면 그렇게 된다고 하셔서, 도시에서 초록색 오이만 맛보았던 나는, 좀 그 못생기고 누르스름하며 기다란 호박같이 생긴 그 늙은 오이가 참 신기했었다. 그걸 갈라 씨를 긁어내고 총총총 썰으시면 꼭 알파벳 C 자같이 생긴 얄폿한 오이가 됬고, 고추가루 들어갔던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주신 그 늙은 오이 무침은, 여름 한낮, 물을 말은 밥숟가락위에 하나씩 얹어 먹으면 너무나 시원하고 아삭아삭하면서도 왠지 쫄깃한 식감의 반찬이 되주었었다. 여기서 노각은 못 구하고 그 맛이 생각은 나고 해서 참외로도 수박껍질로도 해보았지만 할머니가 해주셨던 그 맛은 아니어서 아직도 여름만 되면 그 반찬이 참으로 그립다.   


춘천이 고향이셨던 할머니는 감자를 참 좋아하셨었다. 아이들을 기르는 엄마아빠들이 식재료나 음식을 대하는 모습이 이래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이유는, 할머니가 햇감자가 나온걸 보고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시던 모습, 드시면서 아~ 맛있다고 감탄하시던 모습들을 보며 나도 왠지 그 음식이 더 기대됬고 맛있게 느껴졌고 감자는 햇감자가 맛있는거구나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던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자를 좋아하셨던 할머니는 우리에게, 알감자로 짭짤하게 조림을 해서 밥반찬으로도 먹게해주셨고 일일이 강판에 갈아 식감좋은 감자전도 해주곤 하셨는데,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건 우습게도 너무나 간단한 음식이지만 여름마다 햇감자가 나왔을때 간식으로 먹으라고 포근포근하게 쪄주신 삶은 감자다. 껍질이 툭툭 갈라질 정도로 맛있게 쪄진 감자를 옆에 앉으셔서 일일이 식혀가며 껍질을 까주시기도 하셨고, 때론 감자를 으깨서 약간의 소금과 좀 더 많은 양의 설탕을 넣고 잘 섞어 달콤하고 포실포실해진 감자를 숟가락으로 떠먹게도 해주셨다.


아직도 우린 가끔 그때 할머니가 해주신 그 으깬 감자맛 기억하냐고 서로 물어보곤 한다. 아주 오래전 일이고 그 이후 우린 수많은 맛나고 비싼 음식들을 먹어봤는데도 아직도 할머니가 해주신 그 평범한 삶은 감자 맛이 그립다. 그 여름 간식상의 추억에도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 옆에 계신다.


우리의 겨울 식탁에도 할머니는 계신다.

잘 익어가는 김장김치를 무한정 돋보이게 해준 할머니의 찌개, 막장으로 끓인 막장찌개. 강원도 사람인 우리 할머니가 해주신 찌개였던 걸 보면 강원도 음식인듯 한데 할머니는 된장 고추장 담그실때마다 된장보다 투박한 식감을 가진 이 '막장' 을 엄마와 같이 항상 담그셨었다. 찌개에 들어갔던 재료는 된장찌개랑 크게 다르진 않았던 기억인데 그 장맛이 된장보다 좀더 특별하고 훨씬 깊은 맛이 나던 아주 맛깔스러운 찌개였다. 지금도 누가 맛있는 막장을 담그는 분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사오고 싶어질 정도로 그리운 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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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먹고싶어 하면서도 매워하는 손주들을 위해 밥상에 꼭 작은 물그릇을 놓아주신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손주딸 애교를 드린 적도 없고, 더운 여름에 뜨거운 불앞에서 감자를 쪄주시고 먹는 동안 지켜봐주시고, 겨울엔 그렇게 맛있는 막장찌개를 끓여주셨어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며 한껏 웃게해드린 적도 기억에 없다. 너무나 당연한 식사시간이라고 생각했었기에 특별히 여겨보지도 않았고 추억의 장면들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던 이 식탁 풍경이, 내가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살림을 하며 그제야 새삼 한장면 한장면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받는 시간이었었나를 생각하게 됬었다.


누군가를 위한 식탁을 준비한다는 것은 단지 그냥 밥을 해주는게 아니라 이 음식을 먹을 사람을 생각하는 사랑의 작업이었음을, 할머니는 밥을 준비해주신게 아니라 내 평생 추억으로 간직할 큰 사랑을 먹여주신 것이었음을, 어리석게도 이 땅에 할머니가 더이상 계시지않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씩 깨닫게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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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사랑으로 우리 식탁을 준비해주셨듯이 나도 자연스럽게 나의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맛있고 정성가득한 식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어렸던 아이들도 이젠 다 성장하여 각자의 길을 가고 있으며, 난 지금 와인 전문가의 길을 가고 있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는, 시골 어느분의 장독 가득한 뒷마당 장독대 풍경 사진을 보게되면 그 브라운색 장독 안에 들어있을 각종 진기한 장과 담금 재료들이 궁금해 가슴이 뛰고, 농사지은 분들이 직접 자기가 농사지은 걸 들고 나와 파는 farmer's market 에서 구입한 식재료들의 진정한 흙맛에 감탄이 나고, 음식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 거기에 정성이 담긴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들을 좋아하며, 각 나라들을 여행하고 새로운 음식들을 맛보며 왜 그런 음식들이 치즈들이 와인들이 그곳에 생겨나게 됬는지를 알아가고 분석해보는 것이 너무 가슴뛰고 행복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정성어린 맛깔스런 음식들만을 대접받으며 자란 내가, 이제는 각기 다른 향과 맛을 지닌 와인을 음미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할머니가 나를 기르시며 내게 주신 능력일것이며 내 인생에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에게 얻어먹기만했지 한번도 음식을 만들어 드린적 없이 할머니는 어느날 우리곁을 떠나가셨고 어느날 문득 정신 차려보니 할머니 해주신 모든게 너무 감사하고 사무치게 그립다.


할머니를 하루만 아니 몇시간만이라도 앉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된다면, 할머니가 우리에게 매일 오후면 늘 하셨던 물음을 내가 한번이라도 여쭤봐 드리고싶다.


"할머니, 저녁에 뭐 드시고 싶으세요?"


할머니가 아무거나 라고 우리가 했듯 무심히라도 한마디 해주시면, 난 할머니를 위해 정성 가득한 식탁을 마련할 것이다. 할머니의 식탁에서 받았던 그 사랑을 가득 담고 거기에 나의 와인을 더해서. 맛있게 한끼를 같이 나눈 후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한번도 해드린적 없는 이 말을 꼭 드릴 것이다. 시간이 되어 떠나시기전에.


할머니는 내 인생과 영혼이 밝고 건강할 수 있었던 축복이셨었다고.




작가 Jamie 는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스트로 와인 스페셜리스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WSET (Wine & Spirit Educational Trust) Advance Certified

이탤리 와인 전문가 IWP

미국 와인 전문가 AWS


미국 플로리스트 협회(AIFD) 멤버 & 디자인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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