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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Oct 02. 2015

1976년 파리, 와인 테이스팅

나파 밸리 돌아보기

와인 애호가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거나 많이 들어봤을 사건이지만 이 매거진에 한 번쯤은 포스팅이 되어야 할 것 같아 시작해봅니다.


정식 명칭은 Paris wine tasting of 1976 혹은 파리의 심판, Judgment of Paris, 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크게는 프랑스 와인에만 국한되어있던 fine wine 생산 및 판매시장을 지금의 신세계 와인에게까지 넓혀준 사건이며, 작게는 오늘날의 화려한 나파를 있게 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와인 역사에 큰 의미를 지닌 중요한 사건입니다.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이 사건을 소재로 "Bottle Shock" 란 영화도 만들어졌었고요.


여기서 잠깐 생각난 김에, 원래 의미의 bottle shock 란,


첫째는, 발효와 숙성이 끝난 와인액이 병에 담기는 bottling 과정에서 들어간 공기 혹은 와인맛에  안정성을 주기 위해 와인 마지막 공정에서 와인에 첨가되는 황산 sulfur  dioxide 으로 인해, 본래 와인의 향과 맛이 무향/무미하게 변하거나 원래의 향과 다른 향이 되거나 아니면 안 좋은 향이나 맛이 나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와인 운송과정에서 병 안에 가라앉아있던 작은 미세한 침전물들이 모두 흔들려 떠오르면서 와인색을 탁하게 만들거나 향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이 경우는 특히 멀미 증상 motion sickness/car sickness 에 빗대어 bottle sickness 라고도 말합니다.  


원인이 무엇이었건 이 bottle shock 에서 오는 결과는 일시적인 것으로,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와인에 따라 달라서,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수개월도 걸리며 타닌이 많이든 와인일수록 회복되는데 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꼭 이 때문은 아니더라도, 항상 와인을 구입해오면 일정한 보관 온도가 유지되며 흔들림이 없는 안정적인 장소에 항상 보관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의미의 bottle shock 가 아닌 culture shock 라는 말과 같은 비슷한 쓰임새로 그야말로 '와인병이 준 충격' 이었던 Paris  wine tasting 에 대한 스토리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Judgment of Paris 가 어떤 사건이었는지 살펴볼까요.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당시 파리에서 와인 비즈니스를 하던 Steven Spurrier 라는 영국인 와인상이 미국 건국 200주년을 맞아 그리고 물론 본인의 비즈니스 마케팅도 겸해서, 미국 와인들과 프랑스 보르도 와인들의 우열을 가려보자는 취지로 파리에서 blind wine tasting 기획하게 됩니다.


지금도 프랑스 와인이 전 세계 와인산업에 교과서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걸 감안한다면, 지금부터 40여 년 전인 당시에는 더더구나, 신생 미국 와인과 거인 보르도 와인과의 비교라는게 참으로 결과가 뻔하게 예상됬을 일이었을것 같습니다. 주최 측이 많은 미디어들을 초대했는데도 TIME 매거진의 George Taber 라는 기자만 참가했었다는 걸 보면 미디어들에게도 얼마나 뉴스거리가 될 수 없다고 판단된 '당연한' 행사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겐 우승이 '당연한' 결과로 예상됬을 것이고 미국 나파 와인들 또한 패배가 '당연한' 예상이었을지라도, 나파 와인들에게는 파리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소개되어지는 것만으로도 마케팅 측면에서 나쁠게 없다고 생각되어 시작이 되었을것이구요. 그런 이날의 행사가 전 세계 와인시장에 그리고 와인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사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날을 위해, 9명의 프랑스인 와인 전문가들과 주최측이라 할 수 있는 Steven Spurrier 그리고 그의 파리 와인스쿨을 관할했던 Patricia 라는 미국인, 이렇게 11명이 judge 로 초빙되어졌는데, 점수는 오로지 9명의 프랑스  judge 들의 점수만 집계되었고, 테이스팅 와인으로 Red 는 네 종류의 보르도 와인과 여섯 종류의 나파 캐버네이로, white 은 프랑스 샤도네이 유명 산지 부르고뉴 와인 네 종류와 여섯 종류의 나파 샤도네이 와인이 테이스팅 되었습니다.


보르도 Red 샤토:

보르도 1급 샤토 Premier Grand Crus (First Growths) 와이너리들 중에서

포이약 Pauillac 지역의 Château Mouton-Rothschild

페싹 Pessac 지역의 Château Haut-Brion

그리고

보르도 2급 샤토 Deuxièmes Grand Crus (Second Growths) 중에서

쌍줄리앙 Saint-Julien 지역의 Château Leoville Las Cases

쌍테스페 Saint-Estèphe 지역의 Château Montrose


캘리포니아 나파 Red 와이너리:

Stag's Leap Wine Cellars

Ridge Vineyards

Heitz Wine Cellars

Clos Du Val Winery

Mayacamas Vineyards

Freemark Abbey Winery



프랑스 부르고뉴 Bourgogne (영: Burgundy) 북부에 해당하는 Côte de Beaune 산지의 White:

특급 포도원 Grand Cru 들 중에서

Batard-Montrachet 포도밭 Ramonet-Prudhon 의 와인

Puligny-Montrachet 포도밭 Domaine Leflaive 와인

1급 Premier Cru 포도원 중에서,

Meursault Charmes 포도밭 Roulot 의 와인

Beaune Clos des Mouches 포도밭 Joseph Drouhin 와인


캘리포니아 나파 White 와이너리:

Chateau Montelena

Chalone Vineyard

Spring Mountain Vineyard

Freemark Abbey Winery

Veedercrest Vineyards

David Bruce Winery



오전엔 white tasting을 오후엔 red wine tasting 이 진행되었고,


테이스팅 결과는? Red 도 White 도 모두 나파 밸리 와이너리들이 생산한 와인들이 1위에 선정.


White 결과:

1위   Chateau Montelena, 미국 캘리포니아

2위   Meursault Charmes Roulot, 프랑스 부르고뉴

3위   Chalone Vineyard, 미국 캘리포니아


Red 결과:

1위   Stag's Leap Wine Cellars, 미국 캘리포니아

2위   Château Mouton-Rothschild, 프랑스 보르도

3위   Château Montrose, 프랑스 보르도


당시 상황을 기술했던 기자에 의하면 처음 샤도네이를 테이스팅 하면서 judge 들간에 어수선함과 술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쉽고 편안하게 진행될 '당연한' 테이스팅일 줄 알았기에 처음에 좀 릴랙스 되어 judge 들간에 대화도 하며 시작하느라 진지한 모드 없이 좀 어수선하게 시작됬는데, 점점 테이스팅 할수록 당연히 차이가 확연할 줄 알았던 캘리포니아 샤도네이가 부르고뉴 샤도네이와 큰 차이가 없자, 살짝 당황된 judge 들이 와인 점수를 매기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느라 술렁임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어진 캐버네이 쏘비뇽 red 테이스팅에서는 judge 들이 프랑스 산을 구별해내기 위해 더 애를 쓰는 듯 테이스팅이 엄청 진지하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나파 캐버네이는 특유의 향이 있어 보르도 산을 가려내는 건 그런 전문가들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듯합니다만..


어쨌든 1위는 둘 다 캘리포니아 와인에게 돌아갔지만, Red 1위와 2위의 차이는 0.05 점 차이었던걸 생각하면 드라마틱해도 이렇게 드라마틱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red 던 white 이던 어느 한 부분에서만 1위를 했었다면 혹은 0.01 의 차이로 나파 와인들이 아쉽게 2위를 얻었더라면 이 테이스팅 사건이 이렇게 주목받을 수 있었을까요? 또한 다른 어느 미디어들이 아무도 참석을 안 했는데 그 자리에 TIME 매거진 기자도 없었다면 그래서 이 일이 TIME 지에 대서특필 되지 않았다면, 세계 어느 나라가 이 테이스팅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만큼 많이 알 수 있었을까요? 행사장이 파리였는데 말하자면 나파 와인들에겐 적군진영이었으니 말이에요.  


1800년대에 시작된 미국 와인산업은,

초기 유럽 이민자들의 시도로 시작되어 약간의 성장을 하는가 싶다가 미국에 금주령이 1920년대에 시작되면서 포도 산지들이 황폐화되었고, 한참의 회복기를 지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파 밸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UC Davis 와 연결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진보적인 재배 기술과 와인 메이킹 기술로 품질 도약의 기틀이 마련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높디높은 유럽 와인 특히 프랑스 와인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넘지 못해 세계시장을 장악할 순 없던 시기였는데, 이 Paris wine tasting of 1976 사건이 미국 와인 산업 발전에 얼마나 큰 도화선이 되어 주었을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리하여 이 테이스팅 사건은 결과적으로 파리뿐 아니라 전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 와인 관계자들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신선한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었고, 그렇게 나파 와인은 세계 고급 와인계에 당당하고도 화려하게 입성을 할 수 있었으며 단기간에 와인시장에서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마련되었고, 나아가서는 미국 칠레 호주 등의 new world 와인들이 주목받는 강한 첫 발자국을 디딜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Judgement of Paris 그 후


그로부터 20 개월 뒤 1978 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와인 테이스팅이 개최돼 1976년 파리 와인 테이스팅에 참여했던 같은 와이너리들이 똑같은 빈티지 와인을 가지고 다시 테이스팅을 했으나, 이번엔 Red 와 White 부문 1,2,3 위가 모두 나파 와이너리들에게 돌아갔고,


파리 와인 테이스팅 1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French Culinary Institute 에서 개최된 wine tasting 에서도

또 다시 같은 와이너리들이 같은 빈티지 와인을 가지고 참여했는데, 이때 white 은 테이스팅 됐던 빈티지들이 시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년수를 지난 관계로 제외하고 red 만 테이스팅 경합을 했는데 나파 와인들이 1,2 위를, 보르도 와인들이 3,4,5 위를 기록했습니다.


그 후 20년 뒤, 1976 년 테이스팅이 열렸던 해로부터는 30년 뒤인 2006년 5월 24일, 캘리포니아 나파와 영국 런던에서 동시에 파리 테이스팅 30주년, Judgment of Paris 30th Anniversary, 를 기념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역시 red wine 만)이 다시 개최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캐버네이가 그간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해도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해가 갈수록  더욱 맛이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운 향을 지니는 보르도 와인의 품질을 캘리포니아 캐버네이가 따라잡진 못할 것이다라고 많은 이들이 예견했지만, 오리지널 테이스팅에 참여했던 10 개 와이너리가 오리지널 테이스팅에서 시음됐던 같은 빈티지(1969년 산-1973년 산) 와인으로 다시 테이스팅된 결과, 이번에는 Top 5 까지 모두 나파 와인들이 선정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캘리포니아 캐버네이도 보르도 와인처럼 aging 이 잘 된다는 점까지 와인계에 알리게 되며, 와인의 정석으로 여겨졌던 진리에 다시 한번 충격을 주게 되었다고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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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와인 관련 클래스에서 그날의 강사이자 나파에서 거의 반평생을 종사해왔다는 와인 관계자에게, 정말 Paris wine tasting 이 나파 발전에 영향을  주었었는지?라고 누군가가 질문을 했더니, 이미 칠십 대가 훌쩍 넘어보이던 그 강사분이 정말로 그랬다고 강한 긍정을 표했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분 말에 의하면,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파는 그냥 포도밭 있고 와이너리들 좀 있고 그랬다 한다면, 파리 사건 이후로 지금 너희들이 볼 수 있는 이런 화려한 와이너리들과 이런 기계화된 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고급 와인들이 나파에서 많이 생겨나게 됐다고 말하며 회상 내지는 감사함 등등의 표정이 얼굴에 스치는걸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역사 속의 일을 그 시대 이곳 나파 산지에서 일하고 있었던 사람의 말을 통해 직접 들으니 그 영향력이 어땠을지 더욱 다가왔었던 기억이나네요. 와인계에 큰 획을 그은 저런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와인을 마실 수 있게 된 건 아닐는지.


당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나파 와이너리들은 당연히 그 사건을 지금까지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합니다.  Red에서 보르도 1급 샤토 무통 로쉴드를 드라마틱하게 제치고 1위에 선정되었던 Stag's Leap Wine Cellars 와이너리의 웹사이트 한 부분을 가져와 봤습니다. 파리 와인 테이스팅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등했었으니 두고두고 써먹어야죠 ㅎㅎ


이 Stag's Leap Wine Cellars 와이너리를 비롯한 몇 군데 와이너리는 지금까지도 아주 우수한 red 나  white 을 생산하고있으 그 명성이 부끄럽지않지만, 그당시 같이 참가했던 와이너리중 몇몇은 오너가 와인메이커가 바뀌면서 좀 혹독하게 말하면 실망스러운 와인을 생산하며 유명세만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는 와이너리들도 있습니다..


어찌됬건,

지금의 미국 와인, 나파 밸리를 있게 해 준 역사적 사건,

와인 애호가라면 상식쯤으로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포스팅해봤습니다.


프랑스 와인 외에도 점점 세계 다른 나라 와인에도 눈을 돌려 보세요. 무궁무진한 와인 세계가 바로 우리 눈앞에 우리 손이 닿는 곳에 있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잖아요.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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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amie:

플라워샾 오너 in California

미국 플로리스트 협회(AIFD) member,

AIFD Certified floral design judge/evaluator,

&

Wine speci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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