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손을 꼭 잡고 키스하는 20대 커플들의 순수한 달달함

20대 커플의 풋풋한 키스를 멀찍이서 지켜보게 되면 은근히 나도 달콤하다

by 최류

사실 나는 예비 건물주조차도 아니다. 시어머니께서 내가 관리하는 성남시 신흥동의 건물들을 내 명의로 주실지 아닐지 조차 전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열심히 살아온 30여년의 일생을 정말 좋게 평가해주셔서 결혼하자마자 나에게 10억에 가까운 현금을 증여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로빈후드와 코인베이스, 금현물에 나눠서 투자해 50%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중이었다.


자식 3명이 모두 가지지 못한 돈 관리 능력, 돈을 불리는 능력의 2020년대 진화된 버전으로 유일한 며느리에게서 본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내심 기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현금 10억을 증여받은 것으로도 정말 충분했다. 이미 그 돈으로 내 노후는 안정적으로 보장이 되었기 때문이고, 부유하고 이기적인 친정으로부터는 돈 한 푼 받을 가능성이 없는 코리안 장녀 였던 나로서는 내 인생목표 중 하나인 노후대비 퀘스트가 완료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은 정말 당연히 할 수 있었다. 나의 가장 중대했던 인생목표를 한 방에 해결해주신 시어머니는 나로서는 당연히 떠받들고 살아야 할 감사하고 감사한 존재였다. 아이는 전처 사이에서 낳은 딸 하나로 충분하다는 우리 남편 덕분에, 아이 없이 풍족하고 여유롭게 사는 우리 부부로서는 언제든지 시어머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70대 중반을 넘어서는 그분께서는 올해 들어 뇌수술을 2번이나 받으셨음에도 아직까지 우리에게 의지하지 않으셨다.


70대 중반을 넘어서자 시어머니의 많은 재산을 노리는 자들이 주변에서 나타났다. 첫 주자는 그녀의 남동생 부부와 시어머니 전담 변호사였고, 두 번째 주자는 시어머니의 막내 아들, 바로 도련님이었다. 모두가 감옥에 갔고 생각보다 큰 형량을 선고 받았다. 이제 세상에 남은 것은 첫째 아들인 우리 남편과 며느리인 나, 둘째인 아가씨와 그녀의 시원찮은 남편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3명은 돈 관리에 관해서는 전혀 믿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시어머니께서는 결국 나에게 또다른 시험을 내리셨다. 바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의 원룸 건물 몇 채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신흥동의 유명한 상업지구에는 허름하고 오래된 원룸 건물들이 제법 많았는데, 한 때 강남 다음으로 유명한 나이트가 바로 옆에 자리잡았던 만큼 옛날에는 그 나이트에서 일하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숙식을 했을만한 곳이었다. 지금은 보증금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돈이 없는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주로 숙식했다. 처음에 시어머니께서 그곳을 내게 관리하도록 맡긴다고 하셨을 때 나는 더럭 겁을 먹었다. 월세가 쌀 수록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진상이 많다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편견이라기보다는 사실에 가까웠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는 기꺼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



"어머니, 저를 이렇게 험한 곳으로 몰아넣으시면 어떻게 해요."


나는 농담 삼아 볼을 부풀리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시어머니께서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씀하셨다.


"너는 가장 바닥의 인간들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어. 그곳에 사는 것이 네가 말하는 '비효율적인 인간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그런 이해와 수용은 필요 없어요. 저는 지금으로도 충분해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은 내 자식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내 뒤를 이어 내 재산들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고, 내 자식들은 하나 같이 내 기준에 맞지 않아."


"그건 저도 마찬가지 잖아요, 어머니. 저도 한참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예요. 그리고 저는 시어머니의 뒤를 이을 생각은 없어요. 결혼할 때 증여해주신 10억 원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내 자식들이었으면 그 10억 원, 진작 어디로 다 써버리거나 날리고 없을 거다. 너는 그래도 싹수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너에게 신흥동 건물들을 관리해보라고 맡기는 거야."


"진상들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되면 어떻게 하죠?"


"진상도 사람이다. 너에게 진상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거든, 우선 그들의 삶부터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봐. 그럼 그들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때로는 이해보다는 매를 드는 게 나은게 인간관계잖아요?"


"그건 '비효율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먼저 수반되고 나서의 이야기야. 인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애정과 이해가 없으면 매를 든 사람은 그저 냉혈한에 불과할 뿐이야."


나는 ENTJ-A라는 MBTI를 가진 채 20~30대에 남들보다 몇 배나 압축적이고 효율적인 삶을 통해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다. 그러한 성격적인 결과로 인해 나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내 기준 이하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비효율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내 삶에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고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비효율적인 인간이란 내 삶에 최소한 기분 나쁜 느낌을 끼치는 불안정한 요소, 내지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축내는 밥버러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는 내 자신의 편견을 뛰어넘어 이해와 수용을 통해 사람에 대한 내 그릇을 키우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편견을 깨고 진정성 있는 이해와 수용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게다가 나는 쓸데 없는 것을 하고 싶지 않다는 불안 가득한 불만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께서는 내 생각과 심리가 어떻든 간에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결국 우리 부부는 잘 살던 분당 정자동에서 신흥동으로 이사했다. 20평대 아파트에서 3평 남짓한 원룸 2개로 이사할 때 다행히 워낙 미니멀리스트에 쓸데 없는 물건들을 멀리했던 내 성향 덕분에 짐을 딱히 줄일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원룸 하나를 창고로 쓰고 나머지 하나는 깨끗하게 인테리어를 해서 아늑하고 작은 우리 보금자리로 꾸몄다.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나오니 골목에는 10~20대의 어린 친구들이 많았다. 군데군데 삶에 찌든 시커멓고 주름진 아저씨들이 줄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는 것은 10대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풍경을 보고 아, 싶었다. 이 동네는 학원을 가지 않고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많은 동네였다. 그 모습에서 나는 신흥동이라는 동네의 수준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동네의 수준이라니!


부모가 먹고 사는 일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식을 키우고 돌보는 일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 동네는 부모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심지어 부모가 벌어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매일 나이트나 노래방으로 나돌아다니는 바람에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기 먹고 살 벌이를 하는 일도 잦았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어리지만 몸만큼은 성숙한 아이도 있었다. 오죽하면 신흥역 입구 바로 앞에 매주 한 번씩 가출 청소년을 보호하는 업체에서 나와서 파라솔을 피고 죽을 치고 있었다. 가출청소년들은 모란역에서 수진역, 신흥역으로 이어지는 모텔촌과 여관에서 사장님이 몰래 돈을 받고 들여보내준 싸구려 모텔이나, 쉼터를 가장한 어두운 손길 아래에서 잠을 잤다.


내가 관리하게 된 시어머니의 원룸 건물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모든 원룸이 보증금이 20만 원 밖에 하지 않았다. 월세는 50~60만 원 선으로 이 동네에서는 제법 비싼 축에 속했지만, 대신 관리비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방 하나에 50~60만 원을 받으면 3층짜리 원룸 건물 하나에서 한 달에 천 만 원에서 이천 만 원 정도 되는 수익이 났다. 심지어 모든 원룸이 가정용이 아니라 원래 모텔이었던 것을 개조해서 원룸 형식으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전기세와 수도세도 저렴했다. 겉으로는 원룸인 척 했지만 사실은 장기숙박용 모텔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30년 가까이 된 오래된 모텔 말이다.


다행히 시어머니의 원룸 건물들은 10년 전쯤 내부를 리모델링해서 깔끔했다. 보증금 20만 원에 월세를 한 달에 50~60만 원씩 내는 모든 세입자들은 대개 조용하게 혼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편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원룸 안에서 소리도 내지 않고 정말 조용하게 살았다. 상업지구가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전까지 원룸 건물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10대 청소년들이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며 노는 소리였다. 묵직한 담배연기와 함께 말이다.



나는 담배 피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건 그들의 삶이고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는 여자아이들, 남자아이들은 짧은 미니스커트와 같은 자기 몸에 맞게 줄인 교복을 입고 나름 연애를 했다. 청소년들이 키스를 하는 모습은 담배를 피는 모습만큼이나 그다지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니었다. 굳이 이 으슥한 골목까지 와서 키스를 해야 하나 싶은 그런 불쾌한 마음이 불쑥 솟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의 자유가 고작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나 싶은 안쓰러움도 있었다.


반면 풋풋한 20대들의 키스는 생각보다 보기가 좋았다. 집에서 막 나온 듯한 편한 복장으로 서로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을 잡고, 때로는 껴안고 부드럽게 키스를 나누는 20대 커플들의 모습은 마치 부리를 서로 나누는 작은 앵무새와 같아서 무척 귀여웠다.


으슥한 상업지구 골목에 위치한 시어머니의 원룸 건물들은 주변에 온갖 음식점과 술집, 노래방과 나이트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밤이면 술과 사랑을 위해 찾아온 20~30대의 젊은 커플들이 반, 으른의 세계를 성적으로든 술적으로든 마음껏 즐기려고 찾아온 40~70대들이 반을 차지했다. 다행히 새벽 2~5시와 같은 늦은 밤이 되면 거리에는 아직 기력이 창창한 20~30대들만 남았다. 나는 9~10시쯤 자서 새벽 2~3시쯤 깼기 때문에 그 시간 즈음에는 담배 꽁초가 진눈깨비처럼 널린 길거리로 나와서 파이프 담배를 뻐끔거리며 피우곤 했다. 일반 담배와는 다르게, 실제 담배 연초는 한 개피 만큼의 양이 30분~1시간에 걸쳐서 오랫동안 탔고 그것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바로 파이핑이었다. 담배 한 개피가 5분 안으로 정말 빠르게 타기 시작한 것은 담배 산업이 등장한 최근 백 년 안의 일이다. 개비 담배의 큰 형쯤 되는 시가도 1시간 동안 느리게 음미하는 향의 느린 미학이 있는 존재다.


나는 문을 닫은 음식점의 문턱에 앉아서 파이프를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리서 구경했다. 그들은 때로는 내 가까이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저 멀리서 서로 수다를 떨며 투닥거리기도 했다. 언제나 가장 보기 좋은 것은 20대로 보이는 어린 커플이 두 손을 꼭 잡고 애정어린 시선을 교차하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풋풋한 청춘이 담겨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기분을 부드럽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나는 멀리서 그들이 조용히 키스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담배 연기를 음미하곤 했다.


때로는 내가 관리하는 원룸 건물 앞에서 키스를 하기도 했다. 대개 원룸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는 작별 키스이거나, 갑갑한 원룸 안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온 찰나의 순간에 바깥 공기를 만끽하며 나누는 자유로운 키스였다. 또는 골목을 지나가던 길에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으슥한 곳에서(그러나 사실은 누군가 창문 밖으로 그들을 구경하고 있을 수도 있다) 키스하는 젊은 커플을 구경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오늘도 나는 새벽 2시 반에 깨서 밖으로 나와서 컴컴한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사이에 앉아 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상업지구에는 오징어배불과 같은 장식용 전구들이 무수히 많은 달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남편이 곤히 자는 캄캄한 방에서 기어나와서 담배를 만끽하는 한 명의 애연가는 오늘도 멀리서 키스하는 누군지 모를 젊은 커플들을 지켜본다. 그들은 끈적거리는 키스를 하지 않는다. 입술이 촉, 하고 와닿는 듯한 귀여운 앵무새 키스를, 그들은 이룬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똑같이 담배를 피며 키스를 하는 청소년들의 불쾌함과는 전혀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생동감과 애정이 느껴진다. 가을로 접어드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담배 연기를 바람에 태워보내며 또다시 어둠 속으로 눈을 돌린다. 문득 '비효율적인 인간'을 넌 이해할 필요가 있다던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를 타고 떠올랐다. 분명, 이 한밤중의 자지도 쉬지도 않고 술을 마시고 어울려놀다가 나누는 키스는, 충분히 비효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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