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신형 카니발에서 내리는 어린 노래방 도우미들

그토록 어리고 싱싱한 그녀들의 찬란하게 그늘진 돈벌이

by 최류

와인매니저의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10~11시에 잠을 잔다. 그럼 으레 새벽 2~4시 사이에 깨게 되는데, 그럼 으레 잠이 다시 오지 않아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파이프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일방통행만 가능한 신흥동 골목에서 영업이 끝난 고깃집 앞에 앉아 파이프를 뻐끔거리고 있자면, 10분에 한 번씩 새하얀 신형 카니발이 지나간다. 내가 늘 앉아 있는 자리 양 옆에는 노래방만 세 군데가 있는데, 카니발은 나를 피해 멈추더니 이윽고 늘 누군가가 내린다. 십중팔구는 예쁜 다리를 뽐내는 미니스커트에 스타킹, 하이힐을 신은 어린 여자애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개중에는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정말 앳된 얼굴을 가진 여자도 보인다. 들리기로는 정말 미성년자가 공공연연히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며 돈을 번다고 나는 들었다.


항상 광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차가 되어 있는 새하얀 카니발에서 내리는 건 어리고 싱싱한 여자들만이 아니다. 가끔씩 패셔너블하게 잘 차려입은 젊은 남자들도 내린다. 내가 우리 남편에게 남자도 있다고 말해줬더니 그는 호스트인가보다고 담백하게 대답했다. 우리 남편도 나처럼 직업에 귀천을 따지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호스트 내지는 남자 노래방 도우미를 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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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거나 노래방 도우미들은 카니발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노래방 입구로 직행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담배를 피거나 다른 가게에 들렀다 가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객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늘 카니발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노래방으로 직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자기를 아는 누군가와 마주칠까봐 카니발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일터로 뛰어드는지도 모르겠다. 이 상권에서 가장 잘 예쁘고 멋지게 잘 차려입은 그들은 외관을 길가에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면 한밤중의 신흥동 상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담배를 피우는 취객 다음으로 노래방 도우미들인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흔하게 노래방 도우미들을 태우고 다니는 신형 카니발을 볼 수 있는 동네는 처음 보았다. 생각보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상권인데다 옛날부터 여러 가지 퇴폐적인 문화가 깊숙하게 자리잡은 동네라 더욱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대학가이면서 유흥거리가 곳곳에 숨어있었던 그 옛날 내가 살았던 서대문구 신촌에서는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노래방 도우미를 발견하기가 모래 속 바늘 찾기와 같았다. 그러나 이곳 신흥동 상권에서는 발에 채이는 것이 노래방 도우미고, 조금만 예쁘게 차려입고 하이힐을 신고 있으면 바로 술집 아가씨나 도우미로 오해받는 곳이 이 동네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들(특히 남자들)의 수준이 천박하기 짝이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편견이 든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저급의 유흥 문화가 당연하게 자리잡은 이 동네에서 사면 나 같은 사람도 아주 흔하게 그 유흥문화의 겉껍질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쉽게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편견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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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의 수준을 운운하는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신흥동 골목에서는, 내가 예전에 살았던 분당이나 신촌, 여의도에서의 삶과는 다르게 자꾸만 사람들의 수준을 생각하게 된다. 재산이 제법 있거나 가방끈이 길거나 하는 등 이른바 높은 수준을 가진 사람들을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동네, 그러한 동네에서는 여자가 아무리 예쁘고 섹시하게 차려입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곳에서는 예쁘게 잘 차려입은 여자는 길가를 지나가면 이상한 취급을 쉽게 받는다. 예쁘게 꾸미는 것과 하이힐을 사랑하는 나도 우리 남편 없이 혼자 길을 나서면 희한한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가끔은 자기랑 놀러가지 않겠냐며 치근덕거리는 나이든 아저씨도 있고, 굳이 내 앞으로 돌아와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할아버지도 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면 움직일 때까지 쉬지 않고 빤히 바라보는 남자들도 있고, 나를 보며 대놓고 자신의 노래방 도우미썰을 풀어놓는 젊은 남자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러니 내가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결국은 자기 방어의 일환으로 이 동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수준을 운운하게 되는 것 같다.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나는 새벽에 파이프를 물고 나와 좀더 큰 길가로 가보고 싶어서 천천히 거닐었다. 8차선 도로변으로 나오니 금요일마다 펼쳐놓는 가출청소년 쉼터가 보였다. 그 앞으로는 하이힐을 신은 채 담배를 태우는 미니스커트에 스타킹 차림의 여자 아이들이 몇 명 모여있었다. 그들 뒤로는 '노래빵'이라고 씌어진 간판이 보였다. 나는 가출청소년 쉼터와 그들을 피해서 앉아 있을만한 곳에 앉아 뻐끔거렸다. 담배를 피우며 스마트폰을 말없이 들여다보는 하이힐을 신은 여자아이들은 마치 10대 후반처럼 보였다. 그 정도로 청초하고 아름다운 여자아이들이었다. 그녀들 주변으로 지나가는 늙수구레한 남자들은 그녀들을 몇 번이고 돌아보며 흘끔거렸다. 가출청소년 쉼터에 앉아있는 자원봉사자들은 밤을 새기에 바빠서 그녀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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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그녀들의 하이힐이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박차처럼 보였다. 박차란 승마구두 뒤축에 달려 있는 쇠막대기 같은 것을 말하는데 말의 배를 차서 속도를 내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젊디 젊은 여자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필요했고, 그녀들이 낮에 다른 번듯한 일을 하든 말든 어찌되었거나 그 돈이 모자라서 그들은 그렇게 하이힐을 박차 삼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말없이 생각에 잠겨 길게 파이프 연기를 내뿜는 사이, 광이 번쩍번쩍 날 정도로 왁스를 칠한 새하얀 신형 카니발이 나타났다. 여자아이들 중 한 명이 힘차게 카니발 뒷문을 열자 경쾌하면서도 육중한 쇳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여자아이들이 전부 탄 뒤 카니발의 문은 철컥 닫혔다. 마치 새로운 던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름다운 플레이어들의 모습 같았다. 비록 현실은 시궁창이라 그렇게 예쁘게 포장할 수 없겠지만, 그녀들은 또 누군가의 추파와 치근거림, 성희롱을 받으며 즐거운 노래방 분위기를 위해서 웃음과 섹시함을 공허하게 가장하겠지만, 그녀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고 싱싱한 청춘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 기묘한 대조 또는 아이러니에 나는 속이 약간 갑갑해졌다. 그녀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따금씩 거리에서 잘 아는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뱉어낸 침 따위를 받으며 걸어가는 두꺼운 화장의 퇴물 술집아가씨라든가 여관바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살아갈 시간이 지극히 한참 남은 그녀들의 삶이 결코 그렇게 뒤틀어지고 빛 바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 각자의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진리와 같은 것이라 나는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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