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ineofMuse Feb 27. 2022
나는 물건을 세심히 다루고 아껴서 오래 쓰는 것을 좋아한다.
세심히 다룬다 하여 매일 닦고 관리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용할 때 조심히 쓰고 고스란히 제자리에 오래 둔다는 의미이다.
특히 볼펜이나 만년필을 떨어뜨리면 촉의 끝부분이 바닥부터 떨어지는
불상사가 흔히 일어난다.
그러한 일을 극도로 꺼려한다.
0.3mm 에서 0.5mm 사이의 얇은 펜을 선호하는 터라 펜 끝이 망가져
비싼 펜을 조기 퇴직시키면 그게 그렇게 미안하다.
잉크의 끝을 함께 누리지 못함에 못내 서운하다.
잉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수명을 다한 펜을 과감히 분리수거 통에 버리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펜 한 자루를 다 쓸 때까지 다른 펜을 구입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가방 안의 가죽 필통에는 왜 끊임없이 출처를 모르는 펜이 자연 발생하는지 모를 일이긴 하다.
이런 고지식하고 따분한 성격 탓에 15년이 넘게 쓴 연필깎이의 손잡이를
직원이 부러뜨렸을 때 진심으로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스무 살 때부터 써온 연필깎이의 손잡이는 아마도 때가 되어 부러졌을 공산이 크다.
속상한 마음에 버럭 화를 내었지만 이내 직원에게 미안했다.
그깟 물건은 다시 사거나 이미 쓸 만큼 썼다고 위안하고 보내면 될 일이었으나
직원의 마음은 다쳤을 것이다.
애착이 집착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 서로가 피곤해진다.
물건도 나란 사람도 서로가 피차 좋을 게 없다.
무인양품에서 하얀색 연필깎이를 새로 구매했다.
아마도 기능이 정지하거나 부서지지 않는 이상 10년이고 20년이고 쓰일 것이다.
아들의 책상 위에 있는 그 하얀색 연필깎이는 장수할 운을 타고나긴 했다.
플립으로 열리는 LG 핸드폰도 10년 넘게 썼으나 거의 두 동강이 나려는 참에 마지못해 아이폰으로 바꾸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의 전 핸드폰도 쓰다가 쓰다가 전원이 꺼지고 기판이 날아가서 아예 회생이 불가능해져서야 겨우 바꿀 수 있었다.
그 참에 두 번이나 서비스 센터에 가서 기판을 살릴 방도가 없는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사망 판정을 받은 핸드폰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100만 원이 넘는 핸드폰을 사서는
껍질도 뜯지 않고 케이스에 넣고는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
구질구질해 보일 요량인가.
옛날 사람 같은 답답함이 나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굳이 새 걸로 바꾸거나 굳이 잘 있는 물건을 내다 버릴 용기가 없다.
용처가 없거나 짐이 되면 과감하게 버리지만 그전에 멀쩡한 물건을 이유 없이 버릴 일은 없다.
다른 유형의 인내심인 모양인데 이 인내심은 무릇 잘못된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인연에 너무 얽매여 있던 과거가 못내 아쉽기도 하다.
빨리 내다 버릴걸.
10년 전에 양복을 맞추며 샀던 벨트가 이제는 더 이상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뭔가 필요한 게 없다고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터라 정작 선물을 받아야 할 타이밍에는
잊어먹고 말하지 못하거나 말하기 그저 그래 웃음으로 넘기곤 했다.
사실 민망하다.
내가 이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걸 못 사는 사람이 되는 건가 하는 미묘한 기분이 싫다.
구매 동기 자체가 게으른 상황에 수년째 처해있다.
나를 위해 중요하게 쓰이는 물건에는 나만 아는 소소한 역사가 있다.
그 역사가 없는 영혼 없는 물건을 내손으로 사는 게 영 마뜩잖은 경우가 그러하다.
받고 싶은 물건이지 사고 싶은 물건이 아닌 경우이다.
나는 극적인 에피소드가 하나쯤은 필요하고 그걸 꺼내어 기억할 물건이 절실하다.
가디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컬러에 대한 취향이 없다.
검은색, 회색, 갈색, 하얀색 무슨 색인들 어떠하리 누군가가 나에게 던져준 색이면 족하다.
봄 여름 가을 앙상한 팔을 가리기 편한 가디건은 항상 나의 구매 리스트의 상단에 위치하지만
나를 위해 고를 수 없는 물건이었다.
타자에 의해 규정된 나의 컬러가 보는 나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나는 가디건을 걸친 내 모습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춥기에 걸치고 나가는 피부 같은 물건이다.
하지만 그 가디건을 걸친 나를 보는 이들은 모양과 색을 볼 것이다.
그 눈에 보기 좋은 카디건이 필요하다.
봄이고 가을이고 그 가디건을 옷걸이에서 꺼낼 때마다
선물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 가디건이 필요하다.
요즘 사무실을 정리하며 아주 많은 물건을 당근 마켓에 팔고 있다.
섣부를 소비가 불러온 미련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한두 번 보고 안보는 빔프로젝터
한번 테스트해보고 처박힌 새 씰링기
안 쓰는 모니터들
사무용 의자들
안 쓰는 수많은 테이블과 의자들
7년째 안 쓰이는 라꾸라꾸 침대
10년째 안치는 골프채
등등
모든 물건에는 미련과 함께 누적된 시간의 청산이 필요했다.
그만큼 낮아진 값어치는 고스란히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왔고
팔고 나면 너무나 빠르게 그 물건들을 망각했다.
진작에 빠르게 정리했어야 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나는 빠르게 행동했지만 빠르게 접지 못했다.
코로나가 금방 끝나리라는 생각이었을까.
큰 사무실에 직원들이 앉아있던 많은 책상과 의자와 집기들을
기어코 인천까지 다 실어 날랐다.
당연히 큰 사무실이 필요했고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
이러면 아마도 코로나가 끝나고 직원이 앉을자리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야 함이 옳다.
이래나 저래나 끝나야 할 일들은 언젠가 끝이 있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 영원히 살 것처럼 다시 시작하는 걸 버릇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