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장모님 댁의 옆옆집에서 불이 났다.
닭장같이 좁은 국민임대 아파트는 옛날에는 장애인 임대아파트였다가 이름을 바꾸었다.
새벽 5시에 장모님의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에 잠이 번쩍 달아났다.
"불이 났다는데 처형이 못 나오고 있대 좀 가봐 줘"
혹시 몰라 차키를 챙겨 차를 몰았고 지척이기에 와이프는 겉옷만 걸치고 전화기를 들고 냅다 뛰었다.
다행히 통화가 되었다.
검은 연기가 너무 많이 차올라 탈출은 어느 방향이든 불가능해 보여 집안에 있다 했다.
문틈을 젖은 수건으로 막아 연기를 막았다.
좁은 베란다 쪽으로도 연기가 들어와 창을 닫아야 했다.
자칫 베란다의 공용 공간으로 불길이 이동한다면 참사가 일어날 순간이었다.
일층에는 뛰어 내려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혹여라도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소방관들의 통제가 시작되었다.
"옥상을 통해 진입해라"
"헬기를 띄워라"
다급한 사람들의 잔소리가 훈수처럼 이어졌다.
다행히 신속하게 불길은 잡혔으나 화재로 1명이 숨지며 사회면에 나고야 말았다.
그 이후에도 두어 달이 넘게 복도와 집안에서는 화기와 냄새가 빠지질 않았다.
검은색 복도는 도색과 도배를 공사에서 해주었다.
냄새가 사라지며 망자에 대한 기억과 함께 불이난 사실도 희미하게 잊혀 갔다.
장모님이 새벽같이 절에 가신 그날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장모님과 처형에 대한 나의 시각이 조금 달라진 사건이었다.
늘 표현이 없이 묵묵하고 조용하던 처형은 이날 역시
"죽을 뻔했네..." 라며 담담히 목소릴 내었다.
괜찮으니 올 필요 없다며 아파트 뒤 놀이터 어귀에서 담담히 담배를 한대 피우고는 집으로 올라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나는 심정적인 동요가 일었다.
논밭만 있던 80년대 초 장애인을 위해 국가가 닭장 짓듯 만들어둔 아파트이다.
경찰차와 엠뷸런스가 항상 상주하는 아파트 단지에는 자동차의 수만큼 작은 전동카트가 돌아다니는 듯했다.
입구에 있는 슈퍼에는 항상 낮부터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한 어르신들이
밤늦게까지 그 여세를 몰아 시끄럽게 떠들며 담배를 태우곤 하신다.
한집 건너 한집은 싸우고 있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악다구니를 지르고 있다.
어지간한 일에는 경찰도 사이렌을 켜지 않고 출동한다.
담배 쩐내와 엘리베이터마다 지려놓은 오줌 냄새가 떠오르는 아파트이다.
나는 건방진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감히 '타인의 가난'을 구제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이는 완전한 실패로 끝이 났다.
나는 아직도 그 발상의 대가를 치른다면 치르고 있는 셈이긴 하다.
식당을 내고 평생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계획이었다.
반년 간의 시장조사와 만반의 준비도 코로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본업이 휘청거렸고 식당도 망해갔다.
좁은 식당에서 일을 하며 나는 도인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끝없는 인내와 성찰을 요구하는 좁은 공간에서의 노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내면의 강인함을 돋우는 경험을 선사한다.
장모님 댁에 불이 난지 만으로 3년의 시간이 되어 간다.
그날 새벽의 불은 순식간에 꺼졌다.
내 마음속의 불도 어느 정도 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