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기 지우개

by WineofMuse

쓸데없이 비장해.

언제나 힘이 들어가 있잖아.

당장 내일, 이번주, 이번달까지만 하고 말 거야?


불안해.

불안해 미치겠어.

이 불안을 없애고 싶어.

아니야.

사실은 이 불안이 없어질까 봐 두려워.

평생을 불안과 함께 살아왔는데

그게 없어지면 그 적막함과 공허함, 헛헛함을 어떻게 견뎌.


힘빼.

여유를 가져봐.

목적 없이 그냥 흘려보내는 건 어때.

그저 그냥 너를 세상 속에 내버려 두는 건 어때?

얼마나 대단한 업적

얼마나 높은 이름을 떨칠 거야.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하지 마.

그 일을 안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건 없어.

메일함을 비우고 컴퓨터 파일과 사진을 정리하고

메시지와 전화번호부를 한참을 들여다보고

삭제할 메시지와 사람을 지우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걸 바쁜 일과라고 포장하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 잔혹해.


너 스스로를 챙기지 않으면

세상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거야.

좋은 차와 좋은 음식

편안한 마음, 건강한 정신

여유와 휴식

청결한 환경과 향기를 줘.

그게 다야.

너를 대접해야 남도 대접할 수 있어.


준비.

아니.

난 아직도 쉬고 싶어.

그럼 쉬어.

너 하나 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놀아.

그저 놀아.

그저 노닥거려.

그게 네 몫이라고.

니 복이라고.


지치지 마.

지칠 거 같으면 모든 걸 던지고 우선 쉬어.

그럴 땐 미뤄.

내일 하면 되고 닥치면 다 하게 되더라.

한 번은 지쳐도 되지만 두 번 세 번 자꾸만 지치면

지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


힘빼.

축 늘어져버려.

해파리처럼 버들가지처럼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휘날리고

바람에 날린 검정비닐처럼

한 번쯤은 그래도 돼.


사람이 싫어.

제일 싫어.

정말 싫어.

그리워.

사람이 제일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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