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님.
이 이야기를 어떻게 재정렬 해야할까요?
타자화 시키는것이 좋을듯해요.
우울하고 음침하게 그려볼까요.
밝고 활기차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볼까요.
유쾌한 실패담이 좋을까요.
음울한 에세이가 좋을까요.
어느 쪽이 더 와닿을까요.
의지는 제것이지만 방향은 제가 나서봐야 좋을게 없어보여요.
우린 틀린 그림 찾기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왔던 게 아니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얼렁뚱땅 유튜브와 검색, 상상에 의존해서 두루뭉술 매장을 운영해 나갔다.
엣지가 없었다.
틀린 그림을 하나씩 잘 찾아내었다고 위기를 하나씩 넘겨내었다고
찾아낸 과정을 칭찬하고 뿌듯해 한들 잘못 그려진 그림 조각을 손에 들고 있던 것뿐이었다.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기에 매사 첨예하고 날카롭게 대응했지만 좋지못한 결과로 인해
모든 과정이 퇴색되어버렸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패배한 모양새였다.
F 낙제점을 통보받은 장사는 결코 유쾌하지 못했다.
준비를 하며 인테리어를 하던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고 콧노래를 부르며 새벽을 밝혔다.
오픈 이후의 하루는 매일매일이 복사된 듯 똑같았다.
긴 하루를 꼬박 좁은 매장 안에서 보내야 했고 끝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리거나 쉬면 어김없이 주문이 폭주하거나 뭔가를 잊거나 누락하여 영업이 꼬이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하여 쌀국수를 불리는 일을 깜빡하여 점심 장사를 통으로 놓친 경험도 있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진 않았지만 그 당시의 분노와 자책은 상당했다.
점심 식사에 몰려온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돌려보내는 일은 고역이었고 부끄러웠다.
스스로 책망하기 딱 좋은 일이었다.
동네에 국숫집이 없는 이유를 우리가 몸소 체험을 통해 밝혀낼 필요는 없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쌀 국숫집에는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불필요한 시행착오들이 투여되었다.
성공에 대한 노하우를 쓴 것이 아니라 우선 미안하다.
그렇다고 실패를 떠올리며 같이 분노해달라고 알아달라고 쓴 글도 아니다.
본업을 두고 식당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보시고 우리의 실수가 무엇인지
되짚어보시길 바란다.
실패를 경험한 나는 명확히 보이는 실패의 포인트가 보인다.
그걸 잘 찾아보시고 성공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데 보탬이 될까싶어 이 글을 써보았다.
우리보다 한 달 먼저 오픈한 5,000원짜리 쌀 국숫집은 오늘도 성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