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 장사로 시작했지만 배달 영업을 1년간 하나 보니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평일 매출은 30만 원에서 40만 원 사이로 오갔고 주말이나 휴일의 경우는 60만 원에서 80만 원 사이를 오갔다. 그럭저럭 이 시국을 버틸 수 있다는 사실만을 위안으로 삼으며 근근이 버텨 나아갔다.
우리 매장은 항상 신선한 숙주와 고수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거의 매일 아침 신선한 숙주와 고수를 찾아 도매시장을 기웃거리곤 했다. 양파절임은 항상 국산 양파만으로 담갔다. 양파 파동으로 10kg 한 망에 3만 원 가까이 육박해도 중국산 양파는 쓰지 않았다. 양파절임은 추가 비용을 따로 받아도 여러 통 추가 주문하시는 고객분들도 계셨다. 토요일 장사를 위해서는 숙주 3박스와 양파 10kg을 담가 준비해두곤 했다.
4월의 어느 토요일 날씨가 좋아진 탓일까. 평소대로라면 매주 80만 원가량의 매출을 기대하는 토요일이었다.
점심까지 순조롭게 20여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2시부터 6시까지 한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준비해 둔 숙주와 고수 등의 신선재료에 대한 부담은 이내 짜증으로 변했다. 지금 같으면 그냥 일요일에 나와서 일을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볼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일요일 하루 나온다고 큰일이 날건 아니었다. 한껏 예민해진 그날 우리는 쌀 국숫집을 그만하기로 했다. 1년 하고 7개월여 만이었다.
단순히 토요일 하루 장사가 안되어 거의 2년 가까이 운영한 매장을 그만하기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연애로 굳이 비유를 하자면 너무 일방적인 모쏠의 짝사랑 같은 느낌이 다분히 들었다. 진심을 다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오버페이스였고 시기와 맞지 않았고 운도 좋지 않았다.
몸이 부서져라 일했더니 진짜 몸이 고장 났다. 좋은 건 가족과 나누고픈 맘에 같이 일했으나 얻은 건 갈등과 불화였다.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같은 팬데믹이 매장 오픈 3개월 만에 터진 것이 가장 컸다. 복잡한 마음에 무엇이 우리를 망하게 한 원인인지 오랜 시간 생각해 보아도 어딘가 탓을 하거나 대상을 집어내야 한다는 생각 아래서는 긍정적인 일을 도모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