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by WineofMuse

김포 공항에 내린 나의 어깨는 등이 굽은 꼽추처럼 심히 말려있었다.

실제로 꼽추라는 병명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열패감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한국땅을 밟은 것에 대한 혼자만의 수치심을 곱씹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이 나랄 뜨노라 주사를 부렸다.

연락할 곳을 떠올려봐야 할 만큼의 상황.


망망대해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까 청운의 꿈을 품고 불법 이민을 위해 밴쿠버에 내릴 때만 해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이었다. 멀쩡히 땅에 던져졌지만 마치 부유하는 부표처럼 정처가 없었다.

부표 더미에서 탈락한 부표 말이다. 수면 아래의 무언가 위치를 표기 위한 부표가 무리에서 떨어져 이탈했다는 것은 쓸모의 실종이랄까. 그렇게 바다위의 뻔히 보이는 실종말이다.

망할...

수첩귀퉁이에 중국집 전화번호가 보인다.

'영빈루' 흔해빠진 이름, 부산역에서 내리자마자 오른쪽 골목 대로변에 위치했다.

곧 기차에 몸을 실을 손님위주인 식당이라 기차가 다니는 모든 시간 늘 붐비는 중식당

중학교 2학년 무렵 먼저 고아원을 탈출한 영근이가 일하는 곳이었다.

"우선 내려와 봐."

답이 없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

부산으로 간들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며칠 신세라도 질 요량으로 기대를 품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영등포 역사의 푸드 코트에 들러 짜장 한 그릇을 주문했다.

모든 것이 쓰다. 입맛도 단무지도 짜장면도

심지어 오늘 이 땅에 선 물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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