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랑, 그녀의 죽음.
이번 해외 출장 길에 돌아오면서 타임킬링용 영화를 쭉 찾다가 눈에 들어온 영화가 있었다. 2000년에 발표한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블론드’는, 주연 배우인 아나 데 아르마스의 싱크로율이 높은 외모와 뛰어난 연기로 유명했지만, 정말 불쾌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먼로를 마치 어렸을 때 겪은 애정결핍을 성인이 되어도 이겨내지 못한 환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극중 먼로가 자신의 두번째 남편인 조 디마지오(Joe Dimaggio)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자신의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은 사실 관계를 넘어 불편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먼로는 영화가 묘사하는 바와 정말 다른 삶을 살았다. 매우 주도적이며 진취적인 여성이였고, 훨씬 지적인 인물이였다. 백치미 컨셉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였을 정도면 보통 내기는 당연히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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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의 와인이라고 하면 당연히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파이퍼 하이직’이다. 먼로의 부엌에는 한달 치 파이퍼 하이직이 항상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잠들 땐 샤넬 No.5를 입고, 아침에는 파이퍼 하이직을 마신다.’라는 멘트는 매우 유명하다. 실제로 먼로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먼로가 이 샴페인을 구매한 영수증이 경매 리스트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아주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1785년 프랑스 상파뉴의 랭스(Reims)에서 플로랑 루이 하이직(Florens Louis Heidsieck)이 ‘여왕에게 바칠 수 있는 뀌베’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설립한 이 와이너리는,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소개하기도 한 와인이기도 하다.
플로랑의 사후, 그의 조카인 크리스티앙이 와이너리를 맡게 되었다. 그 이후 앙리 기욤 파이퍼(Henri Guillaume Piper)이 등장하여 지금의 파이퍼 하이직을 만들어냈다. 크리스티앙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그의 미망인과 결혼한 그는, 하이직 가문의 와인과 자신의 뛰어난 상업적 영향력을 함께 결합하였다. 앙리의 탁월한 수완을 통해 이 샴페인은 당시 궁정, 사교 시장에 진출하여 명성을 크게 일으키게 된다. 무려 중국의 황제도 포함하여 14개의 왕실과 국가에서 공인한 공급자로 선정된다.
앙리 기욤의 사후, 그의 파트너였던 자크 샤를 쿤켈만(Jacque Charles Kunkelmann)이 하우스를 맡아 운영한다. 그의 손녀인 욜란드(Yolande)는 당시 뛰어난 항공 조종사이자 봅슬레이 선수, 군인이였던 장 드 수아레즈 돌랑(Jean de Suarez d’Aulan)과 결혼하였다. 당시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이집트까지 도착하는 비행 경주에서 우승할 정도로 재능있는 조종사였던 장은, 본인의 비행에 파이퍼 하이직을 소개하여 주가를 올렸다.
장은 끝까지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수중에 넘어간 조국을 위해 셀러에 무기와 레지스탕스를 숨겨줬으며, 이로 인해 게슈타포에 체포될 위기까지 직면했다. 그는 그 전에 북아프리카로 넘어가, 라피예트에 소속되어 비행전까지 참여하였으나, 1944년 전투에서 전사한다.
욜란드와 그의 아들인 프랑수와 돌랑(François d’Aulan)의 노력으로 하우스의 명맥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으며, 1988년 유명 브랜드인 레미 마르탱, 꼬앵트로를 소유한 에리어드 뒤브리유(Hériard-Dubreuil) 가문이 하우스를 구입하게 된다. 여담으로, 돌랑 가문은 아르헨티나로 넘어가 ‘알타 비스타(Alta Vista)’ 와이너리를 설립한다. 파이퍼 하이직은 그 후 2011년에는 와인과 럭셔리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EPI 그룹에서 판권을 사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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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유롭고 주도적인 여성상을 그려왔던 먼로와 파이퍼 하이직은 개인적 취향을 넘어 공통의 특징이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먼로의 삶은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두 번째 결혼인 디마지오와의 결혼은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이였다. 디마지오는 지금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의 기록인 5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한 뉴욕 양키스의 슈퍼스타였고, 은퇴 후 먼로와 결혼을 하게된다. 뉴욕이 사랑한 두 사람의 결합이였다.
디마지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매우 가부장적이고 히스테릭한 그는, 심각한 의처증 환자였다. 이 둘의 사이가 벌어진 계기는 한국 전쟁이다.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둘은, 전쟁 소식을 들은 먼로의 긴급 방한으로 크게 다투게 된다. 그는 먼로가 남성들 앞에 전면으로 나서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이 둘은 심한 욕까지 섞어가며 싸웠고, 결국 먼로는 한국으로 향한다. 당시 먼로의 위문 방한은 미국 내에서 먼로의 이미지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나, 디마지오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이후 디마지오는 먼로의 모든 일정에 동행을 하였다. 이로 인한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환풍구 치마 씬으로 유명한 ‘7년만의 외출’ 촬영시에, 그 씬을 찍는 것을 보고 디마지오는 폭발하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 때부터였을까? 디마지오는 먼로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야구 방망이로 때린 적도 있으며, 그 이후 먼로는 맞은 부위를 가리기 위해 화장을 짙게 하기 시작했다.
이후 둘은 9개월의 짧은 결혼 생활을 끝으로 이혼을 선택했다. 이후 먼로는 재혼하였으나 계속되는 유산과 갈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디마지오는 이혼 후 먼로를 잊지 못하고 재혼을 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면서 먼로를 따라다녔다. 거의 스토킹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집착이였지만, 먼로는 공식적으로 디마지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세번째 이혼을 경험한 뒤 먼로의 곁에는 계속 디마지오가 있었다. 그리고 둘은 재 결합을 약속하기까지 이른다. 그리고 3일 뒤, 먼로는 세상을 떠난다.
당시 디마지오는 먼로와 염문을 뿌리고 다닌 케네디 일가,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가 먼로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평생 케네디 가문을 저주하며 다녔다. 그리고 평생 재혼하지 않고 매주 먼로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그가 사망할 때 마지막 말은 “드디어 먼로를 만날 수 있겠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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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마신 파이퍼 하이직 로제 브륏이 생각난다. 화려함 속에 갖춰진 품격이 느껴진다. 물론 난 동시대의 사람은 아니지만, 먼로는 정말 파이퍼 하이직과 많이 닮은 느낌이다.
모든 술이 비슷하지만, 와인도 역시 시간과 역사, 그 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빚어낸 술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쯤은 이런 이야기들을 연결하여 같이 와인을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그 자리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