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판, 그 뒷 이야기
19세기 필록세라(Phylloxera, 포도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곤충류)의 영향으로, 유럽은 포도의 70% 이상이 초토화가 된다. 필록세라에 내성이 있는 미국종 포도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전까지, 유럽의 와인 산업은 그야말로 종말을 맞이할 뻔하였다. 아우가 형의 목숨을 살린 격이 되었다.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와인은 환골탈태를 거듭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19세기 미국 서부의 골드 러시는 이 지역의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된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약 1,000명에서 25,000명까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들은 북부 캘리포니아의 포도 재배 활성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며, 오늘날의 소노마 카운티, 나파 밸리의 기초를 닦게 된다. 또한 20세기 초에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계 이민자들이 고유 포도를 가져오며, 다양성까지 제고되며 품질을 기하 급수적으로 올리기 시작한다.
1920년의 금주령 시대는 이런 노력을 허공으로 날려버릴 중대한 위기였다. 13년간의 기간동안 많은 이들이 양조 업계를 떠나게 된다. 금주령 이전 713개의 와이너리는 그 숫자를 1980년대가 되어야 회복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후 미국 내에서도 품질 혁신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앙드레 첼리체프(André Tchelistcheff),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가 등장하면서, 미국 와인은 기존의 벌크 생산의 기조를 혁파하고 새로운 프리미엄 와인으로 급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양한 생산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동생의 성장은 바로 형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 미국 와인은 프랑스보다 절반가량 저렴한 가격에 더 뛰어난 품질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프랑스는 이에 즉시 반응한다. 감히 형의 아성에 도전을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콧대 높은 프랑스인들이지 않나? 그들은 희대의 테이스팅에 참여한다. 1976년 5월 24일, 인터컨티넨탈 파리에서 열린 이 테이스팅은 역사를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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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모두들 결과는 잘 알고 있겠지만, 레드/화이트 모두 미국이 차지하면서 일약 대 사건이 일어난다. 이 결과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였다. 프랑스인에게 와인은 그들의 혈액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이를 부정당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인정 못할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명이였던 오데뜨 칸(Odette Khan, 현재에도 프랑스 최고의 와인 매거진 권위를 지키고 있는 La Revue de Vin de France 편집장)은, 결과 발표 후 사실상의 주최자였던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 영국 아카데미 뒤 뱅 설립자)에게 강하게 항의하며 본인의 평가지를 반납해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간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주최 측과의 인연을 완전 끊어버린다.
스티븐 스퍼리어는 거기에 한술 더 떠, 1년간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모든 와인 관련 투어에 초대 불가라는 징계 아닌 징계를 받게 된다. 일부 심사위원들은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그 이후 여러 번의 추가 테이스팅이 진행된다. 평론가들은 프랑스 와인이 장기 숙성에 최적화가 되었으며, 비교하기에는 너무 와인이 어렸다는 점을 어필하였다. 이에 10년 뒤인 1986년에,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와인 관련 잡지)의 주최로 동일 빈티지의 와인의 2차 테이스팅을 진행하게 된다. 결과는 프랑스의 참패. 이후 2006년, 30주년 기념 테이스팅에서 당시 출품 레드와인에 대한 재 평가가 진행되었다. 여기서는 한술 더 떠, 상위권을 모두 미국와인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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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인 미라클’을 보면 1차 테이스팅에서 1위를 차지한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파리의 심판을 얘기할 때 대부분 결과를 많이 기억하고 있지만, 생산자들의 특징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총 20개의 와이너리 중 끌로 뒤 발 (Clos du Val)은 1971년에 설립된 가장 어린 와이너리였다. 그들은 설립 후 첫 출시한 빈티지(1972년)가 선정되어 최고의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첫 테이스팅에서 8위를 차지하였으나, 2차 테이스팅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30주년 기념 테이스팅에도 프랑스 와인들을 모두 꺾으며 상위권을 차지하게 된다.
1차 테이스팅에서 7위를 차지한 마야카마스(Mayacamas)는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산자였다. 사실 품질이 낮아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1941년에 설립된 이 포도원은 연간 생산량이 다른 생산자들에 비해 극도로 낮았으며(연간 5,000케이스, 즉 6만병 정도), 적은 당도의 와인 중심의 부띠끄 와이너리에 가까웠다.
이들이 평가에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최자인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의 동료인 파트리샤 갤러거(Patricia Gallagher)가 함께 캘리포니아를 돌아다니며 독창적이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캘리포니아 와인이 글로벌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대형 딜러나 중개상인들의 추천이 아닌, 본인들이 직접 방문하고 선정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렇기에 숨겨진 생산자들이 전면에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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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충격이였고, 좋은 가십거리였으며, 반등의 계기가 된 테이스팅이였다. 대부분 많은 분들은 순위만을 알고 있으며,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꺾은 초유의 대 사건 정도로만 알고 있으나, 이 테이스팅 뒤에는 생산자, 주최자의 간단한 이야기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미래에 이 와인들을 드셔보게 된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곁들이는 것을 추천 드린다. 한층 와인이 달라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