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전파 vs 모더니즘,
그리고 바롤로

바롤로 보이즈들은 어떻게 바롤로를 변화시켰을까?

by 와인파는총각

2014년 처음으로 소개된 ‘바롤로 보이즈’라는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탈리아 3대 레드 와인으로 불리는 바롤로(Barolo)의 변화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세대교체와 철학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바롤로는 무엇이며, 바롤로의 변화는 어떤 파장을 일으켰길래 다큐멘터리까지 나왔는지 한번 훑어보자.


바롤로 보이즈.jpg 2014년 작 바롤로 보이즈, 바롤로의 변화를 잘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와인공부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봤을 다큐멘터리이다.



바롤로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Piedmonte)주의 랑게(Langhe)언덕에 위치한 바롤로 마을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네비올로(Nebbiolo) 품종만을 사용하여 만든 레드 와인이다. 토스카나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베네토의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Amarone della Valpolicella)와 더불어 이탈리아 레드 3대 와인으로 불리는 대표 와인이며, ‘와인의 왕’이라고 불린다.


네비올로는 안개를 의미하는 Nebbia에서 유래한 랑게의 토착 품종으로, 이 지역 특유의 짙은 안개에 어원을 두고 있다. 강한 탄닌감과 산도를 가지고 있으며, 숙성이 진행되었을 때 특유의 우아함과 깊은 풍미로 많은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와인이다.


네비올로는 이미 중세 문헌에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부터 만들어졌지만, 지금과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달콤하거나, 불완전 발효로 만들어졌으며, 장기숙성의 개념이 없는 가볍게 마시는 와인이였다. 같은 지역에 생산되는 돌체토(Dolcetto) 품종과 큰 차이가 없었을 정도였으며, 가격도 오히려 쌌을 정도이다.


nebbiolo.jpg 네비올로 품종, 안개 낀 랑게 언덕에서 만들어낸 포도로, 검은 색보다는 약간의 보랏빛을 더 띄고 있는 포도이다.



19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귀족들과 프랑스 양조가, 루이 우다르(Louis Oudart)의 노력으로, 완전 발효의 드라이 레드 와인의 형태로 변모하였으며, 바롤로를 왕실의 외교 선물로 사용하는 등 큰 변화를 겪게 되며 지금의 형태와 명성을 가지게 된다.


이후 필록세라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바롤로 역시 큰 시련을 겪게 되지만, 20세기 중반에 제도적인 확립이 이뤄지며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반열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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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오늘의 주인공들인 ‘바롤로 보이즈’들이 등장한다. 고전 스타일 바롤로에 큰 반기를 들고, 새로운 스타일의 바롤로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고전 바롤로는 위대하지만, 너무 어려운 접근성과 지나친 장기 숙성 고수로 더 이상 발전이 힘든 스타일이였다. 이들은 조금 더 쉬우면서 국제적인 와인으로 변화를 시도하였다.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고전 스타일

- 30~50일간 긴 침용(Maceration, 포도 껍질, 씨, 줄기를 접촉하여 탄닌, 색소를 뽑아내는 작업)

- 대형 슬로베니아 오크통 사용

- 강한 탄닌으로 인해 빠른 접근이 불가

- 바롤로의 장기 숙성 스타일 강조


2. 모더니즘 스타일

- 5~7일간의 짧은 침용

- 프랑스 바리끄 (225L) 사용

- 과실 캐릭터 중심으로 접근성 강조

- 국제 시장, 비평가들에게 집중 받기 시작


바롤로의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두 스타일은 강한 충돌을 일으킨다. 일명 ‘바롤로 전쟁’.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 나오지만, 이들의 충돌은 정말 강한 충격파를 일으킨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엘리오 알타레(Elio Altare)의 ‘전기톱 사건’이다. 엘리오는 기존 문화에 대한 강한 고집과 새로운 문화에 대한 배척에 반발하며, 본인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대형 오크통들을 전기톱으로 모두 잘라버린 사건이다.


그 외, 도메니꼬 끌레리꼬(Domenico Clerico), 로베르토 보에르지오(Roberto Voerzio), 파올로 스카비노(Paolo Scavino) 등의 모더니스트들은 본인들의 철학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바롤로의 세계화에 불을 지핀다. 이들은 평론가들의 평가를 등에 업고 전 세계에 본인들의 와인을 알리기 시작한다.


domenico-clerico-alamy.jpg 故 도메니꼬 끌레리꼬의 생전 모습, 도메니꼬 끌레리꼬는 엄청난 애주가에 골초였고, 누구보다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였다.



또한 이와 반대로, 극단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이 발생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전통과 모더니즘의 특징을 섞어낸 네오 모더니즘, 네오 트래디셔널주의를 만들어냈다. 이들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3. 네오 모더니즘, 네오 트래니셔널리즘

- 세부 떼루아에 맞는 양조 스타일의 유동적 변화

-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 단일 포도밭 생산) 집중

- 바롤로의 각 세부지역별 특징에 맞는 양조

- 대형 오크 + 바리끄 혼용 사용

- 균형감을 강조

- 초 정밀 농법을 통한 생산량 통제, 품질 상승


이들의 등장은 세계화에 집중되었던 바롤로의 순수성을 다시 살리자는 움직임이였다. 루치아노 산드로네(Luciano Sandrone), 지 디 바이라(G.D Vajra), 알도 꼰떼르노(Aldo Conterno) 등의 생산자들은,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바롤로의 순수성을 그대로 살리되, 모더니스트들의 특징을 함께 결합하여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luciano-sandrone-e1510797840109-900x600.jpg 故 루치아노 산드로네, 그가 선보인 와인의 밸런스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리고 떼루아에 대한 집착은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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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변증법으로 잘 알려진 ‘정,반,합’은 대립, 충돌, 새로운 종합을 통한 변화와 발전을 의미한다. 철학적인 개념이지만 역사, 정치, 예술, 와인과 같은 문화사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이다. 바롤로의 발전은 이 변증법을 잘 따르고 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조합으로 새로운 현실이 등장하였으나, 최근 또 다른 실험주의 네비올로 생산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네비올로가 가지고 있는 특징, 탄닌과 산도가 높지만 피노 누아와 같은 우아한 과실미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엔조 볼리에띠(Enzo Bollietti)와 같이 젊은 생산자들은 네비올로 100%의 전통방식 스파클링을 만들거나, 네비올로에 아파시멘토(Appassimento, 반 건조 상태로 포도를 말려 와인을 양조하는 기법)을 적용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네비올로의 재 발견을 시도하고 있다.


와인이 하나의 유기물이듯, 생산자들도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간 흐름의 중간에서 와인을 즐기고 있다. 지난 글에도 추천하였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우리가 마시는 이 와인들이 역사책에 수록될 날도 있을 것이다. 와인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사와 시간이다. 그 변화를 함께 알아가면서 와인을 마신다면, 그 재미도 더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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