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와인

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와인

by 와인파는총각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영화 대부, 지옥의 묵시록의 감독으로 유명하며, 미국 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감독이다. 영화 예술, 제작 시스템, 감독 작가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칸 황금종려상 2회, 아카데미 5회, 골든 글로브 2회 수상에 빛나는 명 감독이다.


갑자기 와인 이야기에 코폴라 감독이 나오는 것에 약간 의아할 것이다. 그가 와인을 직접 다루는 작품을 찍은 적도 없고, 그의 작품에서 특정 술이 언급되는 장면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영화 감독임과 동시에, 캘리포니아에 다수의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는 와인 생산자이기도 하다.

코폴라 감독.jpg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블록버스터가 시작되는 와중에도 본인의 작가주의를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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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폴라는 그의 성(Family name)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계 집안인 만큼, 항상 가족이 그의 첫번째 가치관 이였다. 그를 스타로 만든 대부 트릴로지를 보면, 마피아 세계를 담아낸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중심은 바로 가족이다.


코폴라 가문은 항상 저녁에 다 같이 모여 기도를 바치며 식사하였고, 식탁에는 항상 와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을 딴 와이너리를 설립하면서 ‘와인은 항상 식탁에 있어야 한다.’라는 철학을 내세웠다. 그의 와인에는 그의 일상뿐 아니라 가족,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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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코폴라는 나파 밸리에 위치한 잉글눅(Inglenook) 와이너리의 지분 일부를 매입한다. 1879년 나파 밸리의 소 지역인 러더포드(Rutherford)에 설립된 이 와이너리는 나파 밸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와이너리이다.


우선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개념을 직접 가져왔다. 당시 나파 밸리의 생산자들은 포도를 사오거나, 와인을 대용량으로 판매하는 등 표준화된 생산이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잉글눅은 주변 필지를 계속 사들이면서 대규모의 포도 재배 단지(Estate)를 만들었다. 그리고 1880년대에 주변에 샤토(Chateau, ‘성’이라는 뜻으로, 와이너리가 직접 포도 재배, 와인 양조, 숙성, 병입까지 행하는 형태, 대 저택과 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와 같은 이름을 짓는다.)를 만들기 시작한다. 단순한 와인 제조 시설이 아닌, 품질 시스템과 브랜딩을 직접 시행하면서 명품 이미지를 와인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와이너리의 건립뿐 아니라, 자체 병입(Estate Bottling)의 도입은 그 자체로도 혁신적인 움직임이였다. 당시는 대량 생산 이후 다른 곳에서 병입을 하는 것이 매우 흔했다. 품질과 일관성 유지가 그만큼 힘들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잉글눅은 자체 병입을 매우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로 인하여 생산자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일관된 품질 관리가 가능해졌다.


gallery-large_07-675x450.jpg 잉글눅의 와인들, 이 와이너리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파 밸리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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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금주령 이후 잉글눅은 대 위기를 맞는다. 포도 재배는 유지하였으나, 브랜드와 품질, 소유 구조는 완전 붕괴되었고, 간신히 이름만 유지하게 된다. 이후 수십년간 잉글눅은 영혼 없는 하나의 생산자에 불과했다. 코폴라는 1975년부터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하여 단계적으로 매입을 시작한다. 무려 2011년까지 이어진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새로운 와인의 창조가 아닌 잃어버린 잉글눅의 복원이였다.


이 장기간의 프로젝트 중에서 코폴라도 재정적 위기를 맞게 된다. 1979년 발표한 ‘지옥의 묵시록’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나, 너무 많은 지출이 문제였다. 당시 이 영화는 약 5개월의 일정으로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였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필리핀 촬영 중 태풍이 와서 세트가 무너지지 않나, 주연 배우를 변경하였더니 갑자기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나, 군 헬기 촬영 협조가 무산되지 않나 각종 악재가 덮치기 시작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파라마운트 등 당시 메이저 생산자들의 심한 간섭을 거부하면서, 본인의 제작사가 모든 비용을 떠안게 된다. 당시 집, 제작사, 와이너리 모두가 저당으로 잡히는 엄청난 모험을 시도하게 된다. 영화는 성공을 거뒀으나, 너무 많은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jpg 지옥의 묵시록 촬영 당시 코폴라 감독, 그는 '매 순간이 전쟁터 같았다'라고 회고하였다.



이후 코폴라는 영화만으로는 예술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잉글눅에 이어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이너리를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2006년에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의 포도밭을 매입하고 본인의 이름의 와이너리를 만들어냈다.


코폴라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다. 영화적 세계관을 접목시키면서 대중적인 접근이 가능한 와인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또한 와이너리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여러 시설들을 설치하였다. 와이너리를 하나의 테마 파크로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와이너리로 기록이 남아있다.


대중성뿐만 아니라 프리미엄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함께 병행하였는데, 소노마 카운티와 나파 밸리 내에서 생산된 프리미엄 와인에 아내의 이름인 ‘엘레노어’를 붙여 출시하게 된다. 라벨에는 엘레노어가 좋아한 비네트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와중에 든든히 옆을 지켜줬던 아내에 대한 헌사와 사랑이 와인과 라벨에 잘 드러나 있다.


엘레노어.jpg 코폴라가 생산한 엘레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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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는 감독 작가주의를 잘 담아냈다. 동 시대의 마틴 스콜세지나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관객 중심의 작가주의가 아닌, 본인이 확실히 담아내고 싶은 메세지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코폴라가 평단의 극찬과 반대로 관객들의 호응을 별로 받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인으로 접근했을 때, 그의 생각은 바뀐다. 그가 와인에 담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가족이다. 누구나 즐기기 쉬운 와인들을 만들어냈으며, 그 와인들에 영화라는 이미지를 넣었다. 모든 식탁에 와인이 있기를 바란 그의 철학은, 비록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와인을 통해 모두가 그 가치를 지키길 바랬던 것이 아닐까?


코폴라 와이너리.jpg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와이너리, 와이너리가 아니라 하나의 테마 파크 같다. 그도 이런 컨셉을 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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