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와인의 대명사로의 변화, 그 가운데 선 여성들
현대에 이르러 여성의 사회생활이 활발해진 계기는 19세기부터 시작된다. 여성에게도 고등 교육의 기회가 동일하게 부여되면서 이들의 능력이 남성을 점점 앞서기 시작한다. 전문직 여성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세계 1,2차 대전으로 인해 남성들의 노동력 공백을 여성들이 메꾸면서 그들은 본격적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나서게 된다.
와인업계도 마찬가지였다. 17세기 이전만 해도 와인 양조는 남성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와인 양조업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다. 토지는 부, 신분, 가문의 역사이기도 하다. 장자 승계가 원칙이였던 유럽 역사상 여성이 산업에 전면에 등장하기 매우 어려웠다.
오랜 기간동안 유지되었던 길드 시스템 역시 여성의 진출을 막은 원인이기도 하다. 길드는 철저히 남성만 가입이 가능했으며, 아버지에서 아들로 기술이 이전되면서 철저한 남성 위주의 산업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내에서도 프랑스 상파뉴(Champagne)에서는 여성 혁신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상파뉴의 근간을 흔들었을 뿐 아니라, 지금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 진정한 우먼 파워를 보여줬다. 한 명씩 그들이 어떤 업적을 거뒀는지 이야기해보자.
우리에겐 뵈브 끌리꼬(Veuve Clicquot)로 잘 알려진 바브 니콜은 상파뉴 최초의 여성 경영자이자 생산자로 잘 알려져 있다. 1805년 남편인 프랑수아 끌리꼬가 사망하자마자 그녀는 와이너리의 운영을 직접 맡게 된다. 그녀는 단순히 기업을 운영한 것이 아니다. 당시의 끌리꼬 하우스가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빠른 혁신을 시도한다.
그녀는 우선 상파뉴 양조 시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한 ‘리들링 테이블(Riddling Table, 와인 병을 역 대각선으로 끼워 병 입구에 찌꺼기를 모이게 하는 테이블)’을 개발한다. 이를 통해 데고르주멍(Disgorgement, 순간적으로 캡 입구 부분을 얼린 후 개봉하여 찌꺼기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작업)까지의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두번째로 그녀는 최초로 빈티지 상파뉴를 만들어냈다. 당시에 해마다 다른 기후 컨디션과 포도 품질로 인하여 빈티지 상파뉴의 양조가 불가하다고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바브 니콜은 이 관념을 뒤집기를 원했고, 최초로 단일 빈티지로만 상파뉴를 최초로 만들었다. 상파뉴도 빈티지별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제 상파뉴에 대한 개념을 바꿨다. 기존에는 상파뉴에 색소를 주입하는 식으로 로제를 만들었으나, 레드와 화이트를 혼합해서 만드는 방식으로 최초의 블렌디드 로제 상파뉴를 만들어냈다. 이는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자칫 무너질 수 있는 끌리꼬 하우스를 전 세계적으로 알렸으며, 그녀의 브랜드인 ‘뵈브 끌리꼬’를 국제적인 럭셔리 술로 만들게 된다. 상파뉴를 단순한 지역의 술이 아닌 예술과 비즈니스의 개념으로 이끌어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루이스 포므리 역시 바브 니콜과 비슷한 환경에서 상파뉴 하우스를 일으킨 인물이다. 1860년 남편의 사망하자, 와인과 관련 없는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상파뉴 제조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가문의 이름인 포므리를 상파뉴 전용 브랜드로 변모시킨다.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브륏(Brut) 스타일의 도입이다. 당시 상파뉴는 달고 과실 향이 매우 강했다. 루이스는 당시 영국에서 시작된 드라이 스타일의 유행에 집중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드라이하면서 산도가 높은 와인들의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상파뉴에도 이 스타일을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상파뉴를 만들 때 데고르주멍을 완료하면 그만큼 와인이 비게 된다. 그 곳을 와인과 설탕을 섞어 채우게 된다. 이를 도자주(Dosage)라고 하는데, 루이스는 여기에 1L당 7g 이하로 설탕을 첨가하는 브륏 스타일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짧은 시간에 이 스타일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며 포므리를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 상파뉴로 만들어냈다.
루이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상파뉴 내 120개의 채석장을 매입하여 그곳을 모두 상파뉴를 위한 셀러로 변신시켰다. 일정한 습도,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숙성 장소를 만들어 내면서, 수많은 상파뉴 하우스들의 표본이 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시대의 기준을 뛰어 넘어, 직원을 위한 복지, 퇴직금 제도를 만들어 체계적인 경영자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007 시리즈를 많이 봤다면 한번쯤 들어본 제임스 본드의 볼랭저 역시 우먼 파워로 혁신을 일으킨 대표적인 예이다. 1941년 주인공 릴리 볼랭저 역시 남편을 전쟁 중 잃게 된다. 그녀는 직접 경영에 나서면서, 세계 2차 대전과 전후 혼란을 빠르게 수습한다. 그녀의 헌신으로 볼랭저는 기존의 명성을 꾸준히 지킬 수 있게 된다.
이후 릴리 역시 볼랭저의 고급 이미지를 한층 더 키우기를 원했으며, 그 정점은 1961년 R.D.(Recently Disgorged) 빈티지의 출시로 나타난다. 상파뉴는 법적으로 18개월의 2차 숙성 기간을 거치게 된다. 당시 일반적인 스타일은 18개월 이후 즉시 데고르주멍을 실시한 뒤 병에서 오랜 숙성을 거쳐 출시가 되었다. 여기서 릴리는 큰 변주를 주게 된다. 2차 숙성을 길게 가져가는 대신, 출시 직전에 바로 데고르주멍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파뉴에 조금 더 효모 숙성 풍미를 강하게 녹여내고, 이것이 과실 캐릭터와 섞일 수 있도록 하여 복합미를 엄청나게 끌어 올렸다.
단숨에 R.D.는 많은 상파뉴 하우스의 기준이 되었으며, 다시 한번 볼랭저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특히 영국에서 볼랭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게 된다. 영국 왕실의 공식 인증을 받으면서 전 세계가 사랑하는 생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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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3명 이외에 많은 여성 생산자들의 상파뉴의 큰 획을 그었다. 수잔 고세(Suzanne Gosset), 캐롤 뒤발 르로이 (Carol Duval Leroy) 등 굵직한 역할을 수행한 여성들이 매우 많다. 많은 여성들의 노력으로 상파뉴는 단순한 지역 특산품에서 전세계가 즐기는 럭셔리 상품이 되었다. 그들은 와인의 스타일뿐 아니라 품질 관리, 브랜드화, 마케팅까지 모든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였다.
그들의 영향력은 비단 상파뉴에 머무르지 않았다. 여성이 가업을 물려받아 성공한다는 전례를 만들며 많은 여성 생산자, 경영자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현재 많은 여성들이 생산자, 오너, 경영자로 근무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였다.
물론 상파뉴의 상황은 다른 곳들과는 달랐다. 상파뉴는 토지가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대부분 자본, 상업, 브랜드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땅이 없어도 포도를 계약으로 구매한 뒤 와인을 만드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또한 위의 3명은 모두 과부이다. 재산 관리권이나 경영권을 세상을 떠난 남편으로부터 쉽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노력을 쉽게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보여준 혁신과 글로벌적인 비즈니스는 너무나도 훌륭하였으며, 현재까지도 그 명맥과 이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가정에 충실한 아내였으며, 누군가의 엄마였으며, 리더였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업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