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비틀어낸 와인 이야기
마크 밀러, 데이브 기븐스의 그래픽 노블을 기반으로 한, 매튜 본 감독의 블랙 코메디 스파이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독특한 캐릭터의 빌런, 전통적인 007류의 스파이물을 과감히 비튼 현대적 감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이다.
필자가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 장면이 있다. 주인공인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가 악당인 리치몬드 발렌타인(사무엘 잭슨 분)을 처음 만나 저녁 회동을 가지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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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은 미국 출신 답게 자유분방한 캐릭터이다. 공식적인 자리임에도 스니커즈에 가죽 야구모자를 쓰고 나타나질 않나, 영국 신사로 대표되는 해리에게 저녁 식사로 맥도날드 치즈버거 세트를 선보이지 않나, 도무지 겉잡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아주 날카로운 듯한 대화가 오고간다.
미국을 대표하는 맥도날드가 처음 나올 때, 발렌타인은 치즈버거와의 페어링으로 ‘1945년 샤또 라피트 로칠드’를 제안한다. 세상에나. 햄버거에 샤또 라피트 로칠드라니. 여기에는 비유가 섞여 있다.
샤또 라피트 로칠드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메독 지역 1등급 와인이다. 1855년 나폴레옹 3세의 신 제정시대 당시, 파리에서 만국박람회(Expo의 전신)이 열린다. 여기에 나폴레옹 3세는 상공회의소에 지시하여 보르도 메독 지역의 최고 와인에 대한 등급 체계를 지정하게 된다.
상공회의소가 주최가 되다 보니 국가 기관의 주도가 아닌 당시 와인을 판매하는 중개상인(Negociant, 네고시앙)의 주도로 이뤄진다. 그렇다 보니 당시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61개 와이너리에 대해서 1~5 등급으로 정리를 하게 된다. 이를 바로 그랑 크뤼 클라쎄(Grand Cru Classé)라고 부른다.
첫 등급 지정 당시, 1등급으로 4개 와이너리를 지정한다. 이 중 ‘샤또 라피트 로칠드’도 포함된다. 그 만큼 품질을 오랫동안 인정받은 유럽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해이다. 유럽 국가들은 전쟁 초반 독일에게 밀리는 등 매우 큰 고전을 하였으나, 미국의 본격 참전으로 전세를 뒤집고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맥도날드에 1945년 샤또 라피트 로칠드를 붙인다는 것은, ‘너희가 만약 미국이 없었으면 과연 이길 수나 있었을까?’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날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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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해리는 바로 맞수를 놓는다. 후식으로 트윙키(Twingkies)에 1937년산 샤또 디켐을 제안한다. 트윙키는 보통 백인 행세를 하는 아시아인들을 향해 비꼬는 말 중 하나이다. 이를 이야기하면서 흑인이지만 백인보다 더 인종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는 발렌타인을 비꼰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샤또 디껨을 추천한다. 보르도의 소떼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이 와인은 특수한 케이스로 만들어진 디저트 와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디저트 와인이다.
소떼른 지역은 매년 여름마다 특수한 안개를 만들어 낸다. 이 안개의 영향으로 포도에는 특수한 곰팡이가 피게 된다. 학명으로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고 불리는 곰팡이는 조건에 따라 포도에게 회색병을 옮기지만, 습도가 매우 높은 지역에서는 포도알 겉 부분에 발생된다. 이 곰팡이는 포도 껍질을 파고 들어 과육 부분에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수분을 빨아들여 날려버린다. 이렇게 당분이 응축된 포도를 수확하여 만들기에, 특유의 벌꿀과 같은 단맛이 나게 된다. 그리고 매우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해진다. 이를 우리는 귀부 와인(Noble Rot) 이라고 부른다.
1937년은 미국 역사에 가장 최악의 기록이지 않을까 싶다. 바로 더블 딥(Double Dip)이 발행된 해였다. 1929년 1차 대공황이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 딜 정책으로 효과로 잠시 물러가게 되면서, 산업 내 생산, 고용이 빠르게 회복이 된다. 이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은 대공황의 종식을 선언했다. 이에 취해서 그런지, 정부와 연준은 빠른 긴축을 결정한다. 갑자기 실마리가 보이던 경제는 이와 동시에 심각한 역주행을 시작한다. 산업 생산은 30% 이상 하락했으며, 다우지수는 반토막이 나게 된다.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는 다시 긴축을 취소하고 공공사업을 재개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어느 정도의 회복을 진행하게는 되었으나 완벽히 회복하지 못한다. 점점 신 자유주의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을 때, 세계 2차 대전이 발생한다. 미국의 역사를 바꿀 대규모의 군수 지출이 있고 나서야 이 마수에서 겨우 회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1937년 샤또 디켐을 제안했다는 것은, 마치 ‘너희는 우리가 전쟁에서 버티지 못했다면, 너희가 지금처럼 강대국이 될 수는 있었을까?’ 라는 메시지로 맞불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샤또 디켐처럼 우린 아직 품위를 유지하고 있음을 한번 더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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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 2편에 나온 소믈리에 장면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낯 익은 와인과 관련된 무언가를 볼 수 있어 매우 설렌 장면이였으나, 역사적인 사실과 와인 추천 이유를 함께 연결해본다면 매우 좋은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영화에서 와인이 비유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