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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은행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탐하다

글로벌 은행이 디지털 자산 파트너십을 통해 금융시장 재편

by 꽃돼지 후니

전통적인 은행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외면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디지털 자산 인프라에 가장 많은 자본과 전략을 투입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기간 동안, HSBC, 골드만삭스, SBI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345건의 블록체인 관련 거래에 직접 참여했다. 결제 인프라부터 수탁 솔루션, 토큰화된 금과 같은 실물 자산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넓고 깊다. 이른바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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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 인사이트, 영국 블록체인 기술센터(UK CBT), 그리고 리플이 공동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및 디지털 자산에 대한 금융권의 누적 투자는 1,000억 달러를 넘었다. 단순한 투기가 아닌, 결제와 대차대조표 관리, 그리고 온체인 자산 운용을 위한 인프라 투자다.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재무 책임자의 90% 이상이 2028년까지 블록체인이 금융에 중대하거나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투자 역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집중됐고, 싱가포르·프랑스·영국이 뒤를 이었다. 대표적인 투자은행으로는 일본의 SBI 그룹, 미국 골드만삭스, 태국 SCB 10X 등이 언급됐다.

메가 라운드 투자 분야로는 ▲기관용 인프라(거래·스테이킹·토큰화, 27%) ▲결제(24%) ▲디지털 자산 수탁(21%)이 주를 이뤘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글로벌 은행(G-SIB)들도 블록체인 생태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들은 전체 인수보다는 파트너십 또는 공동 투자 방식을 선호하며, 크립토 거래소와의 협력도 활발하다.

보고서는 “G-SIB의 참여는 기술의 상업적 가능성과 규제 성숙도를 함께 보여주는 지표”라고 분석했다.

G-SIB 가운데 시티그룹과 골드만삭스는 각각 18건, JP모건과 미쓰비시UFJ금융그룹(MUFG)은 각각 15건의 투자를 진행했다. 이들은 2020~2024년 기간 동안 총 106건의 블록체인 기업 투자를 집행했으며 이 중 14건은 메가 라운드였다.


보고서에서 향후 디지털 자산의 핵심 흐름으로 ‘토큰화’를 지목했다. 래리 핑크 블랙락 CEO는 토큰화를 다음 세대 시장 흐름으로 언급했으며,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토큰화 자산 시장이 2033년까지 18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내 지역 및 커뮤니티 은행 등 소규모 금융기관들도 조심스럽게 디지털 자산 진입을 모색 중이다. 이들은 자체 기술 구축보다는 핀테크 기업과의 협업, 산업 유틸리티 플랫폼 참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 2022년 미국 커뮤니티 은행의 11%는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 도입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전통 금융권은 블록체인을 통해 자산 수탁, 토큰화, 결제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 진입하고 있다. HSBC는 금을 토큰화한 플랫폼을 운영 중이며, 골드만삭스는 GS DAP이라는 블록체인 기반 결제 툴을 통해 금융 서비스의 24시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SBI는 양자 저항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며 미래 금융 시스템의 보안성을 선도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기관의 대다수가 소비자 대상 암호화폐 거래보다는, 인프라 중심의 접근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블록체인 기술이 일반 투자자들의 '코인 투자'라는 인식을 넘어, 전통 금융의 백본을 재편하는 기술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스테이블코인, 토큰화된 국채 등과 같은 고정가치형 디지털 자산이 금융의 핵심 수단으로 채택될 조짐도 뚜렷하다.


이러한 세계적 변화에서 한국 은행들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미 국내에서도 주요 시중은행들이 KRW 기반 스테이블코인 실험, 블록체인 기반 국제 결제 인프라 연구, 디지털 자산 수탁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적 명확성 부족, 기술 검증 지연, 대국민 인식 부족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블록체인 인프라와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주도권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완전히 넘어갈 수 있다.


리플 보고서가 강조한 것처럼, 다음 변화의 물결은 과대광고나 소매 투자 열풍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금융의 '파이프'를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이프를 누가 먼저, 더 탄탄하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금융 산업의 판도가 바뀌게 된다. 한국의 금융권이 이 경쟁에서 살아남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그 결정적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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