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0억’의 역설: 미국은 지금 교육을 재설계 중
요즘 미국에서 인공지능(AI) 분야의 중견급 인재라면 연봉 30억은 우스운 숫자다. 700만~1,000만 달러의 패키지가 논의되고, 구글·마이크로소프트·오픈AI·엔비디아는 이들을 두고 실시간 ‘인적 자본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1만 명, 2만 명의 대규모 해고 뉴스가 함께 들려온다. MS는 사상 최대 수익을 내면서도 1만5천 명을 정리했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 흐름의 진짜 이름은 “재편”이다.
단순히 줄이는 게 아니다. 무의미한 역할, 자동화로 대체 가능한 인력은 과감히 없애고,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기술이 중심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해 생각하고 결합하고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이 변화의 무게는 학교로, 교실로, 교육정책으로 내려왔다. 미국은 이제 교육을 실험하고 있다. 아니, 교육 자체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미국 데이터 분석 기업 팰런티어는 대놓고 말했다. “미국 대학은 고장 났다.”
그들은 애매한 입시 기준, 실력보다 외형을 평가하는 서류전형, 수업보다는 ‘브랜딩’에 더 집중하는 캠퍼스 문화에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대안을 만들었다. 고졸자 대상 ‘실력주의 펠로십’. 지원자들은 코딩 과제를 해결하고, 매달 5400달러의 급여를 받으며, 팰런티어 본사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다. 프로그램을 마치면 ‘팰런티어 학위’가 주어지고, 정규직 채용까지 연결된다.
대학을 통하지 않아도, AI 시대에 필요한 문제 해결력을 갖춘다면, 기회는 주어진다는 선언.
팰런티어는 교육을 "자격증 생산 공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과정으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은 이렇게 말했다. “내 아이는 대학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AI는 이제 자녀보다 똑똑하고, 부모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요약하며, 친구보다 더 참을성 있게 설명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암기’는 이제 AI가 대신하고, ‘이해’는 함께 나누며, ‘생각’은 도와주는 시대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미국 오하이오주는 모든 공립학교가 AI 활용 계획을 수립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교사들은 ‘AI와 함께 수업하기’ 훈련을 받고 있고, 오픈AI는 40만 교사와 협력해 전국 AI 교육 아카데미를 만들고 있다.
미국은 교사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고 있다. AI가 일상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게 교사들이 설계자, 안내자가 되도록 돕고 있다.
AI 반도체를 지배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모든 아이에게 AI 튜터를 붙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단순히 기술을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방식은 없을까?”, “그걸 그림으로 설명해볼 수 있겠니?”라는 질문을 매일 던질 수 있는 AI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AI는 아이가 자기를 표현하게 만들고, 창의력을 키우게 하며, 사고를 깊게 할 수 있는 존재다.
AI는 단순히 ‘공부머신’이 아니라, 질문을 자극하는 동료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젠슨 황의 메시지에 담겨 있다.
한국은 아직 ‘디지털 교과서 인정 여부’를 두고 법적 논쟁 중이다. 민감한 교육 이슈가 정치화되고, 교육부는 조심스러우며, 교사 단체는 일단 반대부터 외친다.
하지만 핵심은 ‘어떤 도구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아이를 길러내고 싶은가’에 대한 교육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AI를 교사의 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보완재, 도우미, 촉진자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 교육이 기술 도입에 주저하는 사이, 미국과 중국은 “AI와 협업할 수 있는 인간”을 기르기 위해 전면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핀란드는 2018년부터 성인 대상으로 ‘모두를 위한 AI’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AI를 사용하는 법이 아니라, AI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인간은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과학, 윤리, 정치, 노동 등 다양한 관점이 통합된 인문 중심 교육이다.
싱가포르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코딩과 AI 이해를 포함한 ‘컴퓨팅 리터러시’ 수업을 운영 중이다. 동시에 교사를 ‘AI 활용 전문가’로 재교육하고, 평가제도 전반도 바꾸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점수가 아니라 ‘학생이 얼마나 질문할 수 있는가’, ‘협업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화했는가’ 같은 항목들이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시간이다.
“AI를 어떻게 가르칠까?”가 아니라, “AI 시대에 어떤 인간이 필요한가?”이다. 그리고 그 인간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가 교육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대학이 더 이상 만능 자격증이 될 수 없고, 입시라는 단 하나의 레이스가 정답이 될 수 없는 시대다. 아이들은 AI와 함께 자라날 것이고, AI 없이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교육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일 것이다. 교육은 기술보다 먼저 혁신해야 한다. 이미 마법은 나왔다.
이제는 그 마법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