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벤치마킹에서 금융 생태계 혁신으로
이제 그들은 블록체인 위의 ‘코드(code)’, 그리고 디지털 자산 인프라와 경쟁해야 한다.
과거 수십 년간 금융의 혁신은 기술회사가 주도했고, 은행은 이를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기술이 금융의 본질—신뢰, 속도, 비용—을 재정의하면서
은행이 직접 이 디지털 금융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들어가는 흐름이 전 세계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글로벌 대형 은행인 Citi, JP Morgan, HSBC가 보여준 블록체인 기반 실시간 결제 서비스는 단순한 시범사업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구조 전환의 신호탄이다.
한국 은행들 역시 이 변화를 목격하고 있으며 2026년은 그들이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자산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Citi는 ‘Citi Token Services’를 통해 24/7 실시간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기존의 카드결제, ACH, 전신송금처럼 중개은행을 거치지 않는다.
폐쇄형 블록체인 위에서 예금이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되어 언제든 실시간 송금과 유동성 관리가 가능하다.
이 서비스는 단순한 송금 솔루션이 아니다.
기업이 사전에 유동성을 확보할 필요가 없고, 거래 당일 결제가 즉시 완료된다.
이는 시간의 혁신이 비용과 신뢰의 혁신으로 연결된 사례다.
은행은 기존 인프라를 유지하면서도 블록체인을 내재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금융 전환의 현실적 모델’을 제시한다.
JP Morgan은 ‘Kinexys’(구 JPM Coin, 폐쇄형 블록체인)와 ‘JPMD’(개방형 블록체인) 두 플랫폼으로 예금을 토큰자산으로 전환, 실시간 결제와 유동성 관리 지원한다.
Kinexys는 내부 결제망으로 기업 고객의 자금 운용과 유동성 관리에 활용, JPMD는 토큰을 직접 거래 상대방에 전송할 수 있고, 은행 외부 결제 확장 사례로 시범 운영 외부 기업과의 실시간 자금 이동을 지원한다.
특히 JPMD는 예금을 토큰화해 거래 상대방에게 직접 전송할 수 있게 설계되어,
은행 간 네트워크의 경계를 허문 첫 사례로 평가된다.
HSBC는 ‘TDS’를 통해 법정화폐 예금을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전환했다.
2025년 9월, Ant International은 HSBC TDS를 이용해 홍콩과 싱가포르 간 실시간 거래를 완료했다.
이는 글로벌 무역금융에서 ‘분 단위 결제’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이들 은행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을 경쟁상대가 아니라 기반 기술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즉, 기존 은행망과 블록체인을 결합해 토큰화된 예금(Tokenized Deposit)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스테이블코인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금융 인프라가 디지털화된 나라다. 모바일 결제, 간편 송금, 인터넷은행의 성공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결제와 스테이블코인 활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국내에서는 블록체인 결제에 대한 법제화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금융당국의 입장은 “혁신을 인정하되, 위험은 통제한다”는 신중한 기조다.
하지만 글로벌 흐름은 이미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Citi, JP Morgan, HSBC가 ‘규제 안에서의 혁신’을 보여준 만큼, 한국도 이제는 ‘금융 규제의 틀 안에서 블록체인을 제도화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이는 단순히 신기술 도입이 아니라, 금융 산업의 경쟁력과 국가 경제의 구조를 좌우할 문제다.
한국 은행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지금은 ‘관망’의 단계지만, 2026년부터는 ‘직접 관여’의 단계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초기에는 글로벌 은행 사례를 벤치마킹(bench-marking) 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에서 시범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1️⃣ 해외 송금 및 무역금융
-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해외 송금 실험이 우선 도입될 것이다.
- 기존 스위프트(SWIFT)망보다 빠르고 저비용이며, 중개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
2️⃣ 국내 결제 인프라와의 연계
- 은행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기보다 핀테크 기업과 협력해 결제 API, SaaS 형태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 이를 통해 디지털화폐 기반 B2B 결제, 법인 자금 이체 등이 현실화될 것이다.
3️⃣ 커스터디(수탁) 서비스 및 디지털 자산 관리
-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STO) 수탁·관리 서비스를 확대하며 은행의 자산관리 기능을 블록체인과 연결한다.
이러한 시도는 단발적이 아니라 스테이블코인이 ‘하나의 결제 수단’에서 ‘금융 생태계의 표준’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일부다.
스테이블코인 접근의 1단계는 결제와 송금이다. 그러나 2단계는 훨씬 광범위하다.
은행들은 자금운용, 자산관리, 신탁, 투자상품, 심지어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인프라와의 연계까지
스테이블코인 기술을 확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의 경쟁력은 ‘브랜드 신뢰’에서 ‘네트워크 신뢰’로 이동한다.
즉, 블록체인이라는 신뢰 구조 위에서 누가 더 빠르게, 더 안전하게, 더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승부처가 된다.
한국 금융권의 장점은 이미 강력한 IT 인프라와 고객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강점을 디지털 자산 인프라로 확장하는 순간,
한국의 은행들은 아시아 금융 네트워크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
그 시작은 해외 송금과 기업 결제에서 출발하지만, 곧 금융산업 전 범주로 확산될 것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이미 블록체인 기반 결제와 유동성 관리, 토큰화 예금 서비스를 통해 금융의 구조를 새롭게 쓰고 있다. 한국 금융권이 이 흐름을 따라잡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금융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한 필연적 대응이다.
결국, 한국 은행의 스테이블코인 접근은 “디지털 자산 시대의 문을 두드리는 첫 번째 행동”이며,
향후 10년간 한국 금융산업이 어떤 위치에 설지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