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디지털 머니’라고 하면 스테이블코인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USDC, USDT,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쟁까지. 최근의 담론은 거의 스테이블코인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의 큰 흐름을 보면, 이 인식은 지나치게 좁다.
디지털 머니는 스테이블코인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은행, 자산운용사, 중앙은행, 크립토 기업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복수의 디지털 화폐 층위가 동시에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
이 변화의 전체 지도를 보여주는 개념이 바로 ‘디지털 머니 매트릭스(Digital Money Matrix)’다.
그리고 이 매트릭스는 한국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담고 있다.
디지털 머니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기술이 아니다.
발행 주체와 신뢰의 원천이다.
글로벌 논의에서는 디지털 머니를 크게 두 축으로 나눈다.
민간(Private Sector)
공공(Public Sector)
그리고 이 안에서 다시 다섯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된다.
기존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JPMorgan의 JPM Coin, Citi Token Services가 대표적이다.
신뢰의 원천: 은행의 대차대조표
규제: 기존 은행법·금융규제
용도: 기업 간 결제, 도매 결제, 증권 동시결제(DvP)
이는 ‘새로운 화폐’라기보다, 은행 인프라의 디지털 업그레이드에 가깝다.
단기 국채·레포 등 안전자산으로 구성된 MMF를 토큰화한 형태다.
신뢰의 원천: 국채·단기채
규제: 증권법
용도: 온체인 재무관리, 고품질 담보
블랙록, 프랭클린템플턴이 이미 실험을 넘어 상용 단계에 들어섰다.
가장 익숙한 형태다.
신뢰의 원천: 준비자산(현금·국채)
규제: 전자화폐법 또는 전용 스테이블코인 규제
용도: 글로벌 결제, 디파이, 웹3, 송금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머니 매트릭스의 ‘허브’에 가깝지만, 전부는 아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처럼 특정 자산에 고정되지 않는 디지털 자산이다.
신뢰의 원천: 시장 수요
용도: 가치 저장, 네트워크 구동, 투자
이는 결제 수단이기보다 자산 계층(asset layer)에 가깝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화폐다.
신뢰의 원천: 국가 신용
용도: 금융 안정성, 통화정책, 금융포용
현재 130여 개 국가가 검토·파일럿 단계에 있다.
이 매트릭스가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디지털 머니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
각각의 목적과 사용처에 따라 병존한다.
기업 간 결제에는 토큰화 예금이 적합하고
글로벌 송금과 웹3에는 스테이블코인이 강하고
통화정책에는 CBDC가 필요하며
자산 운용과 담보에는 토큰화 MMF가 효율적이다
이것은 ‘승자독식’의 구조가 아니라, 역할 분화의 구조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사는 더 이상 “이게 되나?”를 묻지 않는다.
“어디에 쓸 것인가?”를 묻는다.
JPMorgan, Citi, HSBC는 토큰화 예금을 실제 결제에 사용하고 있고
BlackRock과 Franklin Templeton은 온체인 펀드를 출시했으며
Circle과 Paxos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규제 안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NYSE는 24시간 토큰증권 거래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이 모든 것은 디지털 머니가 ‘실험’ 단계를 넘어 ‘인프라’ 단계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기술적으로 뒤처진 나라가 아니다.
은행 IT
결제 인프라
블록체인 기술
핀테크 경험
모두 세계 상위권이다.
그러나 디지털 머니를 제도적으로 다룰 수 있는 틀이 부족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논쟁에 머물렀고
STO는 2026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된 상태
토큰화 예금이나 펀드는 논의조차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 왔다.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스테이블코인 규제 가시화.
이 흐름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기업은 단순 투자자가 아니라 활용 주체가 될 수 있다.
기업 재무에 토큰화 MMF 활용
글로벌 사업에서 스테이블코인 결제
실물자산을 STO로 유동화
AI·머신 이코노미 결제에 디지털 머니 적용
이때 중요한 점은 하나다.
디지털 머니를 ‘코인’이 아니라 ‘도구’로 보는 관점 전환
디지털 머니의 미래를 스테이블코인 하나로 설명하는 순간, 전략은 얕아진다.
앞으로의 금융은 단일 화폐가 아니라 다층적 디지털 머니 시스템 위에서 작동한다.
“디지털 머니”는 스테이블코인만이 아니라,
은행/자산운용사가 만드는 토큰화 예금·펀드,
중앙은행이 만드는 CBDC,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까지 모두 포함하는 큰 틀이라는 것.
각각 뒷받침 자산(Backing), 규제(Regulation), 수익 구조(Yield), 사용자(User), 활용 분야(Applications) 가 서로 달라서, 기업 재무, 크로스보더 결제, 디파이, 통화정책 등에서 어떤 툴을 쓸지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들이 블록체인이라는 공통 레일 위에서 역할 분담을 하게 된다.
한국이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어떤 디지털 머니를, 어떤 산업에, 어떤 속도로 연결할 것인가다.
디지털 머니는 스테이블코인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먼저 이해하는 나라와 기업이, 다음 금융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