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트럼프 내방이 남긴 월가의 신호
2월 10일 매일경제신문 주최로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제1회 월드크립토포럼’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은 에릭 트럼프(월드리버티파이낸셜(WLFI) 창업자)의 메시지는 단순한 기술 낙관론이 아니었다.
참고로 WLFI의 비즈니스 모델은 “달러·부동산·콘텐츠 등 자산을 블록체인에서 토큰화하고, 그 위에서 스테이블코인(USD1 등)을 쓰게 만드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그가 반복해서 강조한 단어는 블록체인,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토큰화였다.
겉으로 보면 이는 디지털 금융의 미래를 말하는 일반적인 연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메시지의 중심에는 늘 하나의 질문이 숨어 있다.
미래 금융의 인프라는 누가 소유하는가.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발언은 기술 홍보로 보이고 이 질문을 이해하는 순간 그 발언은 자본 권력의 선언으로 읽힌다.
그는 토큰화를 통해 “예전엔 기관만 할 수 있던 대형 부동산·콘텐츠 투자에 일반 대중이 1,000달러 수준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에릭 트럼프는 블록체인을 “미래 금융의 핵심 인프라”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정확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문장이다.
“모든 자산이 결국 토큰화될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니다.
토큰화는 자산을 쪼개고, 거래 가능하게 만들고, 국경을 지우며, 참여 대상을 바꾼다.
즉, 토큰화는 금융 접근성의 확대이면서 동시에 자본 구조의 재편이다.
전통 금융에서 자본은 은행과 기관을 통해 흐른다.
토큰화된 금융에서는 자본이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통해 흐른다.
권력이 이동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가 특히 스테이블코인을 강조한 이유는 명확하다.
토큰화 경제가 작동하려면 기초 화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콘텐츠도, 국채도 모두 토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거래와 배당, 정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화폐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토큰화 경제의 기초 통화다.
그는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가 이미 전통 결제망을 넘어섰다는 수치를 강조했다.
이 숫자의 진짜 의미는 성장이 아니라 정당화다.
즉, 시장은 이미 움직였고
이제 남은 것은
누가 그 질서를 장악하느냐라는 문제다.
에릭 트럼프의 발언을 기술 언어로 읽으면 절반만 보인다.
그의 메시지는 철저히 자본의 언어다.
부동산을 토큰화한다
콘텐츠를 토큰화한다
대중이 투자에 참여한다
이 문장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전통 금융을 거치지 않는 자금 조달. 은행 대출 대신 전 세계 투자자로부터 직접 자본을 모은다.
이 구조가 완성되는 순간 금융 권력의 중심은 월가 내부가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 위로 이동한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기술 전망이 아니라 자본 전략 선언에 가깝다.
에릭 트럼프는 실제 인터뷰에서 “새로 짓는 건물을 토큰화해 대중에게 지분을 팔고 싶다”, “왜 굳이 도이치뱅크에서 대출을 받느냐, 전 세계 지지자들에게 직접 팔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스테이블코인과 달러의 관계다.
그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과거 달러 패권은 군사력과 무역, 그리고 은행 네트워크 위에 존재했다.
앞으로의 달러 패권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정학적 금융 도구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과 마주한다.
한국은 이 구조에서 사용자로 남을 것인가, 설계자가 될 것인가.
지금 월가에서는
더 이상 “암호화폐가 필요한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인프라를 누가 지배할 것인가.
질문의 수준이 바뀌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허용과 규제의 경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질서 인식의 차이다.
금융의 미래를 기술로 보느냐 권력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결국 에릭 트럼프의 메시지는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된다.
“금융의 다음 질서는 블록체인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질서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자본가에 의해 설계된다.
과거 산업혁명이 그랬고, 인터넷 혁명이 그랬으며, 플랫폼 시대가 그랬다.
지금의 블록체인도 같은 길 위에 있다.
에릭 트럼프의 내방은 단순한 행사 방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금융을 향한 조용한 질문이었다.
다가오는 금융 질서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사용자인가, 참여자인가, 아니면 설계자인가.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은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과 권력의 새로운 지도다.
그리고 그 지도는 이미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다.
한국이 그 지도 위에 어떤 위치를 선택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