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하나가 조용히 공개됐다.
arXiv 2604.08649. 제목은 PRAGMA: Revolut Foundation Model. 저자만 13명.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넘겼다. 학술 논문이니까. 기술 문서니까.
그런데 나는 이걸 다시 읽다가 멈췄다.
이건 논문이 아니다. 선전포고다.
Revolut이 만든 것은 AI 기능이 아니다.
보통 금융회사가 AI를 도입하는 방식이 있다. 챗봇을 붙인다. 이상 거래 탐지 모듈을 사온다. 신용 점수 API를 연동한다. 각 문제마다 각 팀이 각 모델을 하나씩 사서 붙인다. 은행 IT 시스템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문제가 생기면 패치를 붙이고, 또 패치를 붙이고. 30년이 지나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레거시가 된다.
Revolut은 반대로 갔다.
PRAGMA는 111개국 약 2,500만 명의 사용자로부터 수집한 뱅킹 이벤트 시퀀스를 기반으로 사전 학습된 인코더 스타일 트랜스포머 파운데이션 모델 패밀리다. 학습 데이터는 약 400억 개의 이벤트, 2,070억 토큰에 달한다.
숫자가 크다고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천천히 뜯어봐야 한다.
그들은 금융 행동의 "언어"를 만들었다.
GPT는 인터넷의 텍스트로 학습했다. 그 결과 언어를 이해하는 모델이 됐다.
PRAGMA는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학습했다. 거래. 앱 클릭. 알림 반응. 이체. 거래소 행동. 고객 지원 메시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연결됐다. 각 스와이프가 토큰이 됐고, 각 사용자의 전체 금융 기록이 하나의 "문장"이 됐다.
Revolut의 AI 책임자 Pavel Nesterov는 직접 말했다. "은행 데이터는 텍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긴 이종 이벤트 시퀀스입니다. 거래, 앱 액션,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딩 활동, 그리고 그 주변의 사용자 프로필 상태. 이 모든 것을 일반 텍스트로 평탄화하고 일반 LLM을 적용하면 너무 많은 구조를 잃고 토큰을 낭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부터 금융 이벤트의 구조에 맞는 모델을 만들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하나의 공유 백본에서 신용 점수화, 사기 탐지, 평생 가치 예측, 커뮤니케이션 참여 예측이 모두 구동된다. 그리고 그 성능은 기존 분산 모델들을 압도했다. 신용 점수화 정밀도 +130%, 참여 예측 +79%, 사기 회수율 +64%.
이게 왜 다른 게임인가.
기존 뱅킹 AI의 구조를 그려보자. 신용팀이 신용 모델을 만든다. 사기팀이 사기 탐지 모델을 만든다. 마케팅팀이 추천 모델을 만든다. 각 모델은 각 팀의 데이터 정의, 각 팀의 피처 엔지니어링, 각 팀의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같은 고객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한다.
Revolut의 접근 방식은 다르다. PRAGMA는 분산된 도메인별 모델들을 통합 기반 모델로 대체한다. LoRA 적응 기법으로 전체 파라미터의 1~2%만 파인튜닝해 비용 없이 성능을 올린다. 재학습 사이클을 줄이고 다양한 사용 사례에 걸쳐 배포를 가속화한다.
옛날 방식: 하나의 문제 → 하나의 모델 → 하나의 팀. PRAGMA: 하나의 기반 → 그 위에 모든 것.
이건 단순히 더 효율적인 AI가 아니다. 은행을 구축하는 완전히 다른 철학이다.
경쟁자들이 눈치를 챘다.
지난 12개월 사이 Stripe, Mastercard, Visa, 그리고 이제 Revolut까지 모두 금융 데이터를 위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발표하거나 공개했다. 이 수렴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금융 서비스에서 새로운 경쟁 레이어의 시작을 알린다. 행동 표현의 질이 어떤 개별 모델의 정교함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대.
PRAGMA는 이 중 가장 야심찬 시도다. 소비자 네오뱅크가 결제 네트워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거래, 앱 내비게이션, 트레이딩, 알림 상호작용을 하나의 사용자 레벨 임베딩으로 융합한 유일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2026년 현재 Revolut은 2,370만 명에서 출발해 7,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FY25 매출은 46% 성장한 60억 달러. 세전 이익은 23억 달러. 38%의 마진.
숫자가 말한다. PRAGMA는 실험이 아니다. 이미 작동하는 운영 체제다.
그렇다면 전통 은행들은 어디에 있는가.
Revolut의 팀 내부에서도 이 질문이 나왔다. "전통 은행들도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더 많이. 하지만 그 데이터는 서로 대화하지 않는 15개의 레거시 시스템 안에 흩어져 있다. Revolut의 진짜 강점은 AI가 아니다. 데이터가 충분히 깨끗하고 연결돼 있어서 실제로 학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JPMorgan은 AI를 진지하게 다룬다. 주요 미국 은행들은 2025년 내내 100일마다 AI 역량을 두 배로 늘려왔다. AI 에이전트가 초기 신용 메모를 작성하고, 유동성 부족을 예측하고, 규정 준수 보고서를 수초 만에 생성한다. Goldman Sachs는 12,000명의 개발자 인력 전체에 자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배포했고, 기존 코파일럿 대비 3~4배의 생산성 향상을 보고했다.
그러나 핵심을 짚어야 한다. JPMorgan과 Goldman이 하는 AI는 도구다. 기존 프로세스에 AI를 얹는 방식이다. PRAGMA가 하는 것은 다르다. 금융 행동 자체를 하나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분석가들은 말한다. "Revolut은 기존 기관들이 복제하기 어려울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더 작은 기관들은 이것을 만들 수 없다."
결론. 타 은행들이 지금 해야 할 고민.
Revolut이 발표한 것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보자.
우리는 거래를 분석하는 은행에서 금융 행동을 이해하는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 신용 결정이 정적인 양식에서 실시간 행동 시퀀스로. 사기 탐지가 규칙 기반에서 패턴 수준의 인식으로. 개인화가 세그먼트에서 개별 타임라인으로.
이건 점진적 개선이 아니다. 레이어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기존 뱅킹은 같은 고객을 4개 팀이 4개 모델로 따로 분석하고, 서로 대화하지 않습니다. PRAGMA는 거래부터 앱 탭 하나까지 모든 금융 행동을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학습해서, 단 하나의 기반 위에 신용·사기·추천·예측을 모두 올립니다.
가장 중요한 전환은 숫자보다 철학입니다. 기존엔 "문제 하나 → 모델 하나". PRAGMA는 "기반 하나 → 그 위에 모든 것".
전통 은행들이 지금 직면한 진짜 질문은 "우리도 AI를 도입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그 질문은 이미 끝났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의 데이터는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 "수십 개의 분산된 모델을 하나의 기반으로 통합할 의지와 구조가 있는가." "레거시 시스템이 우리의 AI 전략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
Revolut이 방금 RevolutOS를 발표했다. 뱅킹과 금융을 위한 새로운 운영 체제. 우리는 이미 지식 작업을 위한 ClaudeOS를 갖고 있다. 이제 금융에도 같은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운영 체제가 깔리면, 그 위에서 돌아가지 못하는 앱은 사라진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지금 자신의 데이터 인프라를 점검하지 않는 은행은, 몇 년 후 남의 운영 체제 위에서 앱으로 살아남는 것을 선택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채널별 단절→하나의 연속된 고객 경험
배치·정적 판단→실시간 행동 기반 판단
레거시 = 토큰 장벽→토큰 이코노미 네이티브 통합
데이터 분산·사일로→하나의 파운데이션 모델로 통합
거래를 분석하는 은행→금융 행동을 이해하는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