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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 척한 고냥이 Mar 28. 2020

와인, 머리로 마셔 보자

읽어 볼 만한 와인 서적


와인은 아는 만큼 더 잘 보인다. 예컨대 와인 공부는 와인의 바다를 항해할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 넣는 것이다. 와인의 바다를 알려주는 다양한 지도, 바로 와인 서적들이다. 와인의 세계는 너무나 방대해 내비게이션처럼 목적지를 콕 집어 안내해 줄 와인 책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와인 시장이 정착되고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금껏 출간된 와인 관련 서적의 수도 상당히 많아졌고, 그중엔 읽을 만한 것들도 제법 눈에 띈다. 읽을 만한 와인 서적들을 테마 별로 소개한다. 아, 최근에 출간한 내추럴 와인, 오렌지 와인 관련 서적은 나중에 별도로 소개할 예정이다.



와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오즈의 프랑스 와인 어드벤처> 예담, 오즈 클라크, 제임스 메이, 줄리 아르켈 저/김보영 옮김
와인보다는 맥주가 좋은 제임스와 와인 전문가인 오즈. 그들이 함께한 프랑스 와인 투어를 소재로 영국 BBC방송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었다. 와인 문외한인 제임스가 와인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금속 광택제 향, 헤어스프레이 맛 같은 표현이 흥미롭다. 뭔가 심오한 지식을 얻기보다는, 그저 유쾌하게 주요 프랑스 와인 산지를 훑어볼 수 있다. 아마 생동감 넘치는 그들의 여행에 동참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랠프 스테드먼의 세계 와인 기행> 예담, 랠프 스테드먼 저/고영욱 옮김
와인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이 이 책을 골랐다면 완벽한 헛다리. 그러나 와인에 대한 기발한 표현과 독특한 관점을 원한다면 만사 오케이. 랠프 스테드먼의 독창적이며 기괴한 삽화들을 통해 세계의 와인 산지들을 방문하고 명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두 권을 산 후 한 권은 주요 삽화를 오려서 액자를 만들어도 좋겠다.





와인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파리의 심판> 하서, 조지 M. 태버 저/손진호 옮김
1976년 파리에서 열렸던 이 역사적인 사건을 모르는 와인 애호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이 사건을 지켜본 유일한 기자인 저자는 단지 파리 심판의 결과나 그 파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당시 와인 세계의 판도와 파리 심판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로 대표되는 구세계 와인과 캘리포니아로 대표되는 신세계 와인에 대한 '심판' 이전의 평가와 이후의 재평가, 그리고 그 결과물인 최근 와인 업계의 모습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또한 캘리포니아 와인의 성립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주요 인물과 와이너리의 흥망성쇠를 개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도 포인트. 


<억만장자의 식초> 예담, 벤저민 월레스 저/박현주 옮김
와인 경매 사상 단일 병으로서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던 1787년 산 샤또 라피트(Chateau Lafite). 속칭 '제퍼슨 와인'으로 불리는 와인을 비롯해 올드 빈티지의 고가 와인을 둘러싼 뒷이야기 들을 위트 넘치는 표현과 깔끔한 문체로 묘사한 책. 특히 위조가 의심되는 와인과 그 와인 거래에 얽힌 이야기, 고가 와인 시음회, 와인 경매업계, 와인 감별에 대한 과학적 접근, 그리고 와인 거물들의 뒷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마치 프리미엄 와인의 복합적인 풍미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일반인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혹은 평생 한 번도 못 만날 가능성이 높은 와인들의 이야기이므로 책으로나마 그 궁금증을 달래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와인 세계의 그루들을 만나고 싶다면,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 바롬웍스, 엘린 맥코이 저/이병렬 옮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논쟁적인 와인 비평가’라는 부제가 의미하듯 전 세계 와인의 스타일과 가격, 나아가 와인 생산자들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 로버트 파커를 다룬 책.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비평가인 저자는 파커가 와인에 입문하게 되는 계기부터 와인 소식지인 와인 어드버킷(Wine Advocate)을 창간하고 82년 보르도 와인 평가를 통해 일약 와인 평론계의 거물로 떠오르게 되는 과정들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파커의 영향력이 와인 업계에 야기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와인을 고를 때 파커의 점수를 참고하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읽어볼 만한 책. 


<와인의 달인 로버트 몬다비> 바롬웍스, 로버트 몬다비 저/이병렬 옮김
쉰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세계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일념으로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결국 캘리포니아를 정상급 와인 산지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미국 와인의 대부 로버트 몬다비의 자서전. 그의 와인에 대한 열정, 꿈을 이루기 위한 고집과 노력이 듬뿍 배어 있는 문장을 읽어나가다 보면 좋은 와인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하게 될 뿐 아니라, 타성에 젖어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심도 있게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철학자, 와인에 빠지다> 아우라, 로저 스크루틴 저/ 류점석 옮김
도서 초반에 소개되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혹은 교양철학 시간 잠결에나 들었음직한 철학자들의 난해한 이야기가 부담스럽다면 그 부분은 건너뛰어도 좋다. 아래 소개하는 서문의 한 구절을 기억하며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도 충분하다. “이 책에서 나는 와인을 철학의 동반자로, 철학은 와인의 부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 생각에 와인은 음식과 훌륭한 짝을 이루지만 철학과는 더욱 좋은 짝이 된다. 와인을 마시며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철학 안에서 술을 마시는 법은 물론, 술 한잔 속에서 사색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마도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이면 다른 주류와 와인의 차이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와인 정치학> 책보세, 타일러 콜만 저/김종돈 옮김
와인을 둘러싼 생산, 유통, 거래, 마케팅과 홍보, 평론, 환경문제 등 다양한 정치경제학적 요소들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와인 그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 가격 결정의 메커니즘과 생산, 유통구조에서의 알력관계 등 주변부의 문제들을 제시하며 그 원인을 이해 관계자 사이의 역학 구조에서 찾으려고 시도한다. 학술적인 논조에 쓰인 단어와 문체도 어려운 편이지만 와인 레이블 이면에 감춰진 진실이 궁금한 애호가라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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