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sace
알자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이 아닐까. 이 소설은 독일과 프랑스 접경 지대에 위치해 양쪽으로부터 번갈아 지배를 받았던 알자스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만큼 알자스의 역사와 문화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와인 또한 마찬가지다. 독일과 유사하게 화이트 와인을 많이 생산하며, 리슬링(Riesling),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등 주요 품종 또한 겹치는 것이 많다.
알자스는 파리에서 동쪽으로 500km 정도 거리에 있다. 독일의 라인강까지는 2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포도밭은 주로 보주 산맥 동쪽에 조성돼 있다. 알자스-로렌 지방에 걸쳐 있는 보주 산맥은 포도밭에 큰 역할을 한다. 학생 시절 과학 시간에 배웠던 '푄 현상'을 기억할 것이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보주 산맥을 넘으며 건조하고 따뜻한 바람으로 바뀐다. 덕분에 동쪽에 조성된 포도밭의 강수량은 연간 500ml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조량 또한 연평균 1,800시간 이상으로 충분하다. 샹파뉴(Champagne)와 함께 프랑스 최북단의 와인 산지임에도 포도 생장기의 날씨가 좋고 건조한 이유다. 특히 최상급 포도밭들은 햇볕을 가장 잘 받는 남향에 자리 잡고 있어 포도가 아주 잘 익는다. 토양은 포도밭에 따라 화강암, 편암, 화산암, 사암 등을 비롯해 석회암과 이회토 등 다양하다. 양질의, 복합적인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테루아를 갖춘 셈이다.
특히 좋은 포도밭들은 그랑 크뤼(Grand Cru)로 지정돼 있다. 오래전부터 알자스의 농부들은 일부 포도밭에서 특별히 양질의 포도가 생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9세기부터 이미 특정 테루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한다. 1983년 25개 포도밭이 최초 공식 그랑 크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51개 그랑 크뤼가 존재한다. 원래 그랑 크뤼를 레이블에 명시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노블 품종만을 사용해야 했다. 리슬링,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 그리(Pinot Gris), 뮈스카(Muscat)가 그 주인공으로, 모두 화이트 품종이다. 조첸베르크(Zotzenberg) 포도밭에서 예외적으로 그랑 크뤼를 만들 수 있는 실바너(Sylvaner) 또한 화이트 품종이다. 하지만 2022년 빈티지부터 레드 품종인 피노 누아(Pinot Noir)로도 그랑 크뤼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밭이 생겼다. 바로 '키르히베르크 드 바르(Kirchberg de Barr)'와 '헹스트(Hengst)'이다. 두 포도밭 모두 석회질과 이회토가 주를 이루고, 남향-남동향 경사지 위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15세기부터 피노 누아를 재배한 역사적인 포도밭이기도 하다. 알자스의 피노 누아 생산량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후에도 그랑 크뤼로 승급되는 피노 누아 포도밭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알자스의 주요 포도 품종은 위에서 언급한 리슬링,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 그리, 뮈스카, 실바너, 피노 누아다. 이외에도 오세루아(Auxerrois), 피노 블랑(Pinot Blanc), 샤르도네(Chardonnay) 등 여러 화이트 품종들도 쓰인다. 대부분 드라이 스틸 와인, 그러니까 달지 않고 탄산이 없는 와인을 만든다. 보통 레이블에 품종이 표기돼 있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정티(Gentil)와 에델츠비커(Edelzwicker) 같이 여러 품종을 블렌딩해 만드는 와인도 있다. 정티는 그랑 크뤼에 사용하는 4개 노블 품종을 50% 이상 사용해야 하며, 나머지 품종도 허용된 것만 사용할 수 있다. 각각의 품종은 별도로 양조해야 하며, 엄격한 테이스팅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이라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다. 에델츠비커는 규정에서 조금 더 자유롭다. 알자스에서 허용된 화이트 품종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양조 또한 따로 하거나 한 번에 해도 상관없다. 심플하고 깔끔한 와인으로 역시 가성비가 아주 좋다. 알자스 와인은 일반적으로 각종 치즈와 생햄, 소시지 등과 잘 어울린다. 아시안 푸드 등 스파이시한 음식과 곁들이기도 좋다. 가벼운 한식 테이블에 반주로 마셔도 좋은 와인이다.
드라이 와인 외에도 빼어난 스파클링 와인과 스위트 와인도 생산한다. 크레망 달자스(Cremant d'AlSace)는 샴페인 같이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신선한 과일맛과 신맛이 깔끔해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가성비도 좋아 언제나 편하게 선택할 만한 와인이다. 스위트 와인은 방당주 타르디브(Vendange Tardive)와 셀렉시옹 드 그랭 노블(Selection de Grains Nobles)이 있다. 방당주 타르디브는 의미 그대로 늦수확해 농축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일부 귀부균(botrytis)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농밀한 질감과 복합적인 풍미가 싱그러운 신맛과 어우러져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고급 와인이다. 일반적으로 적당한 단맛을 보이지만 드라이한 와인도 일부 있다. 셀렉시옹 드 그랭 노블은 포도알을 하나씩 선별했다는 의미처럼 완전히 농축된, 주로 귀부균의 영향을 받은 포도알을 골라 만든다. 항상 달콤한 스타일이지만 생생한 신맛 덕분에 깔끔하다. 두 와인 모두 작황이 좋은 해에만 생산할 수 있으며, 리슬링,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 그리, 뮈스카 네 개 품종만 사용할 수 있다. 스위트 와인은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이 와인들을 맛본다면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최근 알자스에서는 맛있는 내추럴 와인(natural wine)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알자스는 다양한 테루아와 품종에 기반한 다양한 와인 스타일로 와인 애호가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지역이다. 날씬한 플루트 병에 담긴 알자스 와인을 발견한다면 망설임 없이 선택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