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gheri & Maremma Toscana
볼게리(Bolgheri). 슈퍼 투스칸의 고향이다. 산지오베제(Sangiovese)와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로 대표되던 토스카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전설의 시작은 사시까이아(Sassicaia). 1920년대 보르도 와인 애호가였던 마리오 인치사 델라 로케타(Mario Incisa della Rocchetta)가 볼게리의 자갈이 많은 모래, 점토, 석회질 토양에 포도밭을 조성한 것이 사시까이아의 시작이었다. 사시까이아라는 이름 자체가 '돌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다. 해양성 기후와 자갈이 많은 토질 등 보르도와 유사점이 많은 이 포도밭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등 보르도 품종들이 잘 자랐다. 마리오 인치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보르도 스타일 와인을 만들어 가족 및 지인들과 함께 즐겼다. 국제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이었기에 출시하면 가장 낮은 테이블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초기엔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인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사촌 피에로 안티노리(Piero Antinori)의 강력한 권유로 공식 출시하게 되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사시까이아는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시까이아의 성공은 수많은 혁신가들을 볼게리로 이끌었고, 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런 사시까이아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2013년 볼게리 사시까이아(Bolgheri Sassicaia) DOC 가 별도로 신설됐다. 볼게리 DOC 자체는 1984년 화이트 와인으로 설립돼 1994년 레드와 화이트 와인도 DOC가 되었다. 먼저 DOC가 된 것은 화이트 와인이지만, 그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명성의 대부분은 레드 와인의 몫이다. 오르넬라이아(Ornellaia), 르 마키올레 팔레오(Le Macchiole Paleo), 구아도 알 타쏘(Guado al Tasso) 등 프리미엄 와인들이 즐비하다.
볼게리 로쏘는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메를로(Merlot) 등을 단독으로 혹은 섞어서 만들 수 있다. 산지오베제, 시라(Syrah) 등을 최대 50%까지, 이외 허용된 품종은 30%까지 블렌딩 할 수 있다. 로제 와인의 품종 규정은 레드와 같으며, 화이트 와인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베르멘티노(Vermentino), 비오니에(Viognier) 등을 단독 혹은 블렌딩해 만들 수 있다. 기타 허용된 품종을 40%까지 블렌딩 가능하다. 로쏘의 경우 10개월 이상 숙성해야 하며, 수페리오레(Superiore)를 붙이려면 오크 숙성 1년 포함 2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마렘마 토스카나(Maremma Toscana)는 볼게리의 혁신과 토스카나의 전통이 절묘하게 혼합된 생산 지역이다. 볼게리 남쪽 해안부터 내륙으로 넓게 펼쳐진 와인 산지로, 2011년 IGT에서 DOC로 승격했다. 마렘마 토스카나는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Morellino di Scansano), 몬테쿠코(Montecucco) 등 여러 와인 산지들을 포함할 만큼 넓다. 그만큼 와인 스타일 또한 다양하다. 기본적인 스타일은 산지오베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등 메인 품종을 60% 이상 사용하고 이외 허용된 품종을 블렌딩해 양조하는 마렘마 토스카나 로쏘(Maremma Toscana Rosso)다. 같은 품종 규정으로 로제 와인을 만들면 마렘마 토스카나 로사토(Maremma Toscana Rosato)가 된다. 트레비아노, 베르멘티노 등 메인 품종을 60% 이상 사용해 만든 화이트 와인은 마렘마 토스카나 비앙코(Maremma Toscana Bianco)다.
이외에 특정 품종을 중심으로 양조할 수도 있다. 레드, 화이트, 로제 모두 허용된 메인 품종 중 하나를 85% 이상 사용하고 기타 허용된 품종을 블렌딩 하면 메인 품종을 레이블에 표기할 수 있다. 2020년 빈티지부터는 두 개 품종 표기도 가능하다. 이 경우 처음 명기하는 품종은 50-85%, 두 번째 명기하는 품종은 15-50% 사용해야 한다. 로쏘와 비앙코는 리제르바(Riserva)도 만든다. 로쏘 리제르바는 2년 이상 숙성해야 하며, 그중 6개월 이상은 오크 숙성을 해야 한다. 비앙코 리제르바는 1년 이상 숙성한다.
이외에 늦게 수확한 포도로 만드는 벤데미아 타르디바(Vendemmia Tardiva), 말린 포도로 만드는 파시토 비앙코(Passito Bianco), 파시토 로쏘(Passito Rosso), 전통 디저트 와인 빈 산토(Vin Santo) 등 스위트 와인도 나온다. 토스카나 지역에서는 드물게 전통 방식 혹은 탱크 방식으로 양조하는 스푸만테(Spumante) DOC 또한 생산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와인들을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운데, 그 아쉬움은 마렘마 토스카나 로쏘, 비앙코로 충분히 달랠 수 있다. 빼어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을 겸비한 와인이 많아 부담 없이 선택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산미와 무겁지 않은 바디감을 지닌 경우가 많아 음식에 곁들이기도 좋다. 물론 볼게리라고 값비싼 슈퍼 투스칸 와인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저렴하다고 하기는 어려워도 합리적인 가격에 빼어난 품질을 지닌 와인들이 다수 존재한다. 볼게리와 마렘마 토스카나의 와인들을 발견한다면 부담 없이 즐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