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산지: 프랑스 쥐라

Jura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50205130923279517.jpg [출처: 프랑스 관광청 (© Jérôme Genée/Jura Tourisme)]

쥐라(Jura)는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와 스위스 사이에 있는 작은 지역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 지역의 이름을 간접적으로라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 <쥐라기 공원> 덕분에 일반인들도 익히 알고 있는 '쥐라기'라는 지질 시대 이름이 쥐라산맥의 지층 구조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발효 연구로 유명한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도 쥐라 출신이다. 쥐라는 유명 치즈 산지이기도 하다. 특히 꽁떼(Comté) 치즈는 와인 안주로 많은 사랑을 받는데, 쥐라 와인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쥐라의 포도밭 면적은 2천 헥타르 정도다. 부르고뉴의 포도밭 면적이 3만 헥타르인 걸 감안하면 매우 작은 면적이다. 기후는 부르고뉴와 비슷하지만 더 서늘한 편이다. 포도밭은 보통 해발 250-400m 사이에 있는데 가파른 경사면에 위치한 경우도 많다. 저지대는 점토, 고지대는 석회질 토양이 대다수이며 그 위를 각기 다른 성질의 이회토가 덮고 있다. 이는 지형으로 인한 미세기후와 함께 다양한 테루아를 형성하는 요인이 된다. 이런 테루아의 매력에 이끌려 최근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르고뉴의 생산자들이 쥐라 지역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쥐라의 메인 품종은 다섯 가지다. 청포도 사바냥(Savagnin)과 적포도 트루쏘(Trousseau), 쁠루싸르(Ploussard)라고도 불리는 뿔사르(Poulsard)는 쥐라의 토착 품종이다. 샤르도네(Chardonnay)와 피노 누아(Pinot Noir)는 부르고뉴에서 왔다. 쥐라는 화이트 와인 생산량이 레드 와인의 2배 정도다. 식재 면적의 40% 이상을 샤르도네, 20% 이상을 사바냥이 점유한다. 적포도 식재 면적은 30% 남짓인데 뿔사르, 트루쏘, 피노 누아 순이다.


뿔사르 품종은 오렌지빛이 감도는 옅은 루비 컬러를 띤다. 그래서 피노 누아나 트루쏘를 블렌딩해 색을 더하기도 한다. 타닌이 적어 가볍고 부드러우며 숙성을 하면 과실 풍미가 아름답게 피어난다. 트루쏘는 컬러가 뿔사르 보다 진하고 피노 누아보다는 옅다. 두 품종에 비해 과일 풍미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피노 누아는 고향 부르고뉴와는 달리 주로 다른 품종들과 블렌딩해 사용한다. 단일 품종으로 만들었든 블렌딩을 했든 쥐라의 레드 와인은 보통 가볍고 섬세하며 우아하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풍미의 밸런스와 구조가 좋아 숙성 잠재력도 좋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데 가벼운 핑거 푸드와 함께 즐겨도 좋고, 잘 차려진 정찬에도 안성맞춤이다.


화이트 와인은 조금 복잡하다. 샤르도네, 사바냥 품종을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블렌딩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는 품종보다는 오크 숙성 방식에서 온다. 장기간 오크 숙성을 하면 와인이 증발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증발한 만큼 와인을 채워 준다. 이를 우이야주(ouillage)라고 한다. 그런데 쥐라 화이트 와인은 우이야주 여부에 따라 스타일이 나뉜다. 주로 샤르도네 단일 품종, 혹은 샤르도네를 메인 품종으로 양조한 와인은 우이야주를 진행해 향긋한 꽃 향기와 과일 풍미를 살린다. 우이야주를 하지 않은 와인은 공기와의 접촉면에 베일 같은 효모막이 생기며 호두, 헤이즐넛 같은 견과류와 가벼운 스파이스 풍미, 은은한 산화 뉘앙스가 더해진다. 이를 수부알(sous-voile) 방식이라고 하는데, '베일 아래서' 숙성한다는 의미다. 특히 사바냥은 수부알 방식을 통해 그 매력을 온전히 발산한다.


그렇다고 샤르도네는 우이야주, 사바냥은 수부알 방식으로만 만드는 건 아니다. 문제는 레이블만 보아서는 어떤 스타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종종 수부알 와인의 레이블에는 트라디시옹(Tradition)이라는 표기가 적혀 있지만, 이 또한 법으로 규정된 용어는 아니다. 그러니 구입 전 어떤 스타일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이야주 타입은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고, 수부알 타입은 처음 맛보는 사람에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래도 미묘한 견과향과 짭조름한 미감에 길들여지면 그 맛을 잊기 어렵다. 두 스타일 모두 신선하게 마셔도 좋지만, 몇 년 정도 숙성을 통해 더욱 복합적이고 품격 있는 풍미를 드러낸다.


쥐라에서는 전통 방식 스파클링 와인 크레망 뒤 쥐라(Crémant du Jura)도 생산한다. 주요 다섯 품종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데 18세기부터 전해지는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다. 로제 크레망은 뿔사르, 트루쏘, 피노 누아를 단독 혹은 블렌딩으로 최소 50% 이상 사용해야 한다. 크레망 뒤 쥐라는 화이트, 로제 할 것 없이 가성비가 좋거나 샴페인 뺨치는 품질이다. 눈에 띄면 살 가치가 있는 와인이라는 얘기다.


이외에도 쥐라의 와인 스타일은 정말 다양하다. 작은 포도밭 면적과 적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쥐라만의 개성을 담은 와인들을 만들어낸다. 일단 쥐라에는 7개 아뻴라시옹(appellation)이 있다. 그중 아르부아(Arbois), 꼬뜨 뒤 쥐라(Côte du Jura), 레뚜알(L' Étoile), 샤토 샬롱(Château-Chalon) 등 네 개는 지리적 아뻴라시옹이다. 앞서 소개한 크레망 뒤 쥐라는 쥐라 전 지역에서 생산한다. 나머지 두 아뻴라시옹도 쥐라 전역에서 생산하는데, 포도 껍질을 증류해 만드는 마르 뒤 쥐라(Marc du Jura), 발효하지 않은 포도즙에 마르 뒤 쥐라를 섞어 만드는 리큐르 막방 뒤 쥐라(Macvin du Jura)가 그것이다. 둘 다 와인 생산 과정 중에 나오는 부산물들로 만든다. 와인이 아니지만 기억해 둘 만하다.


아뻴라시옹은 아니지만 꼭 알아야 할 쥐라를 대표하는 스타일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뱅 존(Vin Jaune)이다. 샤토 샬롱에서 처음 탄생했으며 샤토 샬롱 아뻴라시옹으로 출시하려면 반드시 뱅 존 스타일로 만들어야 한다. 이외에 아르부아, 레뚜알, 꼬뜨 뒤 쥐라에서도 뱅 존을 생산할 수 있다. 뱅 존은 오직 사바냥 품종으로만 양조한다. 발효 후 통갈이나 우이야주 없이 6년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증발한 와인 표면에 생긴 효모막 아래서 다양한 견과와 스파이스의 복합적인 풍미와 그윽한 산화 뉘앙스를 형성한다. 숙성을 마친 뱅 존은 클라블랑(Clavelins)이라는 작달막한 병에 담긴다. INAO로부터 인증을 받은 병으로 독특하게도 용량이 620ml이다. 이는 1리터의 와인을 6년 3개월 동안 숙성하면 남는 용량이라고 한다.


뱅 존이라는 이름 자체가 노란색 와인이라는 뜻인 만큼 빛깔은 진한 황금색이며 가벼운 구릿빛이 살짝 감돈다. 뱅 존은 어떤 와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개성과 복합미를 지니고 있다. 숙성 잠재력은 한 세기를 넘어선다. 특별한 빈티지를 기념하기 위한 와인을 고른다면 뱅 존 만한 것이 없다. 뱅 존의 미묘한 풍미를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는 몇 시간 전에 디캔팅을 하는 것이 좋다. 적정 음용 온도는 14-16°C이며 꽁떼 치즈를 비롯한 치즈 플레이트, 샤퀴테리, 견과, 건과, 버섯 요리, 푸아그라, 달팽이, 게나 랍스터 등 갑각류 요리와 좋은 궁합을 보인다. 오픈 후 냉장 보관하면 1주일 정도는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두 번째는 뱅 드 빠이(Vin de Paille)다. 사바냥, 샤르도네, 뿔사르 품종 중 최상급 포도만 엄선해 볏짚 위에서 최소 6주 이상 말린다. 이름의 의미가 볏짚 와인인 이유다. 통풍이 잘 되는 선반이나 서까래에서 건조해도 되는데 인위적으로 열을 가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건조한 포도 100kg에서 얻을 수 있는 포도즙은 15-18리터 정도로 매우 적다. 포도즙의 당도는 매우 높기 때문에 발효가 천천히 진행된다. 발효 후 알코올은 14-17% 정도. 남은 당분은 자연스러운 단맛을 선사한다. 이후 3년 이상 작은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말린 과일과 꿀, 차와 스파이스 뉘앙스 등이 더해진다. 한 모금 마시면 진한 단맛과 복합적인 풍미가 꿈결 같은 여운을 선사한다. 다른 디저트 와인처럼 6-8°C 정도로 차갑게 즐기는 것이 좋다.


쥐라 와인들은 생산량이 적어 쉽게 만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도 다양한 쥐라 와인들이 수입되고 있으니 발견하게 된다면 꼭 마셔 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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